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로 사건


아직 이 사건이 진행중이라 확언같은 건 하지 못하겠다. 검찰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양측의 주장도 새롭게 reform 되어서 제기되고 있는 터라 아직 종결된 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다. 다만 지금까지의 추이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점 몇가지만 메모.

1. 인터넷 여론은 그 자체로 어떠한 권위도 획득하지 못한다. 인터넷에서 수십만명이 떠들어 봤자 공중파 방송 하나의 위력만 못하다. 다만 인터넷상의 소수의 그룹내에서 일종의 권위자가 출현할 수 있다. 미네르바라던가, 이번 사건의 핵심인 왓비컴즈같은 인물이 그렇다. 이들은 그 소수의 그룹내에서 여론을 이끌고 일종의 오피니언 리더로 군림한다. 하지만 그가 유력 언론 매체와 같은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이들을 대하는 일반 대중의 속성은 생각보다 미온적이고 유보적이다.

2. 공중파 방송을 포함한 각종 오프라인 매체들은 그 전까지 인터넷 여론의 댓글들을 베껴 쓰는 수준이었다. 연예신문들의 수준이 어느정도까지 참혹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요즘 연예부 기자는 평균적인 중학생 정도 필력이면 능히 해낼 수 있다.

3. 이렇게 권위를 획득하지 못한 인터넷 여론과 그걸 받아 쓰기 급급한 오프라인 매체들 사이에서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반복해서 확대 재생산 되는 과정이 타블로 사건의 본질이다. 우리가 fact 라고 부르는 것에서 출발해서 엄청난 버블을 생산해 낸 것이다. 이 과정이 상당히 비효율적이고 에너지 낭비적이었다는 데에는 나도 동의한다.

4. 하지만 타블로에 대해 의심을 가졌던 사람들중 상당수는 단순히 미치광이나 정신병자는 아니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의심이 타블로의 “허언증(?)”과 합쳐져 꽤 수긍할만한 추론들을 상당수 만들어 냈다. 타블로측의 결정적인 실책은 그를 의심한 모든 사람들을 타진요로 매도해 버린 것이다. 일반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증거들을 제출하면서 사건을 일단락지었어야 했다.

5. 결국 우리나라는 아직도 외국학력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증명한 꼴이 됐다. 한 사람의 학력이 위조냐 아니냐라는 이슈를 떠나서, 한 사람의 좋은 학력이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는 이 나라의 환경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신정아라는 괴물이 나라를 한바탕 뒤집은 뒤에도 이와 같은 외국학력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과 부러움이 섞인 시선은 수정될 줄을 모른다. ‘스탠포드’ 가 마치 하나의 브랜드처럼 팔린다. 그 간판이 지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뭔가 잘못됐다.

6. 문제는 엉뚱하게 세계 최고의 질을 자랑한다는 미국 학사 시스템과도 연결된다. 나도 한번 재학 증명서를 받아보려고 노력했다. 놀랍게도 받을 수가 없었다! 공식적인 재학 증명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학과의 대학원장님 혹은 graduate coordinator 의 싸인이 들어간 컨펌 레터가 나의 재학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 뿐이었다. 미국의 좋은 학위 시스템은 그만큼 증가하는 학위 위조 시스템과도 연결된다. 학교 서버는 해킹의 단골 대상이 되고 학력 세탁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용이한 편이다. 수많은 이들이 실제 그렇게 학위만을 따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온다. 이러한 풍속도 이번 사건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7. 그러니까, 미국은, 혹은 서구 사회는 기본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사회가 출발한다. 그래서 거짓말은 상당히 큰 죄 혹은 잘못으로 취급된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고, 만약 그 믿음이 깨졌을 경우 묻게 될 책임은 상당히 크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누구나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사회가 형성되고 관계가 맺어진다. 누구나 속일 수 있고 속을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대통령부터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회다. 타블로 사건은 그의 진실 여부를 떠나 이렇게 피폐해진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8. 결국 권위를 가진 기관에서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는 선에서 마무리 될 확률이 높다. 우리는 그것을 검찰이라고 부른다. 언론보다 더 강력한 권위를 가지고 있고 더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일반 대중은 검찰의 결정과 판단을 존중한다. 법치국가에 사는 사람의 상식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헌데 요즘 검찰이 하는 짓을 보면 대중이 반드시 그렇게 하리라는 확신도 없다.

