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ter vigil

오늘 부활 전야 미사에 다녀옴으로써 성삼일 전례가 모두 끝났다.  오늘 미사는 무려 세시간반이 소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인데,  여기선 가능하다. 올해 부활절에 느끼는 기분은 작년과 또 다르다. 작년은 그 전년도와 또 많이 달랐고, 내년에는 또 다른 감정과 생각들이 찾아오겠지.

종교에 대해서는 유연한 편이다. 개인적으로는 삶에서 무척이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 개인이 어떤 종교를 선택하고 어느 정도의 가치를 그 종교에 두는 지의 문제는 타인에 의해 강요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때문에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전교 활동에 대해서도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믿는 종교가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를 지닌다는 신념을 가지는 건 결코 나쁜 일이 아니지만, 그것을 그 종교의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 사회내에서 실현시키고자 하는 행위는 그래서 굉장히 어리석고 가치없는 짓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종교는 그저 종교일 뿐이다. 기도문을 외운다고, 십자가앞에 엎드려서 울부짓는다고 뭔가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미래의 뭔가를 보장받는 것도 아니다. 천국에 가기 위해 기도하는 것도 웃기고,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믿는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것도 우습다. 종교를 가지고 믿음을 가지는 것을 현실, 혹은 현실 너머의 그 어딘가에서어질 어떤 ‘대가’ 를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종교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한 데에서 나온 결과이다.

종교가 현시대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그런, 이성적으로 불가해한 어떤 추상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에의 집착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렇게 겹겹이 둘러 싸여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종교가 사실은 굉장히 깊은 역사적, 문학적, 그리고 철학적인 가치를 지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인류는 그들의 역사를 시작함과 동시에 종교를 가지기 시작했고, 그것에 대해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것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근원, 뿌리에 다다르면 종교가 있고, 종교는 그 자체로 인간 역사의 모든 차원을 담아낸 유전자 지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종교를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현재와 과거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 종교들 가운데서 현대에 큰 위치를 인정받는 몇몇 종교들, 예를 들어 불교라던가 이슬람, 가톨릭, 개신교등을 이해한다는 건 수많은 부침들속에서 ‘살아 남은’ 인류의 몇몇 지류들이 어떻게 그들의 문화를 지켜 냈는가를 이해하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가만히 들여다 보면 볼수록 그 안에 아름다움이 있고, 인생의 가르침이 있으며, 어쩌면 인생 저 너머에 있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깊은 사유의 흔적들까지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인류의 선조가 아닌 이상, 나보다 먼저 살아온 그 누군가의 도움으로 조금은 더 앞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 수많은 도움들 중 종교가 있을 뿐이다. 가장 깊은 단계의 생각들, 그리고 그 생각들끝에 나온 중요한 교훈들. 무시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가장 쉽게 빠져들기 쉬운 착각은, 자신의 종교는 절대적으로 옳고, 그래서 이 절대적인 종교는 타인들에게도 그 절대적이어야 하며, 자신은 타인들을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종교는 인간이 만들었다. 정말 신이 있을지 없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있다고 해도 신이 현대 종교의 모든 부분에 일일이 관여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십일조라던가, 종교 예식의 절차라던가 뭐 이런 것들은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일 뿐이다. 그런 것들이 종교의 본질은 아닐 것인데, 요즘 가만히 보면 마치 그런 것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종교 자체가 유지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그래서 다른 사람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 혹은 종교에 대한 견해가 어떤지에 대해 별 관심도 없고  그것에 대해 별로 대화하고 싶지도 않다. 그건 그사람만의 일일 따름이니까. 하지만 가끔은,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 종교에 대해 약간의 지지라던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바램이 들기도 한다. 나를 이해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채널이 이쪽에 있으니 만약 그래만 준다면 참 좋고 또 고마울 것 같다. 오늘 밤 열두시가 다되어 성당을 나서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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