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간의 노력 후

이번 학기에도 세과목을 듣는다. research methods 라는 박사 과정생들을 위한 연구/논문작성법 수업을 의무적으로 3년차때 들어야 하고, 나머지 두과목은 세미나 과목으로 채워야 한다. 나는 Nonparametric econometrics 와 History of economic development 를 선택했다. 경제사는 한번 꼭 들어 보고 싶은 과목이었고, 계량경제학은 내 취약 분야중 하나였기 때문에 보강한다는 생각으로 신청했다. 아마 이번 학기가 세과목을 한꺼번에 듣는 마지막 학기가 될 것 같다. 다음 학기는 research methods part 2 와 재수강해야 하는 게임이론 한과목만 들을 예정이고, 한과목 남은 세미나 과목은 4학년때 새로운 논문을 시작하면서 교수님과 independence study 를 한번 더 해서 끝낼 생각이다.

… 그럴 생각이었다. 불과 몇분전까지.

metrics 수업은 총 네번의 숙제가 나오는데, 방금전까지 두번째 숙제를 하기 위해 끙끙거리다가 결국 포기했다. 증명 문제들은 모두 끄적거릴 수 있었지만 가우스 코드를 사용해 구해야 하는 코딩 문제는 오래 쳐다본다고 풀리는 성질의 것이 아님을 네시간여의 “쳐다봄” 후에 깨달았다. 난 매틀랩을 주로 사용하는데 교수님이 가우스 코드만을 올려 주시니 그걸 일일이 해석해야 했다. 첫번째 숙제때는 그럭저럭 어떻게 넘어 갔는데 두번째 숙제부터는 이게 장난이 아닌지라, 단순히 노력한다고 되는 뭐 그런 게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이럴땐 참 이과생 혹은 공대생이 부럽다. 암호와 흡사해 보이는 컴퓨터 언어들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걸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난 이제서야 더듬더듬 매틀랩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누구나 한두개쯤 자유자재로 만질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공대생들은 C++ 이나 매틀랩, 혹은 가우스를 주로 다루고, 가끔 매쓰매티카를 쓰기도 하는 것 같다. 통계학을 하는 사람들은 가우스를 좋아한다. 매틀랩도 물론 사용하고. 나같은 문과생들은 일일이 코딩해야 하는 파워풀한 프로그램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stata 나 sas 같은 걸 선호한다. 대부분의 micro level economist 들은 스타타에서 멈춘다. 계량을 하는 사람들은 가우스나 이뷰즈를 쓰고, 거시를 하는 사람들은 타임시리즈 시뮬레이션때문에 매틀랩을 선호한다. 나는 지도 교수님이 매틀랩을 쓰셔서 덩달아 매틀랩을 배우고 있다. 물론 프로그램을 잘 다루는 사람이 보면 한심해 할 것이다. 가우스나 매틀랩이나 그게 그건데 왜 못한다고 징징거리지, 하고. 하지만 내츄럴 본 컴맹으로 태어나 이정도까지 끙끙거리는 것도 내 딴에는 대견할 뿐이다 ㅎㅎ

그래서 결론은, 내일 얼른 계량 수업을 드랍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더이상 이 엄청난 괴로움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나처럼 research idea 가 계량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계량 이론때문에 고통을 받는다는 건 약간 손해인 것 같다. 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내 지도 교수님중 한분께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분은 ‘tool’ 은 많이 배워두면 좋다는 식으로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참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 밤을 기점으로 더이상 참지 못할 것 같다 ㅋ 수업을 드랍해야 겠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마음이 한없이 편해졌다. 세상이 밝아 보였다. 불과 몇분전까지 모니터를  빨려 들어갈 듯이 노려보며 머리털을 잡아 뽑고 있었는데 마음 한번 고쳐 먹었다고 이렇게 마음이 편해지다니. 인간 참 간사하다.

이른바 조삼모사다. 지금 편하고 나중에 좀 고생할래, 지금 고생 좀 하고 나중에 편할래, 하고 묻는 것과 같다. 나는 일단 지금 당장 숨을 좀 쉬고 싶다고 스스로에게 답했다. 지금까지 참고 해온 것도 참 장한데, 조금만 더 넉넉하고 여유롭게 가보자, 하고 스스로를 달랬다.

4 thoughts on “4시간의 노력 후

  1. ㅋㅋㅋ 맷랩…죽음이죠. 오빠들 덕분에 학부때는 맷랩 안배우고 버텼다가 대학원와서 배우느라 죽을뻔해서 참 공감이 가요. ㅋㅋ lookfor 가 모든걸 해결해준다지만 생각이 처음부터 체계적이지 않으면 참 어려운거 같아요. 그룹 프로젝트할때보면 뱅커들은 다 엑셀로 시작부터 끝을 보는데 공대생들은 간단한 계산이나 그래프같은것도 맷랩으로 하는거 보면 은근히 웃기다는..

    • 흐 lookfor 도 한계가 있죠 -_- 전 그래서 결국 책 한권 샀네요.. mastering matlab 7. 혹시 갖고 계신가요? 꽤 괜찮은 것 같아요. 쓰면 쓸수록 맷랩이 참 파워풀한 랭귀지라는 생각이 드네요.

  2. “… 그럴 생각이었다. 불과 몇분전까지” 에서 빵 터졌어요. 우하하하~
    결국 드랍 하셨군요. 내 그 기분 잘 알지요. 끝까지 안해서 자존심이 좀 상하는것 같지만 그러면서도 숨통이 트여지는 후련함.
    하지만 이를 우짠대요. 지금 매는 피했지만 나중에 맞게 생겼으니. 헤헤헤. (후다닥!)

    • 그러게요. 조삼모사죠. 지금 당장은 후련하지만 결국 다음 학기 다다음 학기로 넘어가는 것이니.. 그때 좋은 과목이 개설되기만을 바랄 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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