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demand not me


요즘같은 팍팍한 세상에서 인간다운 정을 살갑게 느끼면서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내 주변에도 나를 필요에 의해 만나고 나에게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나에게 호의를 배푸는 사람들이 있다. 그 자체로 틀렸다거나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 역시 단순히 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지는 인간관계들이 있다. 물건을 사기 위해 점원에게 보이는 미소는 한낯 가벼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사소한 관계들까지 신경쓰면서 살기에는 우리네 삶이 너무 바쁘고 정신없다. 다만, 내 여력이 닿는 한 최대한 많은 사람들과 진심어린 감정을 담아 관계맺기를 희망하고 노력할 뿐이다.

관계에 있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실망하는 때가 온다. 그렇지 않다면, 그러니까 내가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충족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가족이거나, 사랑이거나, 평생 함께할 친구이거나 셋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실망할 준비라기 보다는 지금 가지고 있는 기대감을 언젠가는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각오 정도. 차라리 그쪽이 마음이 더 편하다.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무작정 좋은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지만, 또 한번쯤 시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좋은 친구들이 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인간 관계는 더 복잡해 지고 다양해 진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맨몸하나 가지고 온 이곳에서도 어느새 나를 찾는 사람들이 손으로 꼽기 힘들 정도로 많아 졌다. 하루에도 이메일을 수십통씩 받고 답장해야 한다. 오피스에는 학생들이 찾아 오고, 나 역시 누군가의 오피스에 찾아 가야 한다. 밥을 함께 먹는 사람이 있고, 술을 함께 마시는 사람이 있다. 즐겁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공부를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지시를 따라야 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린다. 상대적이지만 결국 피상적인 관계들이 증가하는 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늘은 누군가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논문작성 프로그램 사용법을 가르쳐 달라는 단순한 메일이었다. 못할 것 없다. 그냥 한시간 정도 간단한 메뉴얼을 함께 돌려 보면 끝이다. 하지만 읽고 싶지 않은 행간이 눈에 들어 왔다. 얘는 정말 논문을 잘 작성하고 싶어서 나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일까? 하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나를 선택했을까. 그 전에 계속 눈에 밟혔던 그 친구의 행적들에 대한 기억도 아직 선명한 편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친구의 언행을 싸그리 무시하고 단지 프로그램의 사용법을 전달하기 위해 단둘이 만나야 하는 것일까. 정말 그 친구가 나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는 나와 키스를 하고 싶어하고, 누군가는 나와 함께 밤늦게까지 놀고 싶어 한다. 술자리를 멀리 하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살갑지 않게 대하는 나의 퉁명스러운 반응은 곧잘 많은 오해들을 양산해 내기도 한다. 그 모든 현상들이 다, 나에게 무언가 원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오늘 동기들과 간단한 세미나를 하고 함께 저녁을 먹으러 근처 중국 식당으로 향했다. 동기중 가장 큰 형님의 미니밴을 타고 갔는데 참 좋더라. 나도 얼른 결혼해서 아이들을 뒤에 태우고 어디론가 놀러 다니고 싶다. 오늘 얘기하다 보니 동기들중 나만 아스펜에 가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기형들중 하나는 저녁시간에 걸어가며 끼니를 때우던 나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오지랍은!) 저도 얼른 이마가 이쁘게 까진 참한 색시 하나 얻어서 금쪽같은 새끼들 낳아 행복하게 살아야 겠네요, 라고 말하긴 했지만..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혼자 살아도 혼자 사는 게 아니고, 자유로울 것 같아도 꼭 그렇지도 않은 생활을 지금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가 중구난방이다. 지난 월요일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오피스에 틀어박혀 논문만 써댔다. 다음주 주말에는 기필코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뒹굴거릴 것이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제발 딱 하루만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다.

8 thoughts on “you demand not me

  1.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어쩌면 인간관계 전반에 대한 마음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현재 삶의 모양에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혼자 있을 때 요새 자꾸만 떠오르는 말은 ‘사랑했다고 사랑 받는 건 아니야’ 란 거에요. 부끄럽게!

    • 원만한 인간관계는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또 너무 지나치게 원만한 인간관계는 그닥 좋지만 한 것 같지는 않아요. 뭐랄까.. 결국 적절한 균형이 필요한 건데, 인간 관계나 감정이 개입하게 되면 굉장히 힘들어지는 문제같아요. 끄응.

  2. 어떤 사람을 처음 볼 때 불안한 감각이 있죠. 그런 경험을 몇 번 되풀이 해서 겪다 보면, 경험적으로 그 감각을 확인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되요. 이기적인 거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었지만, 좋은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다고 합리화했어요^^

    • 그 말이 정답이죠. 좋아하는 사람,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기에도 부족한 시간인데.. 나이가 먹을 수록 그게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있어요. 그래도 어렸을 때보다는 사람을 제가 많이 선택할 수 있는 재량이 주어진 것도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더라구요.

  3. 이마가 이쁜게 종혁님의 첫번째 조건이에요? ㅎㅎ
    조금만 더 고생하시고 겨울에 동부 여행 하면서 재충전 하세요 :)

    • 그냥 저 말을 할 당시에 퍼뜩 떠오른 이미지가 이마가 이쁘게 생긴 얼굴이었어요 ㅋ 딱히 이상형같은 건 없는 것 같아요.. 요즘도 힘들 때면 동부행 비행기타는 상상을 하며 버팁니다 ㅎㅎ

  4. 어렵게 생각하면 복잡한거고 쉽게 생각하면 쉬운거겠죠.
    찾는사람들이 있다는거– 피곤해도 즐거운 일아닐까요? ^^

    • 제가 맺는 인간관계 폭이 넓지 않은 편이어서.. 조금 더 진심을 다해서 대해줬으면 좋겠다는 아쉬움같은 게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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