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호: 당신은 거기 있었다


웹툰 <이끼> 이후 출판물의 형태로 나온 윤태호의 신작이다. 작년 여름쯤 초판이 나온 것 같다. 윤태호가 <야후> 이후 천착해 온 개인과 사회의 역학 관계에 대한 사유가 계속되는 듯 하다. <이끼> 에서는 작은 세계를 설계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하는 임상 심리학적 관점을 가졌다면, <당신은 거기 있었다> 에서는 통제가 불가능한 사회안에서의 개인의 파괴행위가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를 살피는 인류학적/사회학적 관점이 느껴진다. 작가의 시선은 여전히 날카롭고차갑지만 그 이면에는 세상을 향한 따뜻한 연민과 걱정이 함께 한다. 책 뒷편에 짤막하게 소개된 작가의 말에서 그는 인터넷이 보편화된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 대한 근심어린 시선을 숨기지 않는다. 이들이 과연 올바로 나아가고 있는 걸까. 이들이 과거에 없던 형태의 괴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책의 한장 한장에 가득 서려 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서울 강남의 좋아보이는 아파트에서 한 가장이 자살한 채로 발견된다. 경찰은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자살을 가장한 타살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유족 한명 한명을 심리하면서 그동안 밝혀 지지 않았던 치부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부인은 열다섯명의 남자와 외도를 하고, 자살한 남편은 그녀를 지속적으로 학대했다. 첫딸은 외과 의사인 지도교수와 불륜을 저지르고, 둘째딸은 사촌 오빠와 모텔에서 나오는 장면이 발각된다. 막내 아들은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노라 고백한다. 건실한 대기업의 성실한 임원으로 보여졌던 아버지는 정부가 있었고, 꽃뱀에 물려 회사 재산을 빼돌린다.  문제는 이러한 한 가족의 치부가 언론을 통해 낱낱이 공개되면서 가족이 파멸에 다다르게 된다는 것인데, 이 모든 과정을 뒤에서 조종하는 ‘디자이너’ 의 존재가 작품의 후반부에 밝혀진다.

작가는 이 ‘콩가루’ 가족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지극히 가부장적인 위악스러운 가장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단편적인 해석이 될 거다. 앞서 기술한 대로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가족이 아니라 이 가족을 파멸로 이끄는 ‘디자이너’ 다. 그는 작가가 상정한, 뒤틀린 자아를 갖게 된 젊은이가 괴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 뒤틀린 자아는 절대적으로 그가 속한 사회가 잉태한 것이다. 마치 <이끼> 에서 괴물같은 마을을 창조한 이장의 탄생과정과 흡사하다. 이를 막으려는 보통의 존재 – <이끼> 의 주인공 아버지, <당신은 거기 있었다> 의 수사반장 – 의 존재는 극히 미약하다. 이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에서 절대악을 막지 못하는 늙어 버린 형사의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다만 윤태호는 코맥 맥카시보다는 조금은 더 희망적인데, 결국 작품안에서 그 절대악의 끝을, 종말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 “끝” 은 악을 상징하는 인물의 표면적인 죽음이 아니다. 사회가 품고 낳아 버린 이 악의 근원을 사회 내부에서 스스로 정화시킬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 들리지 않는 희미한 숨소리같은 그 작은 바램에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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