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영 엮음 |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 표지
이 책은 2016년 시작된 ‘수요자 모임’에 참석한 남성들이 성매매와 관련된 각자의 사연들, 주장들, 혹은 상념들을 풀어놓은 에세이 모음집이다. ‘수요자 모임’은 성매매의 공급 측면이 아닌 수요 측면의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2016년 만들어진 일종의 토론 모임으로, 이 포럼의 참가자는 대부분 성매매 경험이 없는 남성들이라고 한다. 이 책에 의하면, 참가자들은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거나 특정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 성매매 시장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공유해오고 있다고 한다.

각종 통계자료에 의하면 한국 남성 중 약 절반 정도가 성매매 경험이 있고, 한국의 성매매 시장 규모는 1년에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약 6조원 정도 규모로 국내 커피시장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사회생활을 하는 한국인 중 성매매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되지 않은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다. 성매매는 남·녀 간 젠더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데, 왜냐하면 통계적으로 성매매의 수요자-공급자 관계가 남-녀 관계로 고정될 때가 많으며, 성매매 거래의 특성 상 육체의 직·간접적 통제와 구속을 필연적으로 수반하기 때문에, 사회에 만성적으로 퍼진 성매매 문화가 남·녀 간 젠더 불평등성 심화에 미치는 영향이 존재한다는 합리적 의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책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의 배경이 되는 ‘수요자 모임’은 기본적으로 성매매로 인해 피해를 받는 여성을 보호하고자 하는 성매매 반대운동의 기본적인 목적에 더해 성매매를 구매하는 남성의 자발적인 반성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양성 평등적 가치 아래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성매매가 만성화된 한국사회에서 성매매를 ‘자발적으로’ 하지 않은 남성들이 갖는 상식적 수준의 합의를 무난하게 이끌어내고 있다. 이 책은 성매매 합법화 반대 논리가 지나치게 귀납적이고 추상적이며 윤리적인 차원에 갇혀 있다는 비판과, 그 비판에 논리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주최측의 한계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군대에서 흔히 받게 되는 성매매 유혹이나 이후 사회생활에서 강요받게 되는 ‘2차’ 문화 등을 개인적 차원의 ‘위기’로 인식하고 이를 나름 슬기롭게 피해다녔다고 생각하는 나 조차 한국의 성매매 산업을 너무 얕게 이해하고 있던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의 말처럼,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멍청해서, 혹은 젠더 감성이 부족해서 성매매를 합법화시킨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성매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성적 불평등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사회적 모럴을 가지고 있었기에 시장논리 아래 탄생할 수 밖에 없는 그 산업을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국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변질된 유교문화의 압박 속에서 여성이 누리는 사회적 지위는 유럽국가들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 성매매의 변질된 형태가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폭력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이런 사회에 존재하는 성매매 산업은 다른 시각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흔히 성매매에 찬성하는 남자들은 “못생긴 남자는 어떻게 푸냐?”는 주장을 한다. 여성에게 충분히 성적인 어필을 할 수 없는 남자는 돈을 지급하고 시장에서 성을 구매할 수 있게 허락해야 한다는 논리다. 나의 답은 조금 다르다. “섹스를 못(안)하시면 됩니다” 못생긴 수컷은(혹은 암컷은) 도태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평생 짝짓기를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생명을 다하는 동물도 많다. 그리고 이것은 시장의 법칙이기도 하다. 매력이 없는 상품은 팔리지 않는 것이 자연스럽고, 팔리지 않는 것이 맞고, 팔리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상품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나라의 경쟁력을 제고하는 가장 쉬운 법칙이다. 이걸 정부가 인위적으로 나서서 구제해 줘도 괜찮을 정도로 성적 평등성에 대한 우리사회의 모럴이 엄청 단단해 보이지는 않는다. “능력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대기업에 들어가냐?”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이 사람이 돈을 내면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시장이 존재하는가. 평생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하는 쪽이 더 자연스럽다. 성욕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정부가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는 주장… 을 백번 수용한다고 해도, 쌍방의 육체적 관계를 전제로 하는 성관계를 합법화해야 한다는 주장까지는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에서는 말이다.

이명옥·김동훈 | 이명옥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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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학 시절 자주 들락날락거렸던 동네 서점이 하나 있다. 영어로 쓰인 책을 빨리 읽지도 못하면서 그 곳을 자주 찾았던 이유의 절반은 (당연히) 허세였고, 나머지 절반은 한국의 서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분야의 서적들에 대한 흥미로움이었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야는 역사쪽이었다. 그 서점의 역사 코너는 꽤나 자세히 세분화되어 정리되어 있었다. 전쟁사(戰爭史) 부분이 따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흥미로웠고, 한 인물에 대한 평전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대형 서점에서 역사 서적들이 어떻게 몰개성화된 상태로 전시되어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더 나아가 한국과 미국이 가진 역사의 물리적 ‘시간’만을 고려한다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국 사람들이 역사 분야에 보여주는 열정은 한국보다 더 뜨거워보였다.

