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인정하는 용기

어렸을 때부터 나에게 결어되어 있던 능력들중 하나가 바로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사과하는 것이었다. 일종의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저지른 잘못을 들키고 노출되어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 했다. 더 나아가 어떤 책임자 (선생님이나 어머니) 에게 그 잘못에 대한 꾸지람을 듣는 것을 병적으로 못견뎌 했다. 마치 꿩이 숨기 위해 머리만을 짚더미속에 숨기듯이, 들킬 것이 뻔한 잘못을 저지르고도 나 혼자 침묵을 지키며 제 무덤을 파기 일쑤였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던 것과 연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더이상 완벽하지도 않고 남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던 어떤 순간 이후로, 모든 것이 아주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과는 하등 상관없는 일임에도, 아니 오히려 자존심을 지키는 아주 좋은 방법임에도 마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버리면 자존심ㅇ 큰 상처를 입는 것인마냥 생각했었다. 사과를 하는 것이 마치 구걸을 하는 것처럼 비춰져야 한다는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탓이기도 하다. 땅에 엎드려 내 죄를 용서해 주십쇼, 하는 것이 사과의 전부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하게 지적하고 나아가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어른이 된 후 배운 사과의 다른 방식이다. 이것을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침착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용기다. 용서를 구하는 것은 감정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완벽하게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상대방에게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시키는 것을 생각할 따름이다. 굉장히 힘들고 지난한 여정이지만, 나는 아주 점진적으로 이 사과의 방식을 배워 왔다. 목구멍까지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기를 수십번, 마지 못해 형식적으로 중얼거렸던 것이 수백번, 점점 아주 조금씩이지만 상대방에게 내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굉장히 최근의 일이다.

어제 아케이드 파이어의 공연을 보러 갔는데, 아주 작은 트러블이 하나 있었다. 운좋게 스캇과 나는 거의 맨 앞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스탠딩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곳은 아주 빽빽했고, 분위기는 거칠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맥주 두잔을 사가지고 오니 이미 내 자리는 없어졌고, 스캇이 있는 곳까지 가는 것 자체가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면서 가는데 뒤에서 갑자기 누가 나를 확 밀치면서 맥주가 조금 흘러 옆에 있던 여자의 손에 닿았다.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내 손을 쳤고 맥주 한잔이 다시 흔들려 앞에 있던 다른 남자의 등에 흘렀다. 여자는 짜증을 내며 나에게 뭐라 뭐라 했고 나는 미안하다, 하지만 뒤에서 누가 밀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라고 답했다. 여자는 시끄럽다, 니가 잘못한 거다, 라고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날 밤 꾼 꿈에서 나는 고등학교 한문 수업시간에  있었고, 부당한 이유로 나를 체벌한 선생님께 조목조목 반박하며 사과를 요구하는 학생이었다. 어제 공연장에서 내가 조금 더 침착했더라면, 나는 그 여자에게 다시 말을 걸어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떤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해 대화를 청했을 것이다. 감정적으로 격해진 엥글로 섹슨은 무척 상대하기 힘들다. 굉장히 비논리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인종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통해 작은 이슈를 논리적인 범위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연인간에는 이런 문제가 더 빈번하고 더 심각하게 발생한다. 우리는 서로 다투기만 했고 다툼을 슬기롭게 봉합해 나가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친구간에도 마찬가지. 이제 나는 조금 알 것도 같은데, 상대방이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면 약간 조급해 진다.  스스로에게 냉정하고 상대방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라, 라는 말도 있지만 그 가르침이 이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 상대방이 잘 못하고 있다면 그것을 기분나쁘지 않게 지적할 수 있는 것도 지혜요 용기다.  더군다나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신의 언행이 상대방에게 어떤 식으로 비추어 지고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지를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성인이라고 믿는다. 그것을 하지 못하면 어린아이에 머물 뿐이다. 최근 몇몇 대화에서 답답함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용기가 부족함을 느꼈다. 상대방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기분나쁘지 않게 지적해 주는 용기, 그리고 지혜. 앞으로 더 키워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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