9. 최근 몇년간 한국의 여론을 잠식했던 몇몇 사건들의 공통점은 간단하다. “누군가를 미워하기” 다.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흠을 보인 특정 소수는 타겟이 되어 열렬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그 비난 속에는 논리적인 비판도 있고 비논리적인 비난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한두명을 매장시킨다음 다음 타겟을 찾아 어슬렁거린다. 인터넷 여론이 양날의 검인 이유다. 기존의 매체나 기관들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는 좋은 수단이자 민주주의의 또다른 실험의 장으로 기능하기도 하는 인터넷이지만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해결될 수 있는 일을 끄집어 내어 먹잇감으로 활용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 공간은 침해당하지 않아야 한다. 그 자체로 열려 있어야 한다. 자체적인 자정작용의 힘을 믿어야 한다. 권력의 개입으로 제한당하기 시작하는 인터넷 공간은 더이상 순기능을 발휘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시민 개개인의 정신적인 성장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12 thoughts on “타블로 사건

  1. 6. 이 사건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재학증명서 아닌가요? 저희 학교도 재학/졸업 사실을 증명해주는 verification letter 발급해주는 거 같던데.

    • 네 제가 받은 것도 그거예요. Verification letter. 생각보다 학위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이 명확하지 않더라구요. 놀랐어요.

  2. 음..글을 정말로 잘 쓰셨어요. 저도 거의 동감!!
    뭐랄까 타진요 사람들은 조금 겁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지만 타블로역시 처음 대처하는 자세가 너무나 맘에 안들었어요. 개인적으로 그의 음악은 좋아하지만 가끔 나와서 툭툭 뱉어내는 말들은 상당히 거슬렸는데 뭐랄까 난 그런것들에 연연하지 않아요. 라는 것부터 좀 얇미웠는데 결국 잘못 건드린것도 같고..암튼 타블로도 안됐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좀 어이가 없고…사회가 문제이지요. 학벌로 모든게 대표되는 그런 서글픈 사회..

    •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연예인이 받아 들여야 하는 숙명인 것도 같아요. 스탠퍼드라는 학벌을 본인이 이용했건 안했건 양날의 검처럼 돌아와서 본인을 비롯한 많은 이들을 참 힘들게 하네요.

  3. 그러구보니 취업할때 졸업했다는걸 증명하는것도 거의 신용중심이더라구요. 공증받구 이런것도 하나 없이 그냥 자기가 졸업장 복사본 보내는거.

    • 제가 미국와서 가장 크게 느낀 부분이예요. 그래서 우리나라도 더 발전할 수 있는 여지가 있구나 싶었죠.

  4. 국외 학력에 대한, 깊이와 너비를 알 수 없는 친절함.
    그걸 이용해 먹는 인간.
    인터넷에 떠도는 주관적 진실을 객관적 진실로 만들어버리는 위대함.
    비난하는것이 쿨함과 넓고 얕은 지식을 보여주는 길이라는 착각.
    온통 RT 뿐인 인터넷 기사들.

    그러면서도 슈퍼스타 K2의 우승자는 노스웨스턴 대학 출신의 존 박이 되는 엄청난 이변(?)

    사건이 터졌을때부터 그랬지만,
    걔가 무슨 대학을 나왔건 말건 나랑 무슨 상관?이라는 생각이예요.
    나한테 뭔가 손해를 입힌 것도 없고, 그도 사람이니깐..
    그냥 좀 웃겨요. ㅋ

    .

    • 하신 말씀 다 동감해요. 너무 오지랍이 넓다고 할까요,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 저렇게 하면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점점 나아지겠죠.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면 그걸로 다행이라고 생각할래요.

  5. 7번이요… 참 충격적이예요, 저한텐. 맞는것 같기는 해요. 적어도 미국쪽에 관한것은.
    한국은… 정말 그런가요? 다들 그런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나요?
    이게 나한텐 왜 그렇게 충격적인지는 모르겠는데 암튼 굉장히 충격적이네요. 어쩌면 생각지도 못했던 문화차이를 느껴서인지도…

    • 약 27년동안 제가 겪은 한국은 그런 사회였습니다. 최소한 ‘상대적’ 이라는 표현에 따르면 말이죠. 굳이 거짓말이라는 단정적인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적당히 둘러 치거나, 숨기거나, 다르게 표현하여 위기를 넘어가려는 성향은 확실히 ‘상대적’ 으로 더 심한 것 같아요. 물론 모든 한국인이 모든 미국인들보다 그런 건 절대 아니겠죠. 전체적인 사회 ‘공기’ 를 전 그렇게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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