그 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계속 잡아 끌었던 부분은 한국에서는 그 개념도 생소한 가족사(家族史) 코너였다. 역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인물부터 전혀 그렇지 않은 인물까지 다루고, 짧게는 한 세대부터 길게는 몇 세대를 아우르는 긴 시간까지 포괄하는 등 이 분야가 가지는 범위의 확장성도 놀라웠지만, 그 가족을 둘러싼 이야기만으로 하나의 역사 서적이 완성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 나에겐 획기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이내 곧 이러한 가족사적 담화가 매우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가족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가다 보면 그 가족을 둘러싼 환경이 보인다. 가족의 구성원이 대물림되며 핏줄이 이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시대의 변화상이 보인다. 통계수치나 전쟁같은 거대담론만을 나열하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역사의 미시적 변화상은 시대를 직접 살아낸 민초 개개인의 삶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 그러한 미시적 역사를 정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가장 작은 단위가 가족일 것이다. 그리고 그 가족이 평범하면 평범할수록 거시적-미시적 역사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는 훌륭한 케이스 스터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어머니와 고속버스를 타고 하동에서 서울까지 함께 올라온 적이 있다. 네시간 가까이 되었던 그 시간동안 어머니로부터 외갓집 식구들의 역사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 이후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당시 어머니의 목소리를 녹음해둘걸,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이후 지금까지, 기회가 허락된다면 어머니의 회고를 녹취해서 글로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해왔다. 어머니의 기력이 쇠해지는 모습이 최근 눈에 띌 정도로 확연히 느껴지는 최근 그러한 생각이 더 강해지고 있다.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 지금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녀가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과 어머니 그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의 완성된 글로 정리하여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평생 조연으로, 조력자로만 살아온 삶이기에 더 그런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한국에 또 있었나보다. [이명옥 회고록]은 공주와 대전, 경기도 광주 등에서 살아온 ‘평범한’ 여자 이명옥이 그녀의 아들 김동훈과 행한 인터뷰를 글로 정리한 책이다. 이 책에서 이명옥은 자신의 삶과 함께 주로 그녀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녀의 아버지는 북한에서 홀홀단신 넘어와 맨주먹 하나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일구어냈다. 이명옥의 증언대로 그녀의 아버지가 유독 가족에 집착하며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었던 것은 그가 탄생시킨 가족이 또 누구로부터도 이어받지 않은, 온전히 그와 그의 아내(이명옥의 어머니)가 0의 상태에서부터 만들어낸 가치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가족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 시대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한다. 이명옥이 어린 시절을 보낸 대전의 판자촌부터 이명옥의 아버지가 숨을 거둔 서울의 지하철까지, 영화보다 더 극적인 삶의 순간들이 숨쉬는 일만큼 평범한 일상 속에 고르게 펴 발라져 있다.

이명옥의 담담한 말투가 상상될 정도로 평온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 이 짧은 책은 그녀가 10여년간 모시고 살아온 시어머니의 죽음 장면에 이르러 짤막한 절정과 시큰한 감동을 선사한다. 먹고 살기 위해 젊음을 희생하고 낭만을 포기했던 나의 윗 세대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격한 감정의 파고는 아마도 부모의 죽음이 아니었을까. 나는 평생 무뚝뚝하게 가족을 대해온 아버지가 내 앞에서 처음으로 흘린 눈물을 아직도 기억한다. 할머니의 시신을 염하는 장소였다. 차마 가까이 다가가 마지막 인사를 하지도 못하고 귀퉁이 어딘가에 기대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아버지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 이후로 다시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해서 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명옥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길거리에서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죽음을 묘사하며 “걔들(이명옥의 손자·손녀를 가리킨다) 보면 얼마나 예뻐하셨을까” 안타까워 하면서도 “시간이 다 그렇다”며 너무 일찍 떠는 부친을 향한 그리움을 애써 시간 속으로 묻어버린다.

기쁨과 슬픔을 억누르며 살기를 강요받아온 윗 세대가 인생의 황혼기에 이르러 소중한 것들과 이별을 해야 할 때, 그들은 마치 감정을 능숙하게 다루어온 장인처럼 행세하려 한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애처롭고 애닲게 느껴져 조용히 어루만져 주는 일은 그들을 바라보는 자녀들의 몫이다. 이 책은 그러한 어루만짐이 느껴져서 좋았다. 작가 김동훈은 아주 간단한 질문을 던지는 것 만으로 평범한 사람 이명옥의 특별한 삶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다. 마음을 가만히 움직이는 좋은 책을 읽었다.

