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보는 남자

어제는 오랜만에 살림을 했다.

“유학생 trilemma” 라는 법칙이 있다. 공부, 살림, 운동중 반드시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는 법칙이다. 공부도 잘하고 싶고 운동도 하고 싶다면 살림을 등한시해야 한다. 밥도 잘 챙겨 먹고 살림도 꼼꼼히 하고 싶은데 운동도 하고 싶다면 공부를 접어야 한다. 세가지중 두개는 택할 수 있지만,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는 반드시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물론 내가 어제 설거지하면서 만든 법칙이다.

나는 공부와 운동을 택했다. 그렇다고 물론 이 두가지를 성공적으로 잘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살림을 등한시하는 것에 대한 변명거리를 찾을 뿐이다. 그러던 중 어제는 무슨 필이 꽂혔는지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요리도 하고 빨래도 했다. 그제밤 갑자기 향수병이 몰려와 한국 음식 냄새로 집안 곳곳을 채웠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설거지거리가 늘어나게 됐고, 하는 수 없이 설거지를 하게 되다 보니 방 구석 구석 쌓인 먼지가 눈에 들어와 청소기도 한번 돌리게 된 것이다. 턱쪽에 여드름이 몇개 났는데 이게 베개독이 아닌가 싶어 이불 빨래를 하게 되니까 자연스레 쌓여 있던 옷빨래들까지 같이 하게 된 것이고.

인스턴트이긴 하지만 쭈꾸미볶음과 도가니탕으로 배를 거하게 채우고 집까지 깨끗하게 정리하고 커피 한잔까지 마시고 나니 시간이 이미 많이 흘러 있었다. 결국 공부를 포기하게 됐다. 이것이 바로 유학생 trilemma! 시간의 유한성과 유학생의 바쁜 일상이 묘하게 맞아 떨어진 신비의 법칙이다.

그렇게 평소에 자던 시간에 자리에 누웠는데 이상하게 오늘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게 되는 거다. 학교옆 기숙사 아파트에 살다보니 풋볼 스타디움과 거리가 무척 가까운데 오늘 낮경기때문에 소란스러워서 깬건가 싶었는데 막상 밖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어제 공부를 안해서 체력이 남아 도나 싶었는데 이게 정답인 것 같다.

자주 가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어떤 남자의 고민글이 올라왔다. 자기는 이성의 내면을 많이 본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에 자기 스타일의 여자가 다른 남자와 손을 꼭 붙잡고 가면 그렇게 질투가 난다고. 내가 뭐가 모자라서 외모가 안되는 여자랑 사귀나 싶다가도 지금 여자친구 성격이 너무 좋아서 차자 헤어질 수는 없다는 뭐 그런 연애 상담글이었다.

누구나 내면을 본다고 말한다. 외모만 보고 사귀거나 결혼하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최소한 내 주변에는 그런 경우를 찾기 힘들다. 만나서 얘기하다 보니까 너무 마음이 잘 맞고 그러다 보니까 사귀게 됐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만나서” 가 중요하지 않을까? 어떻게 만남을 시작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출발점에서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무시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다. 상대의 성격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외모에서 그닥 끌리지 않는다면 대화를 차분히 이끌어 나갈 마음의 의지가 얼마나 생길까? 물론 이부분에서는 사람의 성격이 크게 좌우한다. 어떤 이의 경우에는 외모와는 상관없이 성격을 알기 위해 꾸준하게 대화를 시도하는 반면, 어떤 이는 이성으로서의 감정 자체를 소멸시켜 버린다. 나는 외모가 크게 어필하지 않더라도 대화를 이어나가는 경우다. 다만 그 사람과의 관계 설정은 충분한 대화 이후에 마음이 결정하는 것 같다. 쉽게 마음이 동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거니와 (한눈에 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제시카 알바를 만나면 또 모르지만..) 어느 누구에게나 좋아할만한 구석은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도 않는다.

