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ia

1년에 한번씩 한국에 들어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거리감이 점점 더 크게 느껴졌다. 거리감은 단순히 대화에 있어서 공통 화제가 없다는 표면적인 현상들에서 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 정체성, 혹은 그외 한 개인을 형성하는 무형의 조건들에서 더이상 공통점을 찾기 힘들어 진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이 어느 조직에 속하게 되면, 왠만큼 자아 정체성이 확고하게 박힌 사람이 아니라면, 그 조직과 사회의 문화에 어느정도는 길들여 지게 된다. 그러니까 한 사회에 오랜 기간 함께 한 사이라 하더라도 각기 다른 사회로 떨어져 나가 또다시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면 예전보다 느껴지는 동질감같은 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건 거의 모든 인간, 거의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일반론이다. 하지만 그 정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지난 2년간 내가 경험했던 ‘거리감의 가속화’ 는 내 인생 전체를 통털어도 상당히 빠르다고 느껴졌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내 친구들중 현재 나 하나만 아직 학교에 머물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들 직장에서 돈을 벌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하거나 (하지만 역시 돈을 번다), ‘자격’ 을 위해 공부를 한다. (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한, 혹은 어딘가에 들어가기 위해 하는 공부와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인 공부를 구분하자) 학교와 학교가 아닌 곳. 굉장히 단순하게 이렇게 두 가지 세상으로 나눌 수 있다면, 내가 느끼는 급속한 거리감의 확대는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한 수준일 것이다.

물리적 공간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전혀 다른 언어/문화/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는 곳에서 적응하기 위해 애쓰다 보면 예전에 익숙했던 사회를 그만큼 빠르게 잊을 수 있다. 근데 이게 그렇게 유의미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한국에 가서 사흘만 있으면 시차가 적응됨과 동시에 무엇을 해도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아주 자연스럽게 동화되어 버리니까. 단순히 몸에 새겨진 습관의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보다는 지금 내가 속한 사회의 특수성에서 이유를 찾고 싶다. 지난 2년동안,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거라곤 어떻게 하면 이번 학기를 무사히 넘길까, 이다. 논문을 읽고, 교과서를 펼쳐 보고, 교수님께 달려가 애원도 해보고, 글을 쓰고, 글을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또 교수님께 여쭤 보고, 그러다 또 논문을 보고. 그러다 하루가 가고 일주일이 가고 한달이 가고 한학기가 지난다. 그렇게 두학기를 지나면 어느새 다시 한국에 갈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이 손에 쥐어져 있다. 학교밖을 벗어난 삶은 꿈도 꾸지 못한다. 차를 타고 두세시간만 나가면 멋진 곳들이 펼쳐 진다. 아니, 비행기를 타고 몇시간만 가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들이 손을 뻗친다. 돈이 엄청 궁해 라면만 먹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학교 밖을 벗어나지 못한다. 마음이 가난한 것이다. 읽어야 할 책, 읽어야 할 논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한 마음의 여유란 사치에 불과하다. 집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는 건 괜찮지만 영화를 보러 가거나 덴버에 나가 hang out 하는 건 안된다. 조심스러운 것이다. 내가 정해 놓은 공간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무이다.

공부하는 곳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특성은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다. 아무튼, 음악을 듣거나 공연을 보러 가거나 운동을 하거나 스포츠 중계를 보는 것 따위는 그저 취미 생활일 뿐이다. 그런 주변적인 것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그것들이 내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드는 지에 대해서는 더이상 이야기할 필요도 없지만, 그것들이 내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들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만약 공부를 업으로 삼고 싶거나, 혹은 석사 수준 이상의 공부를 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진지하게 나의 경험을 들려 주고 싶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외로워 지는 것 같다고.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떠나지 않고 지적인 자극을 주는 환경이 곳곳에 펼쳐져 있어 단 한순간도 심심한 적이 없다. 하지만 안으로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수준은 내가 생각했던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다.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를 하면 “끝” 이란 게 있는 지 모르겠다. 일의 끝은 없어도 퇴근이라는 하루의 종결점은 존재할 것 같다. 공부에는 그런 게 없다. 파고 파면 더 해야 할 것들이 보인다. 스스로 끝을 정해야 한다. 그 끝은 자기 능력의 “한계” 이다. 난 이정도밖에 안돼, 라고 스스로 한계를 정한다면 그 정도 수준에서 공부의 끝을 정할 수 있다. 그러니까 공부라는 건 상당히 자기 파괴적이고 자기 비하적인 활동 영역이다.

지금도 돈버는 것을 포기하고 공부하기로 결심한 그때의 선택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세상에 이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싶다. 일정 수준 이상의 명성과 인프라를 갖춘 학교에서 뒤쳐지지 않고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게 해준 신에게 하루에도 몇번씩 감사한다. 특출난 재능은 없지만 공부가 왜 재미있는지 그 “맛” 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머리를 허락받은 것을 둘도 없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개인적인 재미의 차원을 벗어나 분명히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처음에 쓴, 멀어지는 한국의 친구들같은 문제들.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난 이미 이쪽 세상에 몸과 마음을 바쳤으니, 다시 돌아갈래야 돌아갈 수도 없다. 공부를 중도에 포기하고 한국에 가서 회사에 취직하는 상황이 발생해도, 이 곳에서 – 그러니까 ‘학교’ 에서 – 체득한 가치들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밑바탕위에서 살아갈 것 같다.

그래서 요는, 공부를 하고 싶다면,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라는 얘기. 생각보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나는 너무 쉽게 결정해 버렸다. 후회는 없지만, 아마도 후회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6 thoughts on “academia

  1. 저도 가까이서 박사 과정 하는 사람을 보니 이거 정말 아무나 하는거 아니구나 싶더라구요. 전 일하는게 좋아요. ㅎㅎ

    • 저도 가끔 능력에 한계가 느껴질 때가 있어요. 사실 가끔이 아니죠.

    • sue 님 회사 이야기를 들으면 얄짤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부디 직장일도 결혼일도 술술 잘 풀리셨으면 좋겠어요. 한복 이쁜 거 고르세요!

  2. 그 마음가짐이 저는 너무 부러워요. 공부가 재밌다는거, 그리고 그 배움의 과정을 즐긴다는거.
    석사과정이라도 학부가 아닌이상 정말 학문에 대한 갈증과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그걸 원해서 학교에 왔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취업문제에 목숨건 돌팔이 학생 -_- 빨리 취업문제가 해결돼서 배움을 즐겨보고 싶어요 ㅠㅠ 오늘도 수업은 생까고 인터뷰 준비하는척 하면서 인터넷 서핑중..아마 내일도 그럴듯. 흑.

    • 아직 철이 덜들었나 생각도 들고요 ㅎ

      좋은 곳 취직하셨으면 좋겠어요. 원하는 일 하시면서 돈도 왕창 버는 그런 곳이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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