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기록

1.

지난 금요일에 계단에서 굴렀다. 슬리퍼를 신고 내려오다가 계단 어딘가에 걸린 것 같다. 한두바퀴 구른 후 시멘트 바닥에 착지(?) 했는데 당시 킨들을 들고 있어서 ‘킨들만은 구해야 한다!’ 는 일념으로 그놈을 보호하다가 킨들을 들고 있던 왼손등이 심하게 까졌다. 오른손바닥은 약간 찢어졌고, 오른손 엄지 손가락은 손톱이 약간 들렸다. (이게 제일 아픔 +_+) 무릎과 발목에도 약간의 타박상이 있는데 상태 양호. 덕분에 급하게 동네 마트가서 약품 쇼핑(?) 했다. 피를 흘리며 거즈와 붕대, 소독약과 상처 없애는 연고(Mederma) 를 사는데 그 재미도 쏠쏠. 무엇이든 쇼핑은 즐겁다. 그날 밤은 내 육체를 쇼핑할 수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지 마라! 는 큰 교훈을 얻었음. 1년에 한두번씩 꼭 정줄 놓고 걷다가 아주 크게 넘어지는 일을 당하는데 지난 토요일이 그랬다. 내가 은근히(?) 덜렁거리는 부분이 많아서 늘 이렇게 내 몸뚱아리가 고생이다.

2.

슬슬 학기가 미쳐가고 있다. 주중에 정신없이 뛰어 다니다가 주말에 축 늘어져 있는 패턴의 연속. 조금 더 분발해서 부지런히 살아야 겠다. 토요일 하루는 기필코 데이 오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금요일과 일요일을 조금 더 알차게 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과목 드랍할까 말까 계속 고민중이다. 등록금 문제도 있고 해서 많이 생각하고 있다. 조삼모사다. 이번학기 널널하게 보내고 다음학기 빡세게 보낼 것이냐, 이번한기 조금 빡세게 보내고 다음학기 널널하게 보낼 것이냐의 문제. 나는 이와 비슷한 경우에는 항상 후자를 택했다. 눈앞의 시간은 저 멀리 있는 시간보다 항상 빠르게 오고 빠르게 가기 때문이다.

3.

차를 팔기로 결정했고 내일 카센터에 가서 점검을 받을 생각이다. 새주인에게 넘기기 전에 최대한 이것저것 손을 볼 계획이다. 나는 이 차를 처음 받았을 때 너무 하자가 많아서 정이 잘 안 갔더랬다. 지금은 세상에 둘도 없는 내 단짝이자 너무나 애틋한 존재가 됐지만, 잔고장이 많아 정을 붙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부디 새주인에게는 나처럼 첫인상 잘못 보여서 미움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손해보는 거 알면서 그냥 내 돈주고 고치기로 마음 먹었다. 미국에 온 후 가장 슬픈날의 업데이트가 조만간 날 기다릴 것이다. 자동차를 팔고 자전거를 사기로 한건 순전히 돈때문이다. 경기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학교 재정이 다음 학기에도 지금처럼 어렵다면, 나도 살림을 줄일 수 밖에 없고, 그래서 내가 가진 유일한 자산을 처분하기로 했다. 다음 차는 아마 취직한 다음에나 살 수 있겠지 ㅠ

4.

겨울에는 기필코 동부를 여행하기 위해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도 ‘동부는 어떻다 저떻다’ 말들을 많이 들어서 직접 한번 경험해보지 않으면 도저히 안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뉴욕 스타벅스 점원은 커피를 주면서 웃지 않는지, 길가다가 어깨를 치고 가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건조하지 않은 날씨’ 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정말 서울처럼 습한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기후인지.. 이상하게 서부의 해안 도시들, 그러니까 내가 가 본 시애틀이나 샌프란시스코는 ‘습하다’ 라는 느낌이 강하지 않았다. 겨울에 가서 그런가? 뉴욕 사람들이 얼마나 인상쓰고 다니는지 확인하는 것이 여행의 목적 첫째, 둘째는 NYU 앞에 있는 그렇게 맛있다는 만두집에서 만두를 먹는 것, 가장 중요한 셋째는 맨해튼 어딘가에 있다는 교촌 치킨에서 치킨에 한국 맥주 먹는 것. 아 정말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5.

킨들을 대학원수업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임상실험(?) 중. 일단 다들 신기해 하긴 하는데,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조금 더 지켜 봐야 겠다. 수업중 이 논문 저 논문을 빠르게 뒤적거려야 할 때는 속도면에서 많이 뒤쳐진다. 게다가 중요 대목에 노트나 메모를 해야 한다면 정말 난감해 진다. 다만 몇십개 되는 레퍼런스를 몽땅 싸들고 어딘가에 처박혀 주구장창 읽어야 할 때는 매우 유용하다. 카페에 가든 집에 가든 킨들 하나 달랑 들고 가면 오케이. 무게면에서는 확실히 세이브되는 면이 많다. 펌웨어 업그레이드가 빨리 되서 PDF 에서도 메모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6.

