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 아저씨, 이끼.

학기가 끝나고 한국 영화 세편을 다운받아 보았다. 간단하게 소감을 남긴다. 사실 소감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을 정도로 너무 지루하고 따분하게 봤는데 그래도 봤다는 기록은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 글자를 채운다.

세 영화중 그나마 장르적 재미를 잃지 않은 건 ‘아저씨’ 였다. 너무나 상투적이고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영화였지만 최소한의 기승전결과 관람자로 하여금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장치들이 곳곳에 잘 스며들어 있어서 끝까지 영화를 보게 만드는 맛은 있었다.

‘악마를 보았다’ 와 ‘이끼’ 는 어떻게 감독이 자신의 바닥난 재능을 이용해 여러 사람을 패가망신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심하게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김지운은 시네키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모를 법한 클리셰들로 영화를 가득 채운채 화면 곳곳을 피로 물들인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지 감이 한번에 오지 않는 가운데 장르적인 재미도 없고, 그렇다고 철학적인 고찰도 없으며, 최소한 ‘달콤한 인생’ 과 같은 때깔나는 화면 구성조차 없다. 이런 영화를 흔히 쓰레기라고 부른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강우석은 이제 감독으로서 아무런 능력이 더이상 남아 있지 않음을 ‘이끼’ 를 통해 잘 보여줬다. 제작이나 하면서 노년을 보내야지, 더이상 메가폰을 잡으면 이건 주변 여러 사람 신변 정리하게 만드는 꼴밖에 더 안나겠나 싶다. 스크롤을 내리는 것만으로 통쾌한 긴장감을 선사함과 동시에 화면 곳곳에 숨어 있던 사회적 고찰을 발견하는 재미까지 주었던 원작 만화에 비해 영화 ‘이끼’ 는 너무 유치하고 따분한, 세시간에 가까운 영화판 ‘서프라이즈’ 를 보는 느낌이었다. 돈은 세트 제작에 다 갖다 부었는지 배우들은 뻣뻣한 목석 마냥 대사를 읽을 뿐이고, 현장에 인터넷 잘되는 노트북 가져다 놓고 원작 만화를 스크롤하며 쪽대본을 썼는지 영화적인 구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지운과 박찬욱을 싫어한다. 김지운 영화중에서는 ‘달콤한 인생’ 을 유일하게 흥미롭게 보았고, 박찬욱은 ‘복수는 나의 것’ 이후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감독들이 한국 영화 자본의 중심에 서 있다는 건 자본 흐름이 심하게 비효율적으로 움직인다는 걸 뜻한다. 할리우드의 거대 자본의 힘에 대항할 만한 맛깔나는 상업 영화를 만들던가, 아니면 소자본으로라도 작품성을 추구하는 작가주의 영화들을  지원하던가 해야지, 돈은 돈대로 써가며 벽에 똥칠하는 거품만 잔뜩낀 감독들에게 자꾸 기회가 가는 것이 못마땅하다.

결국 올해도 홍상수 아니면 이창동인가? 2000년대 들어 허진호를 제외하면 항상 이 둘이 올해의 한국영화를 양분했다. 그리고 이 두명의 ‘작가’ 들이 예산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언제까지 홍상수 영화에는 배우들이 노게런티로 출연해야 하고 이창동은 영진위와 씨름해야 하는 걸까.

4 thoughts on “악마를 보았다, 아저씨, 이끼.

  1. 순전히 취향의 문제겠지만
    김지운, 강우석의 영화는 잘 만들었구나, 라는 생각은 가끔 들면서도
    불편한 기분은 지울 수가 없어요.
    사실 영화같은거 요소를 따져가며 볼만한 지식을 가지지 못해서
    불편하다. 라는 혼잣말을 하죠.
    주류의 취향이라는거 꽤 무서운거거든요.^^;
    (시카고에 있는 친구도 비슷한 말을 했어요.
    김지운에 대한 코멘트말이예요. 아마도 그 문화 공간에 속해있는거랑
    벗어나 있는건 아무래도 다른가봐요. 좀더 객관적이 된달까.)

    • 영화를 보는 내내 돈이 어떻게 낭비되었는지 생각하다 조금 화가 나 심한 표현을 썼어요. 하지만 여전히 그 둘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이제 한국에도 위타세라쿤같은 혁신이 한번 나올 때가 된 것 같아요. 기대해 봐야죠. 그 바닥의 돈이 올바로 쓰이길 바라며.

    • 박찬욱에 대한 생각은 저도 비슷해요.
      (김지운의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고) 자기 골방에나 채워넣을 욕망을 너무 많은 사람에게 늘어놓고 있는 노출증 환자라는 표현. 이 적절하죠.

    • 반찬욱은 대학 선배인데도 참 정이 안가네요. 제가 은근히 지연과 학연에 약한데 (..)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철학이나 인생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의 영화를 볼까요? “깐느” 나 “올드보이” 때문에 보는 사람이 훨씬 더 많지 않을까요? 그래서 더 답답해요. 감독과 관객간에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 같지도 않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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