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 끝났으니까 하는 이야기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시작하기 전 많은 용기가 필요하고, 그보다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이 요구된다. 그 모든 자기 검열을 성공적으로 끝냈을 때 비로소 짝사랑을 시작해야 한다. 누군가를 좋아함으로써 생기는 수많은 문제들을 떠맡기 위한 책임감을 만들어 내기 위한 일종의 청문회과정이다. 조목 조목 따지고 잘잘못을 끄집어 내어 적격 여부를 가리는 이성적인 과정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내가 과연 이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을 계속 가질 수 있는 만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성찰 정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근데 그게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데 이유가 어디 있고 정당성이 어디 있겠는가.  함수처럼 그렇게 딱 맞아 떨어지는 이유가 있다면 사람사는 세상이 이처럼 재밌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함수로 세상을 표현하려고 하는 경제학이란 참 바보같은 짓거리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자기 자신을 통제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성이 아무리 감정을 잘 통제하는 유형의 사람이라고 해도 그 마음이 커지면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도리’ 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니까 나는 최근에 그놈의 사진을 보면서 더이상 이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아니, 여전히 이쁘기는 하지만.. 뭐랄까, 예전처럼 하염없이 보고 있게 되지는 않게 되었달까. 처음 보는 듯한 사진 몇장을 몇초만에 휘리릭 넘겨본 후 아무런 망설임없이 창을 닫는 나를 보면서 아, 때가 됐구나 싶었다.

나는 아직도 그가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꼭 한사람의 여자로서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다. 나는 그와 사귀어본 적이 없으니 그와 내가 연인 사이로서 잘 어울리는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여러가지 티니한 문제들에 대처해 나가는 방식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런 것들까지 잘 맞을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꽤 오랜 기간 그를 내 옆에 두고 지내온 경험을 토대로 어느 정도 확신하는 바는, 그는 나와 잘 어울리는 ‘사람’ 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한다. 그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한다.

오케이, 단지 취향이 비슷하다는 건 아무 것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이건 내가 잘 알지.

예컨데 이런거다. 내가 시청에 간 날 그도 거기 있었다. 한창 시청 주변이 시끄러웠고 시청 광장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던 그 때 말이다. 나도 혼자 갔었고, 그도 혼자 갔었다. 우리는 열혈 당원도 아니었고 그저 다음날 뭐할지 고민하는 소시민들이었지만 뭔가 가만히 책상앞에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잠시 마실나가는 기분으로 다녀왔다. 내가 시청에 있을 때 그도 거기에 있었다는 건 다음날 문자를 주고 받으며 알았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을 그도 보고 있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도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취향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나는 어떤 것을 볼지 결정하는 그의 시각도 좋아 했지만 그 것을 보고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좋아 했다. 물론, 그 이후 택하는 행동도 좋아했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생각하기 보다 자기 자신에게 먼저 보여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하는 그런 행위들을 좋아했다. 그는 참 착한 행동을 하고도 나 이거 했어, 저거 했어 하고 자랑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해야 했기에 했다는 투로 얘기했다.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선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부끄러움. 그는 부끄러워 할 줄 알았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이 한낱 자기 부정이나 포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피드백되어 어떻게 자기 자신의 삶에 쓰여지는 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부끄러워 할 줄 알았기에 그는 항상 스스로를 절제했다. 그리고 그랬기에, 그는 자신에게 허락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자체가 드문 현실에서 그정도의 현명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방을 높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방까지 함께 낮추어 지게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를 보며 나 자신을 낮추게 됐다. 그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방만함과 게으름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결국 채워 넣는 것들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무언가를 채우기 위한 그릇의 단단함이 가지는 문제이다. 나는 그의 어설픈 듯 하지만 결코 허투루 만들어 지지 않은 듯한 단단함이 좋았다. 화려한 무늬나 장식은 없지만 본래의 기능에 충실한 좋은 질그릇같은 그가 좋았다. 약간은 무겁고 색깔도 화사하진 않지만 한번 담은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그런..

본인이 해야 하는 말을 할 줄 알고, 하지 말아야 할 말들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는 모습도 좋았다. 물론 나와의 문제에 대해서는 지나친 침묵으로 일관한 그에게 섭섭한 감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거야 뭐 특수한 경우이니 그의 일반적인 모습은 아닐 것이다. 적절한 단어의 선택과 그 단어들에 대한 책임을 지려고 하는 그의 태도는, 그가 나에게 남긴 몇안되는 유산들중 하나이다. 나는  글을 쓸 때 가끔 그의 간결한 문체를 떠올린다. 흉내내고 싶지는 않지만 본받으려고 노력한다.

.
.
.
.

다 끝났으니까 하는 이야기다. 그의 이런 부분들이 좋았다는, 일종의 후일담이다.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도 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짜피 이제는 정말 다 끝난 이야기니까.

6 thoughts on “이제 다 끝났으니까 하는 이야기

    • 메시지가 들어간 건 맞아요. 하지만 다락방님께 하는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

      왜 제 컴퓨터에서는 네이트온이 되지 않는 걸까요? 정말 정말 속상하네요.

  1. 근데요, 종혁씨.

    저거 좀 좋은데요. ‘예전처럼 하염없이 보고 있게 되지는 않게 되었달까’ 이거요. 그러니까 물론 지금은 더이상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하염없이 사진을 보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와-

    전 제 사진을 누구에게 주는 일을 지독하게 못하는 편인데, 만약 누군가가 하염없이 보고 있을 수도 있다면, 한번쯤은 줘도 되지 않을까 싶어져요.

    멋지다..

    이미 다 끝나버렸지만요.

    • 제가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인데 가뜩이나 외국에 혼자 있다 보니, 그냥 보고 싶을 때마다 오래 보고 있게 되더라구요.

      좋죠. 그럴때마다. 좋았죠.

  2. 안녕하세요 종혁씨,
    한번 놀러와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sue님 블로그에서 링크발견! ^^
    다끝났으니까 할수 있는 이야기의 여운이 참 좋네요..뭔가 표현하지 않은 마음고생이 많았을지도 모르지만말이에요.

    • 안녕하세요 :)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있어 마음고생은 당연히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겠지요..
      지금은 그냥 그사람이 잘됐으면 좋겠어요. ㅎㅎ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