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설정.

농구 시합을 마치고 집에 오니 열한시가 조금 넘었다. 밤 열시 시합은 이번 학기 들어 처음 경험해 본다. 지난주에 이어 두번째. 농구 시합을 마치면 하루가 끝난다. 덴버에서 통학하는 멤버들은 버스가 끊겨서 (..) 시합을 뛰지 못할 정도. 서울처럼 밤에도 불야성을 이루는 곳이 아니라서 밤 열시 경기는 상당히 생소하다. 오늘도 무사히 승리. 우리가 뛰는 리그는 C-league 인데 A,B,C 리그중 전체적인 수준이 가장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상대팀보다 평균 나이가 열살정도 많은 고령의 대학원생 연합팀에게는 그조차 벅찰 때가 있다. 다행이 이번 시즌에는 만나는 상대들이 그나마 해볼만 해서 아직까지 패배없이 잘 이어 오고 있다. 다음 주부터 플레이오프인데, 어디까지를 우리 팀의 목표로 잡을지 잠시 고민해 보았다. 지난 시즌 우리는 4강까지 올라 갔다. 비록 C 리그에서의 4강이었지만 졸업하고 학교를 떠나는 5년차들을 위한 값진 선물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은..? 에이스인 댄 없이 치루는 첫번째 시즌인데 아직까지 잘 하고 있으니 개인적으로 만족하고 있긴 한데, 플레이오프에서도 한번쯤은 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내 커리어의 목표는 어떻게 잡으면 될까. 이번 학기도 중반을 통과하고 있다. 나는 슬슬 학기말까지 써야 하는 텀페이퍼들에 대한 아이디어도 생각해야 하고, 리서치 메쏘드 시간에 써야 할 내 박사학위 논문의 첫번째 쳅터에 대한 생각도 구체화 해야 한다. 지금 쓰고 있는 페이퍼도 마무리지어야 하고. 단기적으로는 이렇게 하고 있는 연구들에 대한 방향 설정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넓게 보면 내년, 혹은 내후년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정해야 한다. 계속 이 학교에 머물러 있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학교에서 새 출발할 것인지부터 정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단기적인 과제들은 약간 긴 텀의 계획에 영향을 받게 된다. 조금 더 넓게 보면, 내가 학위를 어디서 받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내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전적으로 영향받는다. 예를 들어 무사히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한국의 적당한 직장에 취직해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영위하고 싶다면 지금 있는 학교로도 충분하다. 여기서 살아 남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만약 조금 더 넓게 보고 싶다면, 그러니까 조금 더 리스크가 크지만 약간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원한다면, 다른 옵션을 생각해야 한다.

나는 내가 하버드나 MIT 에서 학위를 받을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선/후천적인 능력의 차이도 물론 있거니와, 그런 수준의 학교에 들어가고 학위를 받는다는 건 이미 대학교 수준에서 결정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대학교 1학년때부터 박사과정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면, 도전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다. 심지어 그렇게 살아오고 노력한 사람이라도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도 하다. 내가 볼 때 너무나 완벽한 대학 시절을 보낸 선배도 하버드보다 아래에 있는 대학원에 들어 갔다. 물론 그곳에서 완전 잘하고 계시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곳은 그러니까 정해져 있는 셈이다.

욕심을 부려볼까, 아니면 여기서 하던 거나 무사히 잘 끝낼까. 나이도 걸리고, 결혼 생각도 해야 하고, 지금까지 해온 것들에 대한 가치도 무시 못한다. 하지만, 가끔 심심할 때 들어가 훑어 보는 유명한 학자들의 CV 들에서 왠지 모를 자극을 받는다. 나도 이제 이 바닥에서 3년째 구르고 있는 터라 CV 를 보면 대충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러니까 대학교때부터 대학원에서의 위치나 위상, 그리고 졸업 후 필드에 안착하는 과정같은 것들이 대충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학자들 중에는 대학교때부터 엄청 뛰어나서 단 한번의 위기도 겪지 않고 순탄하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도 있는 반면,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결국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어 여기까지 살아 남은 사람도 있다. 학계는 굉장히 보수적이라고 이야기되지만 사실 상당히 솔직한 구석도 있는 것이, 결국 모든 것은 그 사람이 쓴 논문에 의해 결정지어 진다. 그 사람이 나온 학교, 지도 교수진의 명성, 국적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사실 끝내주는 논문만 쓰면 결국 인정받게 되는 것이 학계이다. 한국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미국은 그렇다. 결국 자신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 내고 그 결과물로 얼마나 좋은 퀄리티의 논문을 발표하느냐의 싸움이다. 나도 코스웤 과정에서 문제를 겪었고 지금도 거기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결국 이 모든 험난한 과정을 뚫고 나가는 사람들의 발자취를 보면 모두가 처음부터 완전 잘난 사람들만은 아니었다는 거다. CV 를 보면 중간에 몇년이 텅 비어 있는 걸 가끔 발견하게 된다. 혹은 학부 졸업 후 석사 학위 취득 시점까지 굉장히 긴 텀을 가지고 있는데 별다른 설명이 없는 경우도 있고. 다 뭔가 사연이 있었다는 거다. 하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집중해서 읽게 되는 부분은 최근 발표한 논문 목록이지 학력이나 국적이 아니다. 나도 나중에 나의 CV 에 빈틈을 남길 지언정 꽤나 그럴듯한 논문 경력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어디에서 공부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많이 중요한 것 같기도 하다가도, 그냥 내가 잘하면 될 것 같기도 하다.

불확실한 미래를 떠 안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부를 하는 사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상상으로는 다들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결혼할 나이쯤 되면 유학생이라는 것에 대한 환상을 가질 나이대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어학연수 일이년 정도에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공부를 업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유학생들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최소한 나의 경험상으로는 그렇다. 그냥 막연하게 힘들겠지, 혹은 할만 하겠지 추측할 뿐이다. 나 역시 회사생활하는 사람들에 대한 입장이 그러하다. 그렇다고 같은 유학생 처지가 더 나은 것도 아니다. 유학생이 자기 안에 갇히지 않고 외연적으로 열려 있기란 또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만을 바라보며 자기안에 갇혀 세상을 좁게 볼 위험이 상당히 많다. 특히나 대학원생쯤 되면 한 분야를 깊게 판다는 얘긴데 그러다보면 주변의 다른 것들을 같은 눈으로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이 역시 관계에서 피해야 할 부분이다.

여자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정리하기로 했다. 나는 눈이 높으니까 (..) 걍 지금은 닥치고 공부나 하자고. 지금은 그것보다 더중요한 것에 집중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딱 나눠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이러다가도 또 어느 순간 뿅하고 누군가가 나타나 나를 낚아 챌 수 있다. 혹은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과 평생 함께 하기로 약속할 수도 있다. 앞날은 모르는 거다. 마음을 굳이 닫아 놓을 필요는 없다. 다만 결혼이나 여자 문제에 대해 너무 조급해 하지는 말자는 다짐 정도.. 는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은 진짜로 마음 깊이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이렇게 말하면 뭔가 이상해 보이지만 마음속에 누가 들어올 심리적인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만약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난다고 해도 “공부좀 하고” 라고 말할 것 같다. 우습지만 진짜 그렇다. 읽어야 할 것이 너무 많고 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 “신과 함께” 의 김자홍씨처럼 일만 하다가 객사해서 진기한 변호사님 만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