컴팩트 디지털 카메라를 하나 샀다. 돈이 없는데 왠 소리냐.. -_- 전자기기는 주기적으로 계속 새로 구입해 주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그래서 주기적으로 목돈이 나가게 마련이다. 펜탁스 카메라를 싼값에 처분하고 아이폰4로 몇달 살아 봤는데, 확실히 한계가 있다. 일상 스냅으로는 괜찮지만 ‘사진을 찍는다’ 라는 행위에 대한 인식이 전혀 들지 않았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글을 쓰거나 노래를 부르는 행위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왠지 결여된 듯한 상태로 사니까 재미가 없었다. 그러던 중에 라이카의 x1 을 알게 됐고 (-_-) 이건 아니다 싶어 d-lux 를 한참을 보다가, 거의 이걸 지르려고 결제 버튼이 어디있지 찾는 중에 이 카메라와 쌍둥이인 파나소닉의 lx3 를 알게 됐다. 성능은 똑같고 가격은 절반. 다만 라이카 특유의 감수성이 결여되어 있는데 이건 같은 raw 파일을 공유한다는 점을 이용, 디룩스 raw 파일로 컨버젼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똑딱이 디카에 뭘 더 바라나.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면서 문득 지나가는 것들을 잡아 내면 그걸로 오케이. 플릭커에서 확인한 결과물들도 믿음을 더해 줬다. 난 큼지막한 DSLR 로 좋은 결과물을 뽑아 내는 것도 좋아하지만 결국 일상에서의 스냅을 주 목적으로 한다면 똑딱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결국 구도와 감성에 약간의 빛에 대한 컨트롤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굳이 백만원짜리 렌즈 달고 다닐 이유 아직 잘 못 찾겠다.

옛날 얘기 하나 생각난다. 때는 2005년 2월. 막 제대를 하고 세상에 적응하려고 몸부림치던 무렵 미리 제대해 있던 (그래봤자 두세달 차이..) 친구들은 복학생의 3대 필수품이라며 디카, 휴대폰, 엠피3를 빨리 구입하라고 부추겼다. 이 세개만 제대로 갖추고 있으면 세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그리 크게 어렵지 않다며 나를 현혹했다. 복학후 첫학기 수업에서 오른손을 직각으로 올리고 “예, 알겠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등 (군대 다녀온 남자만이 아는 군대 증후군들이다) 심각한 부적응에 시달리던 나는 그 친구들중 하나 끌고 남대문으로 가서 그 친구가 골라주는 대로 디카 하나를 장만했다. 그 날이 바로 오서방을 처음 만난 날이다. 그 후 얼마 뒤 오서방과 김군이 사귄다는 소식을 듣게 된거다. 아, 나에게 카메라를 골라준 친구는 바로 김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김군은 오서방을 만나기 위해 나를 활용한 것 같은데, 뭐 어쨌든.. 지금은 서로 다른 사람 만나 잘 살고 있으니. 말해도 되겠지? +_+

7.

이제 초콜릿을 먹어도 여드름이 나지 않는다. 닭고기를 먹어도 여드름이 잠깐 나왔다가 힘없이 사그라든다. 뭔가 좋으면서도 슬펐다. 내 피부는 이제 더이상 혈기왕성하지 않구나. 더이상 탱탱하지 않구나. 하는 걸 느꼈다.

그래도 새로 산 아이크림은 썩 마음에 든다. 바르고 안바르고 차이가 이렇게 큰 줄 알았다면 진작에 사는건데!

10 thoughts on “일상 기록

  1. 아고. 조심하세요. 저도 엄청 덜렁이 헐렁이라서-_-
    얼마전엔 하루동안 두 번 넘어진거 아세요. 버스탈때 한번, 버스내릴때 한번. 그것도 양 무릎 번갈아가며 까져서 한동안 양 무릎이 다 꼴이 말이 아니었죠.
    전 킨들이나 아이패드 같은거 별로 관심 없었는데 (책은 종이로 봐야해!!라는 생각땜에)
    점점 소화해야 할 책이나 문서의 양이 늘어나니까 왜 필요한지 깨닫게 되더라구요.
    아직 한국은 e-book이 그렇게 많지 않긴 하지만, PDF 등등 문서를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라도 읽어야 할 것들이 많은 사람에겐 참 유용하겠다 싶었어요.

    그나저나 섬세한 메트로섹슈얼이셨군요. 아이크림이라니, 저도 안 바르는데 (….)ㅋㅋㅋㅋ

    • 어이쿠 저런. 그래서 지금은 다 나으셨어요? 무릎에 흉지면 치마 입을 때도 안좋을텐데..

      저도 킨들, 혹은 다른 이북리더가 종이책 독서를 결코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표지나 종이 질, 서체등에 관심이 있는 경우라면 더 심하겠죠. 전 종이를 한장 한장 넘길 때 들리는 사각거리는 소리를 매우 좋아하는데요, 킨들이 그런게 없네요. 하지만 논문이나 레퍼런스북들처럼 책 본연의 기능보다는 컨텐츠에 집중해야 하는 경우라면 킨들이 매우 유용한 디바이스라고 생각해요.

