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닉 캐러웨이는 중서부 출신으로 뉴욕에서 증권업에 종사한다. 그는 상류층은 잘 쳐다보지 않는 웨스트 에그에 거주하고, 그곳에서 매일 파티를 열어 사교를 즐기는 제이 개츠비와 전형적인 상류층 부부인 톰과 데이지 뷰캐넌 부부를 만난다. 닉 본인은 사교계의 flirt 조던 베이커에게 빠져 들고, 그는 바로 곁에서 개츠비가 어떻게 거짓된 삶으로 사람들을 현혹해 왔고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했으며 그렇게 형성된 재산을 이용해 과거의 사랑이었던 데이지를 되찾으려 하는지 목도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닉은 개츠비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끝까지 ‘친구’ 로서 남아 있게 된다. 개츠비와 데이지의 정사는 결국 톰에게 발각되고, 톰은 자동차 수리공 윌슨을 교사해 개츠비를 죽이고 아내를 되찾는다. 닉은 개츠비의 죽음 후 그의 장례식을 주관하고, 조던에게 버림받은 후 뉴욕을 떠나 본인의 고향인 중서부로 돌아간다.

팽귄 클래식 번역으로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읽었다. 수험생 시절 공부하기 싫다는 핑계로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읽었던 게 벌써 십년도 더 된 기억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른만큼, 이제 작품의 화자인 닉의 나이에 가까워진 지금, 개츠비를 읽는 느낌은 많이 달라졌다.

이 작품이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하며 또 아름다운지에 대해서는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이 처음 발간된지 약 85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 이 작품에 대해 다시 이야기한다는 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 를 지닌 고전의 미덕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끔 한다.

한 문장 한 문장이 그대로 작품의 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허투루 읽을 부분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짧은 기간동안의 한 사건에 집중하면서 중편에 가까운 구성 양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 사회의 공기를 오롯이 담아내는데에 한치의 오차도 없는 치밀함을 보여준다. 이스트 에그와 웨스트 에그로 대비되는 공간 개념부터 주인공 닉이 처한 위치,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 모두가 전후 ‘버블’ 이 극으로 치달았던 당시 미국 사회의 술에 취한 듯한 사회상을 정확하게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 닉과 개츠비는 뉴욕 출신이 아닌, 중서부 출신으로 “상류 사회가 덜 선호하던” 웨스트 에그로 상징화된다. 전통적인 뉴욕 상류층 출신인 톰과 데이지 부부는 이스트 에그로 상징화된다. 이 두 집단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당시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던 집단 허영심과 도덕적 공황상태를 충실하게 대변한다. 톰에게 이용당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마는 하류층 윌슨까지 동원되어 사회의 모습을 묘사해 낸다. 계층간 대립과 계층 내부의 부패, 그리고 그 계층 구조의 덧없음까지 문장 한땀 한땀에 진하게 베어 나온다.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잔인한 좌절의 늪으로 몰고 간 것일까? 돈과 자본주의 사회, 소유에 대한 집착과 욕망, 보여지는 것에 대한 굴복과 물질에 대한 복종. 그 모든 것이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적절한 지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우리는 개츠비와 닉이 빠졌던 늪에서 완벼하게 자유로울 수 없다. 개츠비는 데이지앞에서 참으로 낭만적이었고 철이 없을 정도로 비현실적이었으면서도, 재산 형성 과정에 있어서는 완벽에 가까운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그의 비뚤어진 욕망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데, 혹 우리는 그와 비슷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즉 왜곡된 가치를 스스로에게 주입해 그릇된 자기 정당화를 가져오지 않는가 말이다.

책에는 작품에 대한 대단히 좋은 해설인 토니 태너의 서문과 에스콰이어에 연재되었던 피츠제럴드의 수필 무너져 내리다 가 함께 수록되어 그의 문학적 배경을 짐작하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이만식 옮김. 2009년 1판 3쇄. 팽귄 클래식 코리아.

8 thoughts on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1. 중학교땐가 읽었던 책인것 같은데
    데이지가 딸이 태어났을때 하는 말이 인상 깊었던 듯.
    ‘i hope she’ll be a fool, that’s the best thing a girl can be in this world–a beautiful little fool.”

