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sports do you like most?

오늘부로 NCAA 미식축구 시즌이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전국에 중계되는 ‘킥오프’ 게임은 사우스 캐롤라이나와 서던 미시시피의 경기. 스캇의 모교인 게임콕스의 게임이었다. 스캇은 네살때부터 미식축구를 좋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규칙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스포츠팬으로선 신동에 가까운 경력이다. 그의 장래 희망은 한결같이 스포츠 애널리스트였다. ESPN 에 취직해서 기사를 쓰는게 소원이었는데, 어찌하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경제학과 박사과정에 와 있다. (..?)

미국에서 생활한 기간이 2년을 꽉 채웠고, 세번째 circle 을 시작하다 보니 그 흐름에 왠만큼 적응이 되는 느낌이다. 그중에서도 절기의 흐름을 몸으로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건 역시 각 스포츠 시즌의 시작과 끝이다. 미식축구 시즌이 시작하면 가을이 오는 것이고, 시즌이 끝나면 가을 학기가 끝난 것이다. NCAA 농구 시즌이 시작하면 겨울을 준비해야 하고, 토너먼트가 끝날 때쯤이면 봄학기도 끝나갈 것이다. NBA 플레이오프가 시작되면 나는 한국에 갈 시간이 된 것이고, 챔피언스 리그 조추첨을 할 즈음이면 긴 여름방학을 끝내고 돌아오는 새학기를 준비해야 한다.

언제부턴가 내 전 여자친구들은 스포츠를 조금이라도 알아야 나와의 대화를 더 매끄럽게 이끌어갈 수 있음을 깨닫고 스포츠를 ‘공부’ 하기 시작했다. 집에는 각종 스카우팅북과 스포츠 통계 자료들이 뒹굴고 있고, 인터넷 즐겨찾기에도 각종 스포츠 레퍼런스 사이트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블로그에 스포츠와 관련된 글을 거의 쓰지 않는 이유는 단지 그 무지막지한 놈을 이곳까지 끌고 오고 싶지 않아서다. 내 삶의 큰 부분을 음악과 영화가 차지하고 있다면, 다른 한쪽 부분은 스포츠가 자리잡고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생각해 보면, 아주 어렸을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에서도 일요일 오후 두시가 되면 프로야구 중계창이 켜져 있었다. 아주 자연스럽게 복잡한 야구의 룰을 익히게 됐는데, 아버지는 한술 더 떠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글러브와 배트를 사주시는 만행을 저지르셨다. 두가지 행운이 이어졌는데, 첫째는 내가 어릴적 살던 집에는 꽤 넓은 정원이 있어서 마음껏 야구공을 던지며 놀 수 있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당시 KBO 총재가 독실한 가톨릭이었는데 마침 내가 다니던 성당에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KBO 총재와의 친분(?) 으로 나를 비롯한 성당의 촉망받는 어린이들은 몇가지 특혜를 누릴 수 있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건 OB 나 LG 선수단이 이용하는 버스를 함께 탈 수 있었던 것과 선수들이 사용하는 경기장내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 막 LG 에서 OB 로 팬클럽을 갈아탄 상태였다.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NBA 를 보는 재미에 빠졌다. 당시 AFKN 에서 토요일 오후마다 한경기 혹은 두경기씩 중계를 해 줬는데 그걸 비디오로 녹화해서 친구들과 돌려 봤다. 문방구에서 파는 카드나 포스터도 용돈을 아끼고 아껴서 사 모으기 시작했고, 어설프게나마 집에 농구 골대가 있던 부잣집 친구 집에서 직접 농구를 해보기도 했다.