Father John Misty | God’s Favorite Custo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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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더 존 미스티(Father John Misty)가 서브팝(Sub Pop)에서 발표한 네번째 정규 음반 [God’s Favorite Customer]는 예상보다 조금 이른 시점에 발매되었다. 75분에 가까운 러닝타임에 꾹꾹 눌러담은 역작 [Pure Comedy]가 불과 1여년전 이맘때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영미 인디씬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은 일반적으로 새 음반을 발표한 후 꽤 오랜 기간 투어를 다니기 마련인데, 파더 존 미스티 정도 되는 스타급 뮤지션은 북미 지역과 유럽 지역의 주요 도시들만 돌아다녀도 1년이 훌쩍 넘는 기간을 버스와 비행기 안에서 보내게 된다. 기나긴 투어 기간과 이후 재충전을 위한 휴식 기간, 그리고 새로운 음반 작업을 위한 기간까지 고려하면 음반과 음반 사이 간격이 2,3년 쯤 된다고 해도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이 불세출의 유머감각(!)을 가진 뮤지션이 불과 1년만에 새로운 음반을 발매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번아웃 증후군’까지 떠올리며 걱정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그러한 근심(?)과는 달리, 그리고 1년이라는 짧은 음반 발매 간격이 무색하게, 2018년 발매된 새 음반 [God’s Favorite Customer]은 전작과 비교해도 결코 뒤쳐진다고 할 수 없는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전작 [Pure Comedy]가 음악가가 과시할 수 있는 ‘과잉’의 가장 현명한 방법 중 하나를 제시한 작품이라면, 이번 작품 [God’s Favorite Customer]는 파더 존 미스티가 쇳소리 나는 둔탁한 소리들을 잠시 옆에 개켜두고 가벼운 옷을 걸쳐 입어도 충분히 그 다울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또다른 성취라고 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짧은 러닝타임과 (역시 상대적으로) 단촐한 악기 구성, 그리고 조금 더 자기 내면으로 침잠한 ‘솔직한 목소리’로 무장한 이번 음반은 파더 존 미스티가 여전히 성장 중이라는 생각에 확신을 더하게 만든다.

이번 음반의 주요한 특징 두가지로 파더 존 미스티 스타일의 발라드가 거의 완성되었다는 점과 드디어 자신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올뮤직(allmusic.com)은 이번 음반을 초기 엘튼 존(Elton John)의 음악과 비교하며 발라드에 대한 파더 존 미스티의 애정이 무척 잘 드러난 음반이라고 평하고 있는데, 나도 이 점에 적극 동의한다. 그는 분명 고전적인 장르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해내는 데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쉬 틸먼(Josh Tilman)만의 스토리텔링 기법이 더해져 ‘파더 존 미스티 워드’를 점점 확장해나가고 있다. 이번 음반은 지금까지 그의 음반에 등장한 많은 이야기들이 품고 있던 위악적 유머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Mr. Tilman”과 “Just Dumb Enough to Try” 등 음반의 베스트트랙을 듣고 있다 보면 픽션보다는 논픽션에 가까운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면으로 파고드는 대신 음반의 색깔은 조금 더 어두워졌다. 하지만 절망스러워보이진 않는다. 걱정스럽다기 보다는 당연히 따라오는 수순처럼 느껴진다.

파더 존 미스티가 발표한 세 장의 전작들 모두 나는 무척 좋게 들었다. 그가 점점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해왔고, [Pure Comedy]에 이르러 인디씬을 대표하는 맹주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God’s Favorite Customer]는 나의 그러한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좋은 음반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음반이 충분히 올해의 음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틴 맥도나 | 쓰리 빌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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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영화의 원제는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다. 이걸 그냥 [쓰리 빌보드]로 자신감 넘치게(!) 줄여버린 국내 배급사의 호기에 경의를 표한다. 이 영화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역성(locality)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즉, 한국어 제목에서 사라진 “outside Ebbing, Missouri”는 그 자체로 상징하는 바가 꽤 크다고 할 수 있다. “연쇄살인범의 주”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미주리주에서 치안은 꽤 심각한 사회문제다. 여기에 (영화에서도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되는) 흑/백 인종 갈등 문제가 더해져 2014년 세인트루이스 근교 퍼거슨에서는 대규모의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경찰과 같은 공권력이 지켜주지 못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웃을 적으로 돌려야 하는 이 곳의 냉랭한 분위기는 어린 시절의 제니퍼 로렌스가 열연한 [윈터스 본]에서 잘 묘사되어 있다) 에빙(Ebbing)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작은 도시는 물론 실재하지 않는 가상의 마을이다(영화를 촬영한 곳은 노스 캐롤라이나 주의 실비아(Sylvia)라는 도시다) 대부분의 이웃이 서로를 알고 있을 정도로 익명성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작은 마을, 이 곳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누군가를 적으로 돌려야 한다면 그 절박함은 상당한 수준일 것이다. 이 영화는 이 폐쇄적인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원한과 분노, 복수에 대한 이야기다.

우선, 예고편을 보고 상상했던 이야기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어 깜짝 놀랐다. 납치된 딸을 경찰 대신 추격하는 엄마가 주인공인 스릴러물을 상상했는데(도대체 왜 이런 상상을 했을까..) 정작 영화는 블랙 코메디에 가까운 서사를 느린 템포로 보여준다. 강간당하고 불태워진 딸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엄마는 거금을 들여 마을 외곽에 있는 광고판 세 개에 광고를 게재한다.

“(내 딸은) 죽임을 당하는 동안 강간당했다”
“그런데 아직도 범인을 잡지 못했다고?”
“대체 어떻게 된거야, 윌로비 서장?”