    (당시 나름 여자로 사는게 힘들다 생각했었나봐요..가슴에 화악 와닿았던듯)

    • 거의 모든 대사가 그런 식으로 냉소적이고 거칠고 서투르고 서글펐던 것 같습니다.

  2. 저도 요새 다시 읽고 있는데, ㅎㅎ 바즈 루어만의 위대한 개츠비 제작 소식 때문에 미국에서도 개츠비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고 하더군요. (아, 미국 사시니까 저보다 잘 아실수도^^;) 개츠비가 죽던 장면에서 잠시 멈추고 서문에 있는 시를 다시 봤는데 느낌이 절절했어요. Lover, gold-hatted, high-bouncing lover, I must have you. 피츠제럴드의 산문은 냉소적이고 독이 들어있으면서도, 아름다워서, 너무 좋아해요.

    • 그래요? 캐스팅 한번 찾아봐야 겠는데요. 바즈 루어만이라면 개츠비의 세계관을 재미있게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전 상아탑에 갇혀 사는지라 고상한 예술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몰라요 (..) 전 피츠제럴드 산문은 처음 읽어 보는데 괜춘하네요.

  3. 이 책을 읽기 위해 세 번의 시도를 했지만, 매번 1/3 도 읽어내지 못해 좌절감을 넘어선 패배감을 맛보았어요. 그렇기에 이 소설을 읽었다는 분을 보면 늘 궁금하더라구요. 재미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점이 마음을 울렸는지.

    하지만 모든 이가 (네, 물론 샘플은 다섯 명으로 매우 적습니다) 한글 번역본은 지루해서 읽기 힘들었다고 말했기에 한국에서 이 책은 하루키 덕에 인기가 부풀려진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한글 번역본조차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신선한 충격이네요. 경탄해 마지 않을 수 없군요. ㅎㅎ

    • 전 하루키의 소설을 거의 대부분 읽었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는 저만의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하루키의 소설을 통해 형성되는 여론이나 담론들이 썩 마음에 와닿지는 않아요. 물론 그의 수필은 좋아합니다.

      아마도 이 소설이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건 제가 읽으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인 것 같아요.

  4. 제 취향은 이천 년대 초중반 붐이 일었던 일본 소설과 멀찍이 떨어져 있었기에, 그 대표주자 격인 하루키는 읽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등의 몇 권의 소설을 읽으며 느낀, 전시된 허무주의, 쿨함으로 포장된 이기심, 허영 등에 매우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기에;; 당시 2,30대 여성독자를 타겟으로 쏟아져나오던 일본 소설은 무조건 패스였거든요. 제 판단에 하루키는 이미지로 소비되는 기이한 작가이기에, 그의 소설을 읽으면 뭔가 나 또한 그 소비에 편승하는 기분이 들어 은연중에 기피한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 권도 완독치 않고 판단한 방만함에 부끄러워지네요.;;)

    그런데 위대한 게츠비가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건, 저 또한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신선한 접근인데요. 음… 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결정적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전 글의 템포가 지나치게 느리다 여겼거든요. 그래서인지 인물 간의 대화나 사건이 떠오르는 게 아니라, 작가가 묘사했던 장경만이 잔상에 남아요. 예컨대, 게츠비의 집 안 샬롱(인지 거실인지)이 어떻게 생겼고, 그 소파에 여인들이 어떻게 앉아 있었고 등의 정적인 풍경이요. 이 소설은 유난히 그런 시각적 묘사가 자세하고, 빈번하게 이루어진 것 같은데… 제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가요? 더욱이 다른 문화권의 장경인 탓에 부분부분을 이미지화하는데 더 애를 먹어 과장해서 기억하고 있나 싶기도 합니다. 4번 째 시도를 하게 되면 유념해서 살펴봐야 겠군요.

    • 에쿠니 가오리에 대한 부분은 저도 심히 동감해요. 심지어 지금까지도 이런 ‘류’ 의 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죠. 하지만 결국 이것도 취향의 문제라고 싱겁게 결론내려 버렸어요. 그런 이미지를 소비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 자체를 문제삼는 것도 오버같거든요.

      저는 한국어로 쓰인 소설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읽는 편이기 때문에 템포가 느리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네요; 다시 읽어볼 여유는 없고.. 음. 그런 묘사들에서 느껴지는 개츠비와 그 주변인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에 애썼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그런 시각적 요소들이 결국 등장 인물들의 인격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제로 쓰인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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