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뜬금없이 국민학교 시절 (그렇다, 난 초등학교란 곳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선생님들이 생각났다.

6학년때 담임 선생님은 키도 크시고 인물도 출중하신 미중년의 지적인 분이셨는데, 어느날인가 한번은 전교 회의에 갔다가 다른 아이들이 다 떠나고 난 후 조금 늦게 가방을 챙기러 교실에 들렀다. 그곳에는 이미 퇴근하신 줄 알았던 선생님과 학부모 어머니 열댓분이 앉아 계셨다. 그분들도 내가 이미 학교를 떠난 줄 알고 약간 당황하시는 기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뭔가 어색한 느낌이 들어 가방만 챙겨 서둘러 빠져 나왔는데, 그곳에는 나의 어머니도 계셨다. 먼 훗날 어머니께 들은 바로는 그 자리가 어머니들끼리 돈을 모아 선생님께 전달하는, 일종의 촌지 전달이 행해지던 자리였던 것이다. 선생님께서 먼저 요구하신 건 아니고 당시 박봉에 시달리던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정기적으로 보태 쓰시라고 전달하던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요새도 그런 문화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 말을 듣고 촌지에 대한 생각도 약간은 바뀌게 됐다. 촌지는 무조건 교사가 학부모에게 강요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방향이 반대가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이후 처음으로 하게 됐다. 학교를 다닐 당시 나는 당연하게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지만, 아마 우리 어머니도 국민학교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꽤 많은 시간 교무실에 들락날락거리셔야 했을 것이다. 당신의 말씀으로는 다른 어머니들에 비해 “신경을 확실히 덜 썼다” 라고 하시지만, 그것도 결국 정도의 차이일 뿐일테니..

나도 아마 나중에 자식을 낳아 기르게 된다면 분명히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 나의 어머니와 같은 선택을 하겠지.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는 시간이 나는 대로 예전 선생님들을 찾아 뵙고 싶어졌다. 특히 국민학교 5,6학년때 담임 선생님과 중학교 1,3학년 담임 선생님은 지금 어떻게 지내시나 많이 궁금하다. 지금까지도 국민학교 1학년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의 담임 선생님들의 성함과 얼굴, 그리고 중요한 기억들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도 참 꽤나 학교-오리엔티드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2 thoughts on “선생님

  1. 학교 오리엔티드 하시니까 박사과정중이겠지요? ^^
    촌지의 재발견이네요. 저는 중학교때까지는 집안사정이 그나마 좋은편이었는데 담임선생이라는 ㅅㄲ가 아빠 회사까지 전화해서 만나서 밥사라고 난리쳤던 생각 (단순히 밥..만 원한건 아니었을거고, 그렇다고 엄마가 학교에 안다녀오신것도 아니었는데 뭘 더바래서 그랬는지..)이 나서 묘한 기분이 엇갈리네요.

    • ㅎ 어디에나 되먹지 못한 교사는 존재하는 것 같아요. 제가 모르는 일들이 어머니와 아버지께 또 많이 일어났겠죠. 이래저래 쉽지 않은 문제같아요. 자식 학교 보내는 문제는.. (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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