이 세 문구는 그 자체로 충분히 강력하게 영화의 주제를 함축한다. 영화는 이 세 광고판에 새겨진 분노가 작은 마을에서 어떻게 되물림되는지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분노의 힘은 우연과 필연을 가로지르며 한 엄마에게서 경찰서장에게로, 경찰서장에게서 형사를 꿈꾸는 충성스러운 경찰에게로, 그리고 다시 엄마와 경찰에게서 강간범으로 의심되는 한 남자에게로 전이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멍청한 캐릭터로 등장하는 19살 여자의 입에서 나온 “분노는 더 큰 분노를 낳는다”라는 문구는 영화의 모든 주제를 집어삼키는 단 하나의 키워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모든 행동에 대해 충분한 개연성을 부여받는다. 그 누구도 지독하게 악하지 않으며, 그 누구도 비현실적으로 선하지도 않다. 적당히 약았고 적당히 이기적이며 또 적당히 비겁하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분노의 대물림이 희극적으로, 혹은 부조리극에 가까운 형태로 표현되는 동안, 자연스럽게 ‘대체 왜 일이 이지경까지 오게 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딱히 잘못한 사람도 없고 딱히 잘한 사람도 없는데 모두가 조금씩 망가져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마음 한켠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와 동시에, 누군가의 슬픔이, 혹은 누군가의 분노가 어떤 지점에서 어떤 계기에 의해 멈출 수 있었다면, 과연 이 마을은 다시 평화를 찾게 되었을까, 하는 의심도 살짝 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결국 이 분노와 복수의 서사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되면 코언 형제의 걸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까지 떠올리게 된다. 현실을 비추기 위해 정교하게 설계된 작은 마을의 비극적 이야기가 성공적으로 현실 그 자체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이 영화는 날카롭게 미국의 현재를 비춘다. 미국은 갈등의 천국이기도 하지만 봉합의 귀재이기도 하다. 어떤 갈등이 발생하면 미디어와 정책 당국은 재빠르게 “하나의 미국”을 외치며 휴머니즘을 화려하게 포장한다. 대규모 총기 살해사건이 발생한 다음날에는 서로를 껴안으며 슬픔을 나누는 유가족의 모습이 영웅적으로 표현된 사진이 모든 신문의 1면 톱에 등장한다. 총기규제를 위한 실질적인 논의는 처음에만 잠깐 반짝할 뿐 곧 강력한 로비에 막혀 용두사미 형태로 마무리된다. 미국의 이러한 위선적인 갈등 봉합 과정은 비슷한 형태와 구조의 갈등의 재발을 필연적으로 불러온다. 아마도 확실히, 올해 안 언젠가, 미국의 한 학교에서는 복수의 학생이 총기에 의해 살해당할 것이다. 미국 정부는 그것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다. 주민을 지키지 못하는 미주리주 경찰처럼. 그리고 그들은 말할 것이다.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당신들이 스스로 이겨내야만 한다고. 이 역시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윌로비 경찰서장의 모습과 흡사하다. (자살 후 ‘따뜻한’ 편지를 남기는 모습까지 미국사회를 그대로 재현했다!) 과연 딸을 잃은 어미에게 그 슬픔을 오롯이 혼자 감당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옳은가, 라는 질문은 현재의 미국 사회에도 똑같이 돌려줄 수 있는 질문이다. 자살한 윌로비 서장은 위선적인 미국의 시스템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고, 강간범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기 위해 길을 떠나는 ‘답 없는’ 어미와 경찰은 혼란을 겪고 있는 미국인 전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서울을 떠나며

내일 서울을 떠나 세종으로 이사한다. 세종시에 집을 구하기 위해 50채는 족히 넘을 수의 아파트들을 구경했다.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우야든동 우리 부부는 앞으로 2년동안 세종시의 한 아파트에서 전세살이를 하게 되었다.