그러다 중고등학교때는 음악에 빠져서 스포츠 관람을 소홀히 했던 것 같다. 그 시기에는 직접 운동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는데 주변에서 친구들과 손쉽게 할 수 있는 농구를 본격적으로 열심히 하기 시작한 것도 중고등학교시절부터다. 잘 하지는 못했다. 그저 즐기는 정도. 당시에는 박찬호가 온 국민을 위로하고 있던 시기였다. 박찬호를 통해 나도 MLB 를 처음 접하게 됐다. 고등학교때는 쉬는 시간마다 티비를 통해 박찬호나 NBA 중계를 보는 것이 낙이었다. 특히 그 당시 조던의 두번째 3연패가 진행중이었는데 모두가 불스를 응원할 때 혼자 언더독 팀들을 응원해서 왕따를 당했던 기억이 난다. 레지 밀러의 인디애나나 존 스탁턴의 유타같은.

대학교에 올라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NBA 에 빠져 들었다. 친구들과 농구도 많이 하고, 보기도 많이 했다. 알렌 아이버슨이 파이널에 진출한 년도가 바로 내가 새내기였을 땐데, 그 당시 아이버슨의 인기는 한국에서도 센세이셔널해서 학교 식당에 비치된 조그만 TV 앞에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플레이오프를 봤던 장면이 기억난다. ‘도라지’ 라고 학교 도서관내 카페테리아가 하나 있는데 당시에는 대형 프로젝션 티비는 꿈도 못꿀 때라, 평면도 아닌 브라운관 티비앞에 옹기종기 모여 탄성을 쏟아 냈던 기억이다.

온라인으로 다른 사람들과 NBA 에 대해 공유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여자친구에 완전히 잡혀 살던 시기라 스포츠에 그닥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못했다. 당시 내 인생의 팔할은 여자친구였으니.. 음악도 잘 안듣던 시기였다.

그러다 군대에 갔고, 그곳에서 보스턴의 기적같은 우승과 피스톤즈의 말도 안되는 우승 소식을 접했다. 당시 내가 가장 좋아하던 두팀이었는데 공교롭게 내가 군대에서 짬밥이 별로 안될 때 우승해서 기분을 맘껏 내지도 못했다.

본격적인 스포츠 덕후로서의 삶은 전역후부터인 것 같다.

그런게 있다. 어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거나 최소한 아주 높은 수준의 식견을 가지게 되면,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더라도 왠만큼 함께 보는 눈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내 경우가 그랬다. 경제학이 표면적으로 스포츠를 관람하는 데에 도움을 준 건 없지만 스포츠를 분석하는 시각이랄까, 혹은 “stats” 를 분석하는 기술이랄까 이런 것들에선 확실히 도움을 받은 것 같다. 이건 미국에 와서 정말 크게 느꼈다.

하여간, 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프리미어 리그도 꽤 오래전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베르캄프와 앙리가 있던 그 시절의 아스날을 좋아하면서부터인 것 같다. 당시 나의 페이보릿은 Pires 였는데, 아쉽게 다른 곳으로 가버리더라. 축구는 박지성의 PSV 이적 후부터가 본격적인 “매일 매일 스코어 체크” 생활의 시작인 것 같다. 그때의 버릇때문인지 지금도 프리미어 리그만 집중적으로 파는 경향이 있다.

NBA 를 깊게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다른 스포츠들까지 덩달아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테니스나 골프같은.. 아주 신사적인 스포츠까지도. 룰을 알고 몇게임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어디가 피크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나는 그 절정에 다다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소화하는 선수의 고난(?) 과 절정 이후에 느껴지는 숨막히는 쾌감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부정이나 부폐가 개입되지 않는 순수한 스포츠의 경우, 거의 모든 종목이 이 속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막말로 종목에 상관없이 스포츠를 보는 것 만으로 내가 기대하는 감동은 기본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거다.