어떤 이들은 또 주장한다. 눈빛속에 뭔가 담겨져 있다고, 혹은 외모에서 성격을 볼 수 있다고 등등. 외모와 성격을 연결시켜 보려고 노력한다. 나는 그런 시도에는 반대하는 편이다. 첫째 외모와 성격을 연결시키려는 시도 자체가 외모를 중시하는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둘째 그냥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외모는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냥 난 외모만 따져, 라고 말해도 그게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는 아무런 지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외모가 좋으면 그 기호를 따라 가면 되는 거다. 다만 좋아하게 되면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외모에서의 매력을 뒤늦게 발견하는 경우는 있다고 본다. 흔히 말하는 콩깍지, 가 좋은 예다.

나는 이쁜 여자가 좋다. 하지만 이쁘지 않더라도 자기 자신을 이쁘게 사랑하는 여자가 더 좋다. 남들이 볼땐 못생겨 보이는 외모라도 스스로 자신있게 행동하면 자연스럽게 이뻐 보이게 된다. 지금까지 내가 좋아했던 여자들은 다 그런 쪽이었다. 얼굴이 이쁘기 보다는 표정이 이쁘다고 해야 하나? 여자는 사랑을 받으면 더 이뻐진다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봐주면 그 어느 누가 찡그린 표정을 짓겠는가.

다 맞는 말이다..

옆집에 드디어 누군가 새로 이사왔나보다. 음악 소리가 들린다. 나도 이제 컴퓨터를 끄고, 음악을 좀 틀어야 겠다.

14 thoughts on “외모보는 남자

  1. 유학생 트릴레마! 훌륭한 이론입니다.
    전 운동을 포기…가 아니고 귀찮…은 것도 아니고, 다만 운동을 싫어하는 것 뿐이로군요.

    • 대신 엄청 맛있-어 보이-는 요리를 하시잖아요! 전 요리가 그냥 귀찮은 것 같아요 +_+ 소질도 없구요.

  2. 하하 진짜 맞는 거 같은데요! 종혁님 훌륭한 경제학자가 되실거에요 ㅎㅎ
    외모도 중요하죠. 외모도 그 사람의 매력의 일부분이니까. 연애를 지속하려면 외모를 포함한 그 사람의 총체적인 모습에 매력을 느낄 수 있어야 되는거 아니겠어요.

    • 그럴듯한가요 :)
      연애를 하면 외모에 대한 비중이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고 들쑥날쑥인 것 같아요. 좋아하니까 이뻐 보였다가, 너무 자주 봐서 좀 신선한 느낌이 떨어지는 것도 있구요. 잘 모르겠어요 하하

  3. 유학생 trilemma라..정말 공감인걸요? 가끔씩은 세가지중에 두가지를 제대로 하기도 참 시간이 모자른다는 생각이 든다는..^^

    • 제 말이요. 셋중 한가지라도 제대로 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요?

  4. ‘외모를 본다’는 것과 같은 맥락인지 혹은 좀 다른맥락인지 모르겠지만, 처음 만나고 나서 그 후의 만남을 결정하는데는 외모가 큰 몫을 하는건 기정사실인 것 같아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죠. 성격을 혹은 내면을 잘 알기 위해서는 한번의 만남으로 되는게 아니잖아요. 한번의 만남 거기에 따른 몇시간 혹은 몇분간의 대화에 플러스로 외모에 대한 어느정도 나쁘지 않은 인상이 있어야, 한번의 만남이 두번의 만남이 되고, 또 두번의 만남이 계속 관계를 이어나가게 하곤 하니까요.

    예쁜 표정을 발견하고, 예쁜 미소를 발견하고, 예쁜 몸짓을 발견하는건, 상대가 정말 제시카 알바처럼예쁘기 생긴게 아니라면,
    이 역시 알면서 발견하게 될 확률이 크죠. 자꾸 보다보니 오늘 상대의 눈빛이 다른날보다 빛나보이고, 만나다보니 근사한 미소를 가지고 있고 하는 것들이요.