주거지를 이전한다는 결정은 우리 부부에게 상당히 큰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미국에서 보낸 6년과 군복무를 위해 강원도에서 보낸 2년여의 시간을 제외하면 한평생을 서울과 그 주변 위성도시에서만 살아온 나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지방생활’에 대한 나름의 두려움이 있었다. 경상남도 출신으로 ‘서울 입성’이 십대시절 꿈이었던 아내 역시 갖은 고생 끝에 서울 한복판에 어렵사리 마련한 신혼집을 홀연히 떠나 직장마저 관둔 채 남편 하나 믿고 연고 하나 없는 도시로 내려간다는 결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임용이 된 후 학교 기숙사에 머물며 첫 학기를 보낼 수 있는 분에 넘치는 행운을 얻었는데, 우리는 이 석달 남짓한 기간을 대전이라는 이 도시가 과연 살만한 곳인지 여기저기 둘러보며 탐색하는 기회로 삼았다. 우리의 결론은 ‘세종으로 가자’였다. 세종이 압도적으로 뛰어난 생활환경을 제공해서는 아니었다. 세종은 현재 막 시작하는 단계의 계획도시이고, 정말 많은 면에서 부족함이 많은 도시다. (심지어 도미노피자도 없다 ->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대전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혹은 현재의 ‘좋은 이웃’이라는 관점에서 대전이 세종보다 더 나은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물론 전적으로 우리 부부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다. 예컨대, 서울과의 접근성, 우리 부부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젊은 인구 비중,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적당한 환경, 운전이 서툰 아내에게 적합한 도로 환경 등을 고려할 때 세종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존재한 단 하나의 걸림돌은 자가운전으로 30분 정도 걸리는 통근거리였는데, 금요일 퇴근시간 여의도-금호동 구간을 70여분에 걸쳐 운전하고 난 뒤 시큰한 무릎을 안고 귀가하던 나에게 그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매매가 아닌 전세를 택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탐색 초기 우리는 매매만을 고집했다. 당시 세종시의 아파트 매매가격도 서울만큼이나 치솟고 있었기 때문이다. 투자의 관점에서, 서울의 중심지역을 제외하면 전국의 거의 모든 부동산 시장이 당분간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 내다봤는데, 단 하나의 예외지역으로 세종시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행정수도 문제부터 국회 분원 설치까지 호재만이 가득해보였다. 마침 가격대도 우리 부부가 영혼까지 끌어모으면 간신히 도달 가능한 수준이었다. 이미 서울 중심부에 있는 아파트들은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영역으로 승천한 이후라 세종시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파트 가격이 우리 부부에게 손을 내미는 마지막 동앗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집을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시장을 깊이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미심쩍은 구석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우선 수많은 공인중개사, 혹은 “떳다방”이라고 부르는 곳들을 돌아다니며 부동산 버블이 형성되고 파급되는 경로를 눈으로 확인했다. 아무런 근거없이 ‘프리미엄’을 덕지덕지 붙여 나가며 투기심리를 집단적으로 키워나가는 과정은 충분히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렇게 높아져가는 가격구조를 떠받드는 지지기반이 취약해보였다. 아주 약한 충격에도 무너질 수 있다고 느꼈다.

관건은 이 시장에 가해질 수 있는 가능한 ‘충격’의 성격이었다. 나는 이 충격이 외생적일 뿐 아니라 견고한 구조를 가질 것이라 생각했다. 미국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금리 인상 기조는 우리가 막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무역전쟁은 트럼프가 집권하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해지면 세계경기가 둔화될 수 밖에 없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니다. 한껏 강화된 LTV/DTI 규제가 부동산시장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역사적으로 6개월~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발생했다. 이제 슬슬 그 여파가 발생할 지점이다. 조금 더 지엽적으로 바라보면, 이미 대전, 공주, 청주 등으로부터 인구를 빨아들인 세종이 추가적인 인프라를 갖추기 전 단기적으로 수도권 인구를 흡수할 수 있을 것 같아보이지 않았다. (어제 밤 늦게 세종청사 부근에서 학교 기숙사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해보았는데 정확히 한시간 반이 걸렸다) 이런 저런 환경들을 따지고 보니 부동산 시장에서 유동성을 걷어갈 요인밖에는 보이지 않았고, 그 요인들은 일시적이기 보다는 최소한 몇 년은 지속되는 항구성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부동산 시장 참가자가 내재적으로 수정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닌 외생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었다. 즉, 앞으로 2년동안 세종시의 부동산 시장은 상당히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변동성도 큰 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장 ‘지금’ 아파트를 급하게 구입해야 할 이유를 찾기 힘들어진 것이다. 이에 더해, 해당 지역에 1년 이상 거주하면 주어지는 신혼부부 특별공급의 신청자격을 포기하는 것도 아까웠다. 세종시는 분양가 제한 지역이라 상대적으로 현재 시장가치에 비해 저렴한 수준에 분양매물이 공급된다. 공급매물도 전국 최고 수준이다. 신혼부부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한번쯤은 노려보자는 생각이 그리 허황되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상대적으로 아주 저렴한 세종시의 전세가격은 우리 부부로 하여금 당분간 ‘빚’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아도 되게끔 만들어주었다. 아내에게 세종시에서 가장 살아보고 싶은 동네를 선택해줄 것을 부탁했고, 아내는 장기적인 투자 가능성도 높고 단기적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살 수 있는 편안하고 안정적인 동네를 골랐다. 우선 실내 구조가 가장 마음에 들었고, 청과물 가게부터 스타벅스까지 도보로 접근 가능한 거리에 있다는 점도 만족스러웠다. 서울에 비해 각종 편의시설은 당연히 많이 부족하지만, 자가운전을 하지 않으면 생활이 몹시 불편한 ‘지방 도시’라는 본질적 한계를 세종시 역시 가지고 있는바, 아내의 운전솜씨가 조금씩 늘다 보면 움직일 수 있는 영역도 조금씩 확장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새로 지은 아파트라 주차장도 넉넉해보였고 운동시설도 단지내에 있을 뿐 아니라 요가 등 각종 프로그램을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센터도 단지 바로 근처에 있었다. 내가 출근한 이후 일과시간을 친구 하나 없는 도시에서 혼자 보내야 하는 아내에게 그나마 가장 나은 환경을 고르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리 출퇴근이 자유로운 직업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가 계속 존재하기 때문에 아내가 혼자 보내야 하는 시간이 조금이라도 외롭고 쓸쓸하지 않기를 바랐다.

