돌아갈 준비.

사람 만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사람을 만나서 어울려 놀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에너지를 얻는 사람. 그에 반해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를 쓰는 사람이 있다. 피하고 싶은 만남이 아닐지라도 사람을 상대하는 것 자체에서 피곤함을 느끼고 혼자 지내는 시간속에서 에너지를 다시 채우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그리고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만날 때 그나마 덜 불편해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나처럼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 좋다. 내 에너지가 빨아 들여지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이기도 하고, 그 사람의 에너지를 내가 갉아 먹고 있다는 느낌이 덜해서 이기도 하다.

한국에 와서 3주동안 참 많은 이들을 만났다. 이번 방문의 목표는 간단하고 단호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자. 그렇지 않은 만남을 억지로 가진다는 것은 큰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목표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사람을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단 1분의 시간도 소홀함이 없이 대하려고 애썼다. 이야기에 집중하고, 대화 도중에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나를 만나는 상대방도 만남이 조금 더 절실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를 만나는 상대와 나 사이에는 “다음에 보자” 라는 그 흔한 인사말이 없었다. 우리는 아마도 다음에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서 조금 더 최선을 다해 대화를 나눠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 편이 더 단순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렇게 평소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단기간에 집중해서 쓰다 보니 슬슬 방전이 되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자극적인 한국 음식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나의 속때문에 오늘 탈이 났고, 몸 상태가 많이 안좋아 졌으며, 그래서 약속을 취소했다. 이제 더이상의 약속은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집에서 가족들과 조용히 돌아갈 준비를 하고 싶다. 최소한 비행기를 타는 날에는 몸상태가 괜찮아야 한다.

지난 3주간의 기억은 지하철을 타고, 거리를 걷고, 무언가를 먹으며 사람들의 얼굴을 쳐다보고,  쉴새 없이 대화를 주고 받은 것 뿐이다. 어쩌면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그게 전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도 한편밖에 보지 못했고, 음악은 아예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시와의 공연이 더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돌아갈 시간이 몸으로 느껴지는 요즈음에는 책도 눈에 잘 들어 오지 않는다. 나는 무언가를 읽거나, 듣거나, 보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그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어야 한다. 눈 앞에서 살아 숨쉬는 사람이 아닌,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다른 것들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로부터 자의반 타의반으로 차단당한 요즈음에는 새로운 에너지를 다시 찾아 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무언가를 써보려고 한다. 아주 긴 글이 될 것 같다. 일종의 편지일 수도 있고, 편지가 아닐 수도 있다. 이걸 누군가에게 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남은 일주일동안 나는 사람들을 되도록 만나지 않고 아주 긴 글 한편을 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컴퓨터를 끄고 줄이 없는 하얀색 종이위에 무언가를 써볼 참이다. 완성이 되지 않으면 그것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 직업적인 글쓰기, 전문적인 글쓰기가 아닌, 내가 정말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 생활을 정리하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미국에는 나에게 익숙한 생활과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100% 컨트롤할 수 있는 루틴한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아침 여덟시에 일어나 아홉시까지 학교를 가고, 열두시에 샐러드를 먹고, 다섯시에 성당에 가고, 여섯시에 마켓에 들려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그런 생활. 가끔 공부가 더 하고 싶다면 새벽 한두시까지 학교에 있다가 아무도 없는 캠퍼스의 차가운 공기를 가로질러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음악과 함께 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정형화된 일상속에서 머릿속은 조금 더 자유로워 지고, 글자들은 조금 더 익숙한 속도로 찾아올 것이며, 숨쉬는 것도 조금은 더 편해질 것이다. 한국에 있는 것도 좋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다. 작년까지는 한국에 있는 것이 더 좋았다. 떠날땐 무척 아쉬웠다. 내년부터는 아마도 미국에서의 생활을 더 좋아하게 될 것이다. 지금이 그 중간 지점에 있는, 아주 미묘한 지점이다. 그곳에는 나를 기다려 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도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준비는 한국을 방문하기 위해 하는 것보다는 훨씬 복잡한 감정을 가진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글을 쓰면서 한번 풀어보려고 노력할 참이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

8 thoughts on “돌아갈 준비.

  1. 그 글의 대상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꼭 전달했으면 좋겠어요. 말로 해도 좋고.

    누군가에 대한 감정이라는 것이
    감정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면
    표현방식 때문에 그런 감정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은
    참, 슬픈 것같아요.

    전 제가 사는 곳이 훨씬 편한지가 아주 오래되어 버렷어요.

    • 네. 표현 방식과 전달 방식, 이런 커뮤니케이션의 트러블에서 오는 갈등이 감정 자체를 막아 버리면 대단히 슬픈거죠. 전 한국을 잊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 오려구요. 꼭 그러고 싶어요.

  2. 혹시 MBTI 테스트 해보셨어요? 저는 INTJ고 아델라님도 INTJ시던데 종혁님도 비슷할꺼같아요!
    가는건 쉽지만 돌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돌아갔을때의 감정적인 공황을 무척 두려워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니 무뎌지더라구요. 남은 일주일 푹 쉬고 원하는 데로 보내고 오세요!

    • 아오 저도 INTJ 예요 ㅋ 근데 INTP 설명보면 이쪽이 더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항상 P 와 J 사이에서 갈등 많이 하는 것 같아요. INT 까지는 아주 명확한 편이죠 ㅋ

  3. 전 전자에 속하는 사람이군요 ^^
    그러나 전자에 속하는 어느 누구라도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 되는 때가 있지요.
    너무 구분 된다기 보단 양쪽다 갖고 있는 것 같아요.

    • 맞아요. 어느 한쪽의 특성이 강하게 발현되는 것 뿐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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