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1회

하룻밤 자고 일어 났더니 내가 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난리가 났다. <나는 가수다>라고 하는, 무너져 가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새롭게 편성된 꼭지 하나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었던 것이다. 몇주전부터 소문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대체 기성 가수들을 데리고 (그것도 아이돌들도 아니고) 서바이벌 예능을 하겠다는 발상이 참 위험해 보였는데, 그래서 호기심반 걱정반으로 다운을 받아서 봤다.

김영희라는 유명한 피디가 연출하는 코너이고 이소라를 비롯해 한국 가요계에서 “짭밥” 좀 먹었다는 가수들 일곱명이 나와 자웅을 겨룬다. 그 노래를 현장에서 들은 관중들이 평가해서 꼴찌는 탈락한다. 목소리 하나에 모든 자존심을 걸어온 가수들이 “탈락” 과 “등수” 라는 카테고리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가수들의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구조이기 때문에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가수에게 슬랩스틱 코미디를 시키고 못웃기면 탈락시킨다고 하면 차라리 낫다.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수에게 노래를 하라고 하고 탈락을 시킨다고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당사자에겐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회에 나온 가수 일곱명중 내가 ‘목소리를’ 좋아하는 가수는 이소라, 박정현정도였다. 오 하지만 이게 웬걸, “일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나는 비록 일요일 아침이었지만) 라이브로 연주되는 가수들의 공연을 예능에서 본다”는 경험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가수들의 공연만으로 평가되는 이벤트이기에 사운드나 무대 구성도 신경쓴 흔적이 보였다. 물론 YB 의 밴드 사운드를 담아내기에는 상황이 열악했던 것인지 준비가 부족했던 것인지 좀 불만족스러웠는데, 거의 모든 가수들의 공연이 “생음악” 으로 펼쳐졌다는 건 나를 어느 정도 감상에 젖게 했다.

지금 가사를 외우는 노래, 혹은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들은 대부분 90년대 중후반, 늦어도 2000년대 초반의 노래들이다. 공교롭게도 CD 에서 MP3 로 대세가 넘어간 후에는 기억에 남는 노래가 몇 되지 않는다. 소비 패턴이 빨라지고 그만큼 기억에서도 노래들이 쉽게 지워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당시 우리가 즐겨 들었던 가수들, 예를 들어 오늘 나온 김건모라던지 신승훈이라던지 하는 뮤지션들의 포지션은 굉장히 애매하다. <7080> 이나  <가요무대> 에 나오기에는 너무 젊고, 빅뱅이나 2NE1 과 겨루기에는 힘이 부친다. 아니, 그런 방송에서 이들을 소화해 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AC/DC 나 U2 처럼 투어를 돌며 음악을 하기에는 한국의 공연 사정이 너무 열악하다. 미사리로 가야 할까? 그러기엔 아직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가수다> 는 아마 이런 어중간한 이들을 소비자들에게 공급해 주고 음악을 잘 듣지는 않지만 음악을 들었던 20,30대들에게 적당한 시장을 찾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탄생> 에서 화제가 됐던 김태원과 부활의 노래들이 갑자기 음원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한국의 음악시장 소비자들은 -특히 20대 후반 ~ 30대들은 – 되게 내성적이고 수동적인데, 그렇다고 이들이 음악을 들을 줄 모른다는 건 아니다. 좋은 음악이 공급되면 그걸 “돈을 주고” 소비할 정도의 용기와 판단력은 있다. – 10cm 도 이에 대한 좋은 예다 -이들은 지금 현재 너무 먹고 살기 바쁘기 때문에 평일에 틈틈이 음반가게나 온라인스토어를 뒤지며 좋은 음악을 정기적으로 소비할 형편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주말에 느긋한 마음으로 머리를 비우고 예능을 볼 정신은 있다. 김영희 피디가 노린 점은 이쪽이 아닐까? 나는 이 방송을 보며 귀가 번쩍 뜨였고 소름이 쫙 돋았다. 이 양반들이 어디서 뭘 하고 있었길래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걸까? 이건 “낭비” 가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이들의 모습이 반가웠다.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을 보면서 이들도 얼마나 무대에 서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애틋해졌다.

어제 유튜브에서 <스케치북> 에 출연한 부활을 봤었다. <위대한 탄생> 에서 그토록 무섭게 꾸짖던 그가 무대위에서는 상기된 표정으로 말을 잘 잇지 못하는 가수가 되어 있었다. “천년의 사랑” 이후 그를 공중파에서 거의 볼 수 없었다.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을까. 그리고 다시 무대에 섰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항상 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조금 더 시스템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돈이 안된다고 지레 겁을 먹으면 안된다. 한국의 20,30대가 한꺼번에 즉사하지 않는 이상 잠재적인 소비자층은 건재하다. 문제는 공급이다. 평일 심야시간에 방송되는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은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에겐 부담스럽다. “사고 싶은”, “소장하고 싶은” 음악을 제작해 내는 건 뮤지션의 몫이지만, 그걸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선전해주는 건 정부와 방송사, 언론매체의 몫이다.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요즘 들을 만한 음악이 없어” 다. 내가 중학교때부터 그 말을 들으며 자라왔다. 그런데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음악들이 “들을 만” 했던가. 결국 소비자에게 해당하는 건 노력의 문제다.

4 thoughts on “나는 가수다 1회

  1. 님 때문에 몇곡 찾아 들어봤는데
    전 회의 장면중, 장기호 얼굴이 눈에 들어오더군여~~ (예전 빛과 소금의..ㅋ)

    아 글구 제가 한국 프로 보는 사이트 주소요.
    여기가면 거의 모든 예능과 들마가 프리입니당.
    http://www.tutumedia.com/

    • 네 저도 반가웠어요. 장기호와 방성식.. 추억의 이름들이죠 +_+ 예전에 별이 빛나는 밤에 이문세가 진행할 당시 별밤뽐내기 대회라고 있었는데 거기서 이 둘이 나와 반주와 심사를 했던 기억이 나네요.

      사이트 감사합니다. 잘 챙겨 볼게요. 한국 방송을 많이 보는 편이 아니라 애용하지는 못하겠지만요 ㅋ

  2. 안그래도 얼마전에 술자리에서 입에 오르내렸었는데
    이러쿵 저러쿵했어도 결론은 좋은 프로라는 거였죠.

    박정현의 ‘꿈에’들을때 속으로 ‘아 얘가 1등이구나’ 했는데 진짜 1등이 되더라구요.
    노래 다 끝난 직후에 왜 그런 쌩뚱맞은 생각이 든건지는 모르겠는데..
    저 여자랑 사귀고 싶다…(ㅋㅋ) 라는 생각이 문득..-0-;
    정현씨(ㅋ)는 제 존재를 모르겠지만, 이런게 진정한 팬이 되어가는 징조인가 봅니다.ㅎ
    오랜만에 방송에서보니 더 아담해진것 같더라구요.

    • 평론가들이나 음악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보는 관점과 일반 팬들이 보는 관점이 이렇게 엇갈리는 프로그램도 드문듯 합니다. 전 좋은 노래 들려 줘서 일단 좋았구요, 그 의도와 메커니즘에서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대안도 딱히 없지 않나 싶네요.

      아 참, 저도 박정현씨 보면서 “그래, 교포도 괜찮아” 라고 다짐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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