    누구나 보면 아름다운 절대미모라는건 존재하겠지만,
    내게 중요한건 ‘내게’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아요.
    우리는 ‘못생겼다’고 생각하면서 연인으로 두지는 않잖아요. ‘예쁘다’고 혹은 ‘잘생겼다’고 생각하면서 사랑하고 살고 있죠. 우리에겐 그들이 그렇게 보이니까요.

    •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못생겼다’ 라고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객관적인 시선 자체가 불가능할테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네요 +_+

      흔히 말하는 ‘두근거림’ 은 외모에서부터 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흔히 말하는 ‘확신’ 은 성격에서부터 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구요.
      둘다 연애에서 꼭 필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5. 그러니깐, 외모를 안본다는 말은 다 뻥이라니깐요. 굳이 잘 생기거나 예쁘지 않더라도 뭔가가 맘에 들면 외모는 그걸로 오케이 아닌가요. 하지만 그것조차도 외모를 안본다 라고는 말하지 못하는 거죠. 개인적으로는 조각같이 생긴것 보다는 보면 볼수록 정드는 외모가 더 안질리고 좋은것 같아요. 어차피 몇달 지나면 그게 그거인것을. ㅋㅋㅋ

    • 정말로 몇달 지나면 다 그게 그거가 되나요?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십년 사귄 김태희보다 오늘 처음 만난 신봉선이 더 이뻐 보인다.”

  6. 저는 외모가 문턱전압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고보니 전 누군가를 볼 때 외모 외적인 요소(표정, 목소리, 행동, 말투, 시선 등)를 더 따지는 것 같기도 하네요. (물론 주관적인 기준으로) 짜가 님 말씀 중 “몇 달 지나면 다 그게 그거”에 해당되는 것은 외모, 다 그게 그거가 아닌 것은 외모 외적인 요소!

    • 저도 이 글을 쓰면서 다시 곰곰히 생각해 봤어요. 확실히 외모를 많이 보는 것 같아요. 그게 절대적인 건 결코 아닌데, 말씀하신 것처럼 일종의 진입장벽처럼 작용하네요.

  7. 윤종신의 ‘본능적으로’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어요.

    -그 S라인에 난 자석처럼 끌려
    나도 모르게 침을 한 방울 흘려
    오해하지마 나는 속물 아냐
    사랑을 가능케 하는건 본능이야
    우연인지 운명인지 나는 너의 앞에 왔어
    계산 같은건 전부 다 은행에 맡겨-

    사랑을 시작하게 하는건 시각적 본능이고
    진행시키는건 나머지 감각들이 동원되서
    두뇌에서 나도 모르는 계산기가 돌아가게 되는거죠.
    물론 그 계산기 엉터리지만 후후..

    전 외모가 먼저라고 생각하는데
    원빈보다는 하늘달리다를 부르는 이적이 더 좋은편. ^^
    확고한 기준이 있는거죠.

    아참, 주소 갱신해야되요.
    주소만 두번인가 물어봐놓고 아무것도 보내지 못해서 쑥쓰러운데,
    지난 봄에 물었을때 8월에 주소가 바뀔거라고 한거 같아서 다시 물어요.

    • 전 외모에 혹해서 좋아하거나 사귄적은 딱 한번밖에 없었어요. 대부분은 외모외적인 이유때문이라고 생각했죠.. 함께 지내다보니 좋아지는 그런. 그런데 요즘 생가해 보면 꼭 그랬던 것 같지도 않아요. 지금까지 사귄 사람들이 외모적으로 갖는 공통점이 극히 제한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성격에서 갖는 공통점은 아예 없다시피 했거든요. 어쩌면 연애나 결혼은, 아주 우연적인, 혹은 우발적인 상황에서 주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똑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이라도 언제 보면 덜컹, 하다가도 다른 때 보면 시큰둥하고 뭐 그러기도 하잖아요.

      원빈보다는 이적이라.. 확고한 기준이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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