서울에 지나치게 쏠려있는 문화적 불평등 현상은 우리 부부가 극복해 나가야할 과제 중 하나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거대도시 서울이 한국에서 가장 높은 문화적 다양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모순은 지방 중소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뼈아프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좋은 커피숍 뿐 아니라 셰프와 주인장의 개성이 살아있는 작은 음식점들을 찾아다니는 재미는 서울생활의 백미 중 하나였다. 이제 쉑쉑버거를 먹으려면 11,000원과 한시간 반의 비용을 지불하고 고속버스에 몸을 실어야 한다. 이때문인지 아내는 현명하게도 얼마전부터 부쩍 직접 요리하는 시간을 늘려왔다. 맛있는 음식을 예쁘게 차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내를 만난 덕분에 서울을 떠나면서 오히려 더 건강한 요리를 자주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내 삶에 찾아온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다행히 세종시에는 좋은 도서관이 있고 교보문고와 영풍문고도 있다. 서가에 서서 책을 둘러보는 재미는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더이상 김밥레코즈에서 음반을 뒤적거리는 재미를 누리지 못하게 되었지만, 유비쿼터스한 세상에 살고 있는 덕분에 어디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음악은 계속 들을 수 있다. 놀랍게도 세종시에도 영화관이 하나 있으며, 블록버스터 영화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한 영화는 거의 대부분 극장에서 볼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상영관을 확보하고 있는 듯 보인다. 굳이 예술영화를 보고 싶다면 대전 시내에 있는 극장까지 차로 슬슬 나가면 된다. 백화점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데(우리 부부는 백화점 산책(?)을 좋아한다), 이 역시 11,000원과 한시간 반의 비용을 지불하면 고속터미널역에 위치한 한국 최대 규모의 백화점까지 한번에 갈 수 있으니 나름의 궁색한 대비책이 있는 셈이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공연이다. 서울에 머무른 기간동안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공연을 보려고 노력했다. 결혼한 이후에는 그조차 쉽지 않게 되었지만, 어찌 되었든 마음만 먹으면 홍대로 달려가 표를 끊고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정말 큰 마음을 먹어야 공연 하나를 겨우 볼 수 있을 것 같다.

문화적 다양성을 포기한 대신 우리 부부가 기대하는 것은 조금 더 여유로워지는 생활이다. 이미 임용 이후 우리 부부의 생활은 큰 폭으로 바뀌고 있다. 시간은 더 느리게 흘러간다. 원하기만 하면 새벽 두시까지 나른한 자세로 누워 텔레비전을 볼 수 있다. 물론 현실은 새벽 두시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 일쑤지만.. 아홉시 쯤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커피를 내려 마신 뒤 열시가 넘어서야 씻기 시작한다. 그래도 생활이 가능하다니! 물론 이번 학기에는 대전과 서울을 바쁘게 오가느라 길바닥에 버리는 시간과 돈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이제는 그런 부스러기 시간조차 아낄 수 있게 됐다. 그 시간과 돈을 모으고 모아 여기저기 놀러가볼 생각이다. 아직 한국에서 가보지 못한 좋은 곳이 많이 있다. 대전이 우리 부부에게 주는 거의 유일한 축복은 전국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접근성이다. 이것을 최대한 활용해볼 생각이다.

서울을 떠나는 대신 서울에서 어쩔 수 없이 유지해야 했던 관계들도 함께 조금 더 멀리 할 수 있다는 점도 기쁘게 받아들인다. 우리는 아마 조금 더 고립되겠지만, 그만큼 조금 더 우리 가족 안에서의 깊은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면 마음만 먹으면 되는 직업을 가지게 되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할 뿐이다.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것들과 조금 더 많이 작별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한다.

2년 뒤, 세종에 대해, 또 서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될지 지금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지방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을 수 있고, 목가적인 지방생활에 취해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혹은, 지금보다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또다시 갖은 고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어떤 가능성이든 열려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부부에게는 앞으로의 2년이 큰 도전이다. 이곳에서 잘 사는 것은 그 어떤 가능성으로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열심히 살고, 많이 배우는 2년이 되었으면 좋겠다.

조교수, 첫 학기

어제 2018년 봄학기 마지막 수업을 끝냈다. 이제 남은 것은 기말고사와 성적입력 정도인 것 같다. 지난 3월 이 곳으로 이직한 이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하루 하루가 시트콤이라고 할 정도로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쉴새없이 터지는 가운데 서울과 대전을 오가느라 몸은 점점 피곤으로 찌들어갔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실감했고, 보통의 국가기관과는 많이 다른 조직문화를 바닥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시키는 만큼 일하고 일하는 만큼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을 받으며 (최소한 먹고 사는 문제에 관해서는) 큰 걱정 없이 살았던 과거의 회사생활과 달리 중장기적인 ‘먹거리’를 찾아 ‘영업’을 해야하는 과정이 어색하기도 했다.