미국에 온 후 부터는 전부터 관심은 있었지만 정보도 부족하고 본격적으로 파기에는 좀 부담스러웠던 미식 축구를 파기 시작했다. 영국에 축구가 있다면 미국에는 미식 축구가 있다고, 전국민적인 관심을 갖는 종목이다 보니 그만큼 “함께 보는 재미” 도 크다. 이건 현지가 아니면 느끼기 힘든 묘미같다. 특히 미국 스포츠 시스템의 장점이라면 대학 스포츠 문화의 활성화를 들고 싶다. 대학 스포츠도 돈이 되다 보니 이젠 뭐 거의 프로 스포츠와 비슷해져 버렸지만, 그럼에도 대학 스포츠를 더 좋아하게 되는 이유라면, 스포츠가 가진 가장 중요한 본질인 ‘순수성’ 의 순도가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비교 대상은 미국의 프로 스포츠들이다. 철저히 자본주의적인 관점에서 비지니스적으로 진행되는 미국 프로스포츠와는 달리 대학 스포츠에는 선수들이 가지는 순수함이 아직 그나마 남아 있다.

미국-유럽 스포츠의 큰 미덕은 ‘연고주의’ 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의 스포츠팀을 평생 응원하는 문화.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한 팀의 팬으로 운명지어지는 그 문화가 참 부럽고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다. 한국에서 그렇게 싫어하던 양키즈를 미국에 와서 쉽게 깔 수 없게 된 것도 정말 진실한 양키즈 팬을 만난 후부터다. 메츠나 레드삭스도 마찬가지고. 스캇처럼 네살때부터 게임콕스의 팬으로 살아온 대학 스포츠 덕후도 많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무엇일까. 구체적인 종목 이름을 말하라면 농구라고 답하겠지만, 그게 어떤 확신이나 절대적인 기준하에서 나오는 건 아니다. 자신이 없다. 어떤 때는 축구에서, 다른 어떤 때는 야구에서 더 큰 감동을 얻는다. 스포츠를 둘러싼 머니 게임과 수많은 루머, 억측들이 모두 사라지고 게임 내용 그 자체가 모든 것이 되는 ‘순간’ 이 있다. 좋은 게임은 그 찰나의 순간을 가지고 있다. 거창한 이름을 가진 결승전이나 빅이벤트가 아니더라도, 하다 못해 학교 체육관에서 하는 아마츄어 시합일지라도, 좋은 게임은 존재한다. 나는 그냥 그 순간을 너무 사랑할 뿐이고.

스포츠가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 하고 생각한 하루였다.

9 thoughts on “what sports do you like most?

    • ㅎㅎ지금까지 저와 사귀었던 분들은 다 스포츠에 문외한이었어요. 그러니까 전 스포츠를 좋아하는 여자를 딱히 선호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 그냥 즐기는 정도? 중계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미치도록 꼭 챙겨보는 것도 아니구요, 통계자료 분석하는 건 경제학에 실제로 그런 분야가 있기 때문에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그나저나 너무 오랜만에 댓글 달아주셔서 너무 반가워요 ㅠ

  1. 저는 누구나 인정하는 ‘축구, 아스날’ 덕후-_- 지만.. 전 축구에 문외한인 남자친구 사귀는게 소원이에요.
    여자 축구팬으로 살기, 아니 여자 스포츠팬으로 대한민국에 산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 이 글 쓰면서도 해밀님 (+아침해쌀님/미엘님) 생각이 많이 났죠. 참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스포츠 좋아하는 거 남 보여주려고 하는 거 아니잖아요. 우리끼리 재밌게 즐기면 끝임! 전 이런 생각하니까 안티만나도 크게 열 안받더라구요. +_+

  2. 안티는 별로 신경 안써요.ㅎㅎ 그게 아스날 안티를 뜻하시는 건진 모르겠는데…
    제가 말한 의미는 여자 스포츠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랄까 그런 거였어요 ^^
    나중에 자세하게 말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여자 축구팬들끼리 종종 얘기하는 주제고요.
    사실 여기에 대해 포스팅도 할까 했었는데 항상 귀찮아서 안하게 되네요, 크크.

    • ㅎㅎ 그래도 건강하면 그게 최고! 전 늙어서 운동해야 몸뚱아리가 겨우 유지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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