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alkmen w/ Japandroids in Fox Theatre, Boulder

바쁜 일요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미사를 보고 (오랜만에 혼자 봤다) K 를 만나 브런치를 먹고, 머리를 깍았다. 한번쯤 혼자 집에서 삭발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기회에 실천해 봤다. 한국에선 남녀노소 머리스타일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눈치보느라 차마 도전하지 못했는데, 저번에 사둔 기계를 이용해 욕조에서 혼자 쓱쓱 밀었다. 나는 시원해서 꽤 괜찮은 것 같은데, 보는 사람들마다 상당히 슬퍼했다. 왜? 뭐가 어때서? 동정하지 마.

잠시 다운타운에 있는 카페에 가서 논문을 좀 읽다가 학교에 가서 농구 시합을 했다. 준결승전이었다. 우리팀은 한번도 결승에 가본 적이 없다. 항상 준결승전이 최고 성적이었다. 결과는, 아쉽게도 이번에도 여기서 스탑. 상대팀이 너무 잘했다. 우리도 못한 것 없이 선전했는데 기본적인 실력에서 밀렸다. 나도 3점슛 몇개를 미스해 패배에 일조했다.

우울한 마음을 안고 S,C 와 밥을 먹으러 갔다. 사실 밥보다 술이 먹고 싶었다. 어제 사우스 캐롤라이나가 졌고, 오늘 낮엔 카우보이스가 졌다. 그리고 저녁엔 우리 농구팀도 졌다. 좀 안풀리는 주말인 셈이다. 바에 앉아 해피 아워 음식들을 집어 먹으며 추수감사절 기간동안 샌안토니오에 놀러갈 계획을 짰다. 월요일에 가서 금요일에 돌아오는 비행기편이 200달러 남짓. 나는 가겠다고 했다. 여행이 너무 고팠다. 추수감사절기간에 할일이 태산이지만, 일단 배를 째기로 했다.

술에 거나하게 취해 학교 건물로 들어와 빈 교실의 프로젝터를 통해 MNF 을 봤다. 우리가 응원하는 레드스킨스마져 패했다. 그 전에 우리가 응원하던 샌프란시스코도 NLCS 에서 패했다. 오늘 진짜 내가 응원하는 팀은 다 졌네.

첫번째 오프닝 밴드는 건너뛰기로 하고 술을 좀 더 마신 후, 아홉시 반쯤 느릿느릿 공연장으로 향했다. 마침 첫번째 오프닝밴드가 막 끝나고 두번째 오프닝 밴드인 Japandroids 가 나오는 시점이었다. 재팬드로이즈는 캐나다 밴쿠버 출신의 2인조 펑크 밴드이다. 베이스가 없고, 드럼과 기타만으로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No Age 와 비슷한 카테고리에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꽤나 ‘흉폭’한 사운드를 들려준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2009년 최고의 앨범중 하나였던 <Post-Nothing> 에 있는 거의 모든 곡을 연주했다. 공연을 보면서 든 생각은 얘네가 정말 그린데이 이후, 혹은 모과이 이후를 대변하는 ‘다음’ 세대가 아닐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꽤나 인상적이었다. 아직 많이 덜 다듬어 졌지만 원석 자체만으로 훌륭했다.

그리고 꽤나 오랜 기다림이 있었다. 아마 공연장비쪽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 공연이 시작되고도 보컬 사운드쪽에 문제가 계속 생겼다.

Indie 씬에서 생각만큼 엄청난 걸작은 사실 몇작품 나오지 않고 있는 2010년에서 내가 생각하는 ‘올해의 앨범’ 중 하나인 <Lisbon> 을 발매한 워크맨의 공연이 시작됐다. 워크맨은 항상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속상한 뮤지션” 들중 순위권에 꼽히는 밴드다. 지금까지 총 네장의 (메이저)앨범을 발매했고(두장의 마이너 시절 앨범이 있다), 앨범을 거칠 수록 조금씩 더 좋아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생각보다 큰 대중적인 관심은 받지 못하는 것 같다. 1집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의 실패없이 본연의 이미지를 확고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는 점에서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기도 하다.

공연은 앨범으로 들었을 때보다 훨씬 더 좋았다. 좋았다, 라고 말하기 전에 뭔가 달랐다, 라는 말을 먼저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플레이어를 통해 들었던 이들의 사운드는, 몽환적인 구름 사이를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먹먹한 안개가 자욱히 낀 어느 작은 마을을 달리는 느낌도 들었다. 그 속에서 서정적인 울림들이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꿈을 꾸는 듯한, 지상에서 약간은 붕 뜬 듯한 느낌. 그게 내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워크맨의 음악에 대한 이미지였다. 그런데 실제 공연장에서 만난 이들은 훨씬 더 ‘성숙’ 했다. 분명히 개러지에서 시작했을텐데, 지금까지 한번도 커다란 대중적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텐데, 네장(혹은 여섯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지내온 지난 7년의 세월동안 그들은 굉장히 어른스러운 음악인이 되어 있었다. 상당히 고전적인 형태의 악극을 하나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애디트 삐아프의 공연처럼 말이다. 시작부터 마구 달려서 관객들을 미치게 만드는 그런 요즘의 공연들이 아니라 극의 순서가 명확히 정해져 있는 그런 공연말이다. 정중하게 인사하며 시작하고, 새로운 앨범에 속한 곡들을 먼저 순서대로 다 들려준 후, 예전 곡들중 지금 현재 의미를 가지는 곡들을 설명과 함께 다시 연주했다. 그 흔한 앵콜 요청에 응하면서도 “you still stay here” 라고 감사의 인사를 한 후 멤버들을 한명씩 소개하며 끝내는 무대. 뭔가 고전적인데 뭔가 색달랐다. 가장 최근에 싱글 커트된 “angela surf city” 로 공연을 시작해 그들의 시작을 알렸던 초기 히트곡 “the rat” 을 앵콜에 포함시키는 그런 회귀적인 공연 구성이었다. 공연 내내 무척 여유로워 보였고, 무대 장비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결코 당황하는 기색없이 공연장의 흐름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몇번이나 소름이 돋았는지 모른다. 보는 내내 참 좋았다. 최근에 이렇게까지 만족한 공연이 또 있었나 싶다. 세시간 넘게 서있다 보면 결국 막판에는 지치거나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비록 허리는 쑤셨을지언정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워크맨의 정체성을 확립시키는 다른 축인 브라스가 공연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브라스가 요긴하게 쓰인 좋은 곡들을 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좋은 건 좋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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