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도 열두시를 넘기려나, 싶었다. 오늘 저녁만큼은 꼭 놀고 싶었다. 최소한 학교 밖으로 나가 머리에 시원한 바람을 조금이나마 쏘이고 싶었다. 매년 이맘때 덴버에서 하는 독일식 옥토퍼페스트에 가기로 친구들과 약속까지 잡았다. 하지만 월요일부터 누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그만 늦잠을 자버리면서 그 꿈은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미안하다, 거듭 사죄하고 잔뜩 꼬인 마음을 다잡고 다시 오피스안으로 들어가 책상앞에 앉았다. 더이상 오래 끌고 싶지 않은 리서치를 얼른 끝내야만 한다. 그런데 모델링이 잘 되지 않는다. 수학 실력이 부족한 내게 모델링은 늘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계량적 지식이 풍부한 것도 아니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어떻게든 끝을 내보려고 한다. 이번주 내내 골머리를 썩었다. 어제 밤에는, 자정이 넘어 정신적으로 많이 지칠 무렵, 엄청난 페이퍼를 하나 발견했다. 오, 레이버마켓 프릭션을 거시로 이렇게 풀어내는 구나, 감탄하며 읽어 내려 갔다. 본능적으로 대체 이 논문의 저자는 누굴까 궁금해져서 찾아 보았다. 한분은 워싱턴에서 석좌교수로 계시고, 다른 분은 LSE 경제학과장님이셨다. 특히 후자는 유럽 노동경제학회 회장직까지 하고 계신 분. 아.. 그렇구나, 하며 기운이 쭉 빠졌다. 논리적으로 매끈하게 써내려간 논문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어제 밤에 마지막으로 읽은 논문은 40년동안 그 분야에만 매진해 일가를 이룬 장인들의 솜씨였다. 단어 하나에도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매듭이 있었다. 나는 내가 어떻게 이런 걸 해, 아니, 평생 공부만 해도 절대 저 수준 근처에도 못갈텐데, 하는 생각에 풀이 죽어 버렸다.

그렇게 오늘 낮까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모델링에 거듭 실패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용기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금요일이기 때문에, 한낮부터 술을 먹자는 친구의 제안이나 간단하게 커피나 한잔 하자는 선배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 더 힘이 들었다. 나는 햇빛을 쐴 자격이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회의감마저 느껴졌다. 그렇게 오늘도 자정 무렵까지 학교에 있다가 빠져 나왔다. 위축된 내 자신을 추스리며 말도 되지 않는 숫자들을 끄적거리다가 그래도 오늘은 주말인데, 조금은 일찍 가자 싶어 열두시가 되기 직전 오피스문을 닫고 나올 수 있었다.

일교차가 심한 곳이라 밤이 되니 쌀쌀했다. 스프링클러는 여기 저기서 돌아가고 있었고, 학교에는 사람이 한명도 남아 있지 않은 듯 보였다. 가끔 한 건물에 하나씩,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나같은 대학원생인가 싶어 측은하게 돌아 보기도 했다. 학과 건물에서부터 집까지는 대충 15분 정도 걸린다. 집앞까지 가는 버스가 있긴 하지만, 왠만하면 걸어서 내려간다. 내리막길이기 때문에 딱히 힘들지 않기도 하거니와 집에서 학교로 올때와는 다른 홀가분함이 좋아서이기도 하다. 아침에 집에서 나올때의 황망함과 긴장감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늦은 밤 차가운 공기가 뺨에 닿음을 느끼며 집으로 가는 기분만큼은 못한 것 같다. 학교 밖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소란스럽다. 목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밤까지 이어지는 파티의 연속. 가끔 아주 가까운 물리적 거리가 한없이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미국인들을 볼때도 그런 생각이 든다. 함께 살고 있지만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간다고 느낄 때의 괴리감이 가끔 있다. 나는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밤늦게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집으로 가는 것이 익숙하다. 나도 언젠가는 저런 애들처럼 내일에 대한 걱정없이 마음껏 소리지르며 놀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터덜터덜 걸어 내려오는 길은 의외로 쓸쓸하거나 외롭지는 않다. 그저 조명이 한국처럼 밝지 않은 미국의 길들처럼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공부하면 그 다음엔 뭐가 오지, 혹시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불안감이 있다. 더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더 좋은 보수를 받기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니라, 정말 공부 그 자체로 평가받고 살아남는 사회에 발을 들여 놓은 내 선택이 정말 현명한 것이었을까에 대한 회의가 있다. 후회라기 보다는 끝없는 의심과 자기 반성이다. 어쩌면, 나는 너무 좋은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이 ‘바닥’ 을 얕잡아 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닌데, 무작정 잘될 것이라 믿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게 절반쯤 내려오다 보니 찍고 싶고 기억하고 싶은 장면들을 놓치면서 걸어온 것이 약간 후회됐다. 그런데 멍청하게도, 나는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다. 작은 컴팩트 카메라로 바꾼 가장 큰 이유는 역시 휴대성이었고 카메라를 산 이후 계속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아직 습관화가 덜 되었는지 카메라가 가방안에 있었는지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카메라를 꺼내 몇장을 찍었다. 어두운 밤길에 사진이 잘 나올 턱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즐거웠던 이유는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하게 만들어 주는 사진의 고맙고도 놀라운 능력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기억하기 위해 행동한다. 혹은 남들에게 기억되기 위해 몸부림친다. 삶의 본질중 하나가 기억에 있다면 사진은 그런 의미에서 참 좋은 인생의 동반자다.

내일은 좋아하는 대학풋볼도 다 보지 못할 것 같다. 해야할 일이 산더미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하루가 또 지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일들을 끝내고 나면 나는 또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 내려올 것이다. 아마 거의 비슷한 풍경들을 또 지나올 것이지만, 그때는 지금과는 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오늘은 내일에 의해 기억된다. 내일은 그 다음을 위해 살아가고.

4 thoughts on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1. 이렇게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공부하면 그 다음엔 뭐가 오지, 혹시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불안감이 있다 — 이말 정말 공감이에요. 엉엉엉. 학교롤 돌아온거 무지 후회중

    • 전 아직 후회는 하지 않아요. 그냥 직장을 다녔어도 잘 했을 것 같은 느낌은 있지만.. 아마 지금 받는 스트레스와는 또 다른 문제로 골치아파하고 있었을 게 분명하거든요. 전 결국 공부하는 사람이 가지는 불안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지금 현재를 즐기는 것 뿐인 것 같아요. 지금 읽고 있는 책, 지금 쓰고 있는 글 자체에 집중해서 거기서 재미를 찾는 거죠.

  2. 사진들이 예쁘다능. 내가 흑백 사진을 좋아해서 더 예쁘다능. 나도 사진기좀 가지고 다니면서 이런 모습들을 찍어야지 하는 다짐을 했다능. ^^

    • 감사합니다. 저도 자꾸 흑백만 찍게 되네요. 제가 빛을 아직 잘 못 다뤄서 색깔을 담아 내는 데에 자신감이 부족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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