‘열심히 일하는 20%가 적당히 게으름 피우며 일하는 80%를 먹여 살리는 구조’는 이 곳에서도 비슷해보였지만, 개별적으로 주어진 연구실이 상징하는 것처럼 철저하게 독립적이고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교수사회에서 그 누구도 나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더 나아가 나 하나만 믿고 멀쩡히 잘 다니던(사실 그리 잘 다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좋은 회사를 관둔 아내를 경제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나를 움직이는 추동력으로 작용했다. 그 누구도 나의 출근과 퇴근시간을 신경쓰지 않았지만, 나를 밤 늦게까지 컴퓨터 앞에서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내가 오빠를 보아온 이래 가장 열심히 사는 것 같아.”라는 아내의 평가에 으쓱해할 틈도 없이 3개월이 지나갔다.

부족함을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된 첫학기였다. 앞으로 당분간 게으름 피울 시간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다음 학기 나의 수업을 수강할 학생들에게 질 좋은 강의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방학 기간 내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지식이 일천한 상태에서 그저 ‘말빨’ 정도로 수업시간을 때우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죄책감을 많이 느꼈다. 강의와 연구를 병행하는 요령도 얼른 터득해야 한다. 교수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유일한 방법은 연구활동 뿐이라는 사실을 절감하는 경험을 몇차례 겪었다. 좋은 논문을 쓰지 못하면 순식간에 정체되어 소멸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다. 생각보다 논문에 집중할 시간이 생기지 않아 적지 않게 당황한 학기이기도 했다. 틈틈이 부정기적으로 등장하는 각종 행정업무도 능숙하고 빠르게 처리해야 한다. 학교에서의 행정처리 과정은 전에 다니던 회사들처럼 체계적이고 신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눈치껏 스스로를 잘 지켜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충분히 똑똑한 학생들과 배울 점이 많은 선배교수들, 그리고 헌신적인 교직원이 주변에 있기 때문에 교육이든, 연구든, 행정업무든 나의 부족함이 노력으로 극복될 희망이 존재한다.

어제 저녁에는 같은 단과대학에서 함께 일하는 교수 및 교직원 분들과 종강식을 가졌다.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교수님의 은퇴식을 겸하는 자리였는데, 평생의 일터를 떠나는 분의 고별사와 그 분과 수십년을 함께 일한 동료들의 환송사를 차례로 듣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분은 내가 태어나던 해보다 한 해 일찍 이 대학교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약 37년 정도 한 곳에서 직장생활을 한 셈이다. 인품이 훌륭하셨던 덕분인지 많은 전,현직 교수들이 자리를 빛내기 위해 참석했다. 그 분이 고별사에서 남긴 말 중 인상 깊은 구절이 두어개 있었다. 하나는 “공부에만 매몰되지 않기 위해 다른 일을 반드시 하나 이상 해라. 개인적으로 꽃을 가꾸는 일이 마음을 다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후배들을 위한 조언이었고, 다른 하나는 “당신들과 함께 해서 참 행복하게 일하다 간다”는 동료들에게 바치는 감사의 인사였다. 평범하기 이를데 없는 말이었지만, 그 분이 오랜 시간 걸어간 기나긴 길의 초입에 이제 막 선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끝이 까마득해서 차마 보이지 않는 높은 산을 올려다보는 느낌이었다. 다른 교수님들의 덕담에서 “자식농사를 잘 지은 것”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았던 점이 재미있었는데, 과연 나의 아버지에게 나는 어떤 아들이었을까, 문득 궁금해져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난 저녁이기도 했다. 아버지에게 오랜만에 카톡이나 하나 보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포기했다. 괜히 머쓱하기도 했고, 직접 얼굴을 보며 이런 이야기를 드리고 싶은 생각도 함께 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걸어간 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제는 감히 상상도 되지 않는다.

Beach House | 7

beach house
2015년 한 해에만 두 장의 음반을 발표하는 등 이례적인 생산성을 보여주었던 비치 하우스(Beach House)가 잠시 숨을 고르더니 2018년에 엄청난 음반을 발표해버렸다. 이들의 일곱번째 정규 음반 [7]은 [Bloom] 이후 오랜만에 비치 하우스의 음악이 지체없이 내뿜는 폭발력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드림팝, 혹은 슈게이징에는 두 개의 양가적 세계가 공존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방구석’이다. 신발이 뚫어져라 땅바닥만 쳐다보며 연주하는 방구석 덕후들이 만드는 음악이 드림팝이다. 비치 하우스의 음악을 ‘흑백’이라고 느꼈다면 그건 아마 이 방구석에서 스물스물 풍겨져 나오는 곰팡이 냄새때문일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방구석 안에서 무한히 뻗어나가는 꿈나라 속 ‘신세계’다. 이들은 방구석 안에서 세계를 꿈꾸고 우주를 꿈꾸고 환상을 만들어낸다. 방구석 안 원더랜드가 덕후들이 뛰어노는 낙원이다. 비치 하우스의 음악을 출렁이는 물결처럼 느꼈다면 그건 아마 뮤지션의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무한한 신세계를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7]은 전자보다 후자에 가까운 세계를 드러낸다. 고개를 조금 더 치켜 들었고 목소리에도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사운드는 전에 없이 탄탄하고 화려하다.