      전 메트로섹슈얼이 뭔지는 모르지만 아이크림을 쓰는 이유는 늙어서죠. 이제 피부 관리 해 줘야 할 시기로 접어 들어서 아이크림이나 에센스같은 거 안써주면 안되요 ㅋ 늙어서 이런거죠…

  2. 뉴욕에서 스타벅스도 가고 만두도 먹고 교촌치킨도 갔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저도 동부에 있어서 일까요? (틀려!) 근데 뉴욕 = 동부, 그건 아닌 것 같아요.보스턴이나 필라델피아가 더 동부”적”인 도시랄까.

    • 아, 맞아요, 왠지 동부는 뉴욕보다는 보스턴이나 필라델피아가 더 대표성을 가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제가 치킨을 너무 좋아하는데 여기 와서 한국식 치킨을 한번도 못먹어 봤거든요. (요즘 한국은 ‘파닭’ 이니 뭐니 맛있는 것들이 많이 나왔대요..) 그래서 교촌치킨은 꼭.. ㅋ 서부와 동부의 차이를 한번 느껴보고 싶어요.

  3. 1. 전 종혁님 덜렁대는거 살짝 보이던데요. 우히힛. (후다닥!)

    3. (슬그머니 다시 돌아왔음). 차 드디어 파시는군요. 제 보물1호가 차다 보니 제다 다 슬퍼지네요. 조만간 우울한 포스팅을 읽게 되겠군요. 훌쩍.

    4. 와서 직접 느껴보세요! 네, 스타벅스 점원은 커피를 주면서 웃지 않구요, 길가다가 어깨를 치고 가도 미안하다는 말 하지 않구요, 저어혀 건조하지 않은 날씨를 느낄수 있을꺼예요. 만두집은 못가봤지만 맨해튼 교천은 흠… 직접 한번 가보시고 질식사 비슷한거 한번 당해보시지요. 찡끗.

    7. 아이크림 어디꺼 쓰는데요??? 우리 그렇게 좋은 정보는 나누자구요!

    • 아버지가 이메일에서 항상 하시는 말씀, “넌 덜렁거려서 늘 남들보다 더 조심해야 한다.” ㅋ 근데 언제 느끼셨어요? 저 덜렁거리는 거.

      차는 아직도 심각하게 고민중인데요, 조만간 해결책이 하나 나오지 않을까 해요.

      위에 댓글에도 썼지만 제가 치킨을 진짜 좋아해서.. +_+

      아이크림은 Dermalogica 사봤어요. 그러고보니 전 화장품이 전부 다 더말로지카인듯 ㅋ 이 브랜드가 전체적으로 유분이 덜해서 저한테 잘 맞는 거 같네요.

  4. – 덜렁대는거야 나는 완전 심하니까 내가 뭐라 잔소리할 입장은 안되지만, 그래도, 다치지 말아요. 그 먼곳에서.

    – 맨하튼에 교촌치킨…에 맥주라구요? 아, 미치겠다. 내가 지금 뉴욕에 갈테니까 우리 뉴욕에서 만나요. 뉴욕에서 만나서 리촐리 북 스토어 가서 책 구경 좀 하다가 저녁 되면 교촌치킨 가서 맥주 마셔요, 우리!! 아, 완전 미치게 가고 싶어지네요. ㅠㅠ
    그 다음날은 포장해가지고 센트럴 파크 갑시다. 벤치에 앉아 우리는 질리도록 닭을 뜯는거죠!

    • 계획 괜춘하네요. 역시 치킨에는 생맥주죠. +_+ 리촐리 북스토어는 유명한 곳인가보죠? 저도 서점 구경하는 거 좋아하는데.. 문제는 서점에 한번 들어갔다 나오면 손에 뭐가 주렁주렁 달려있다는 거예요 ㅎㅎ 가뜩이나 읽지 않고 쌓여있는 책도 많은데 ㅋ

  5. ㅋㅋ 다친중에도 쇼핑을 즐기시다니. 그 여유로운 마음이 부러워요. 그래도 조심하세요!

    동부는..동부 나름이랍니다. 보스턴하고 뉴욕 완전 다르고, 워싱턴 디씨도 다르고, 남부도 완전 틀려요. 인상쓰고 남들한테 펵퍽 부딛히며 다니는 뉴요커들이 보고 싶으시면 출퇴근 시간에 grand central 강추!

  6. 흐흐 돈도 없는데 웬 사치스러운 생활인지.. 하지만 덕분에 마음의 여유는 좀 찾은 것 같아요. 소비 자체에는 큰 매력을 못 느끼지만 소비를 통해 얻게된 아이템들을 가지고 놀면서 한줄기 여유를 찾는달까요..

    제가 길가다가 어깨 부딪히거나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는 고객을 상대로 인상찌푸리는 거 되게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서울에서 벗어난 것을 좋게 생각하고 있구요. (결국 그리워하지만요..) 근데 뉴욕은 또 서울과 비슷한 모습들이 있다고 하니 괜히 호기심이 생기네요. 전 미국에 와서 받은 첫인상이 “사람들이 다 나를 보고 웃는다” 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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