[Depression Cherry]와 [Thank You Lucky Star]는 비치 하우스만의 독특한 ‘방구석’ 냄새를 잘 담아낸 음반이다. 즉, 멜랑꼴리하면서도 달콤쌉싸름한 비치 하우스식 발라드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구성이었다. [7]은 조금 결이 다르다. 첫곡 “Dark Spring”부터 위풍당당하고 화려하며 거침이 없다. 물론 이들의 가사는 여전히 [Teen Dream] 시절부터 고유하게 유지해온 십대의 멜랑꼴리한 정서를 충실히 담아내고 있지만, 그릇의 크기와 모양이 예사롭지 않다. 첫곡에서 “Pay No Mind”로 이어지는 연결지점에서 본이베어(Bon Iver)의 [Bon Iver] 음반이 떠올랐다. 그만큼 청량하면서도 쓸쓸한 정서를 탁월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Lemon Glow”까지 이어지는 음반의 전반부는 나무랄데 없이 훌륭하다. 개인적으로는 [Teen Dream] 이후 이들이 보여준 집중력 중 최고 수준이 아닌가 생각한다. 비치 하우스 멤버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프랑스어로 만든 “L’Inconnue”는 음반 내에서 조금 특이한 곡인데, 비치 하우스의 최근 작품들보다는 서브팝(SubPop) 레코드와의 계약 전 인디 시절의 색채가 조금 더 강하게 드러난다. 아마 첫녹음 이후 5년 만에 공개된 노래여서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Drunk in LA,” “Dive”로 이어지는 음반의 중반부를 지나 “Lose Your Smile”에 다다르면 비치 하우스만이 간직한 ‘신세계’가 무엇인지 조금 더 확실하게 실감할 수 있다. R&B, 디스코 등 새로운 장르와의 적극적인 교배는 이 음반이 가진 또다른 매력이다. “Black Car”에서는 전위적인 신디 사운드가 노래의 첫 1분을 지배한다. “Dive”에서는 비치 하우스만의 멜랑꼴리한 정서가 하나의 장르로 거의 정착되었음을 확신케 만드는 강한 에너지를(그만큼 강한 드럼 비트와 함께) 느낄 수 있다.

[7]은 비치 하우스의 긴 음악 커리어에서 하나의 전환점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각각의 노래는 고유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이건 아마도 이들의 변화한 녹음방식덕분일 것이다. 모든 곡을 한꺼번에 녹음하던 전과 다르게 멤버들은 하나의 노래에 대한 작곡, 작사 작업이 끝나면 그 즉시 녹음을 시작했다. 작곡과 녹음 작업을 꾸준히 병행한 결과 각각의 노래가 가진 개성이 조금 더 잘 살아날 수 있었다. 이것이 음반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다는 점이 음반이 가진 또다른 미덕이다. 음반 전체가 펄떡펄떡 살아 숨쉬고 있다. 그만큼 이들의 능력은 원숙해졌고 조금 더 여유로워졌지만,  결코 힘은 빠지지 않았다. 좋은 드림팝 음반이다.

션 베이커 | 플로리다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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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 베이커 감독의 전작 [탠저린(Tangerine)]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다. 비전문배우들과 함께 아이폰으로 촬영해서 만든 영화라는 점, 트렌스젠더-매춘이라는 LA 최하위문화를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도 충분히 인상적이었지만, 영화의 기본 서사구조가 매우 전통적이면서도 탄탄하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평단으로부터의 좋은 평가와 함께 영화제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세상의 어두운 면을 올곧은 시선으로 관찰하는 션 베이커에게 새로운 힘을 실어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가 조금 더 단단한 모습으로 돌아와서 무척 반갑고 행복했다.

영화는 몹시 아름답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종의 마법, 혹은 기적과도 같은 장면들을 내뿜는다. 아이들이 두 싸구려 모텔을 오가며 작은 이야기들을 하나 둘 쌓아올려가는 과정이 신비롭기만 하다. 빈민가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를 가진 [문라이트]가 상대적으로 희곡적인 요소가 강한 반면,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영화적이다. 이 점이 우선 가장 놀라웠다. 션 베이커가 한단계 더 높고 깊은 세계로 나아갔음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미학적인 진전만을 이루어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제 ‘미국의 다르덴 형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윤리적 시선도 더 강하고 단단해졌다. 전작에서 성소수자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었던 베이커는 이번 영화에서는 히든-홈리스(hidden homeless)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모텔에 장기 투숙하기 때문에 통계상 홈리스로 잡히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그와 비슷한 수준의 열악한 삶의 조건에 놓인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무니의 엄마는 무니를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그녀를 온전히 지켜낼 능력이 없다. 무니는 엄마와 함께 하는 일상이 너무 행복하지만, 그 끝에는 “절친과 다시 만나지 못할”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 사이에는 이 안쓰러운 모녀를 묵묵히 지켜보지만 그 자신조차 이 싸구려 모텔의 가난한 삶에서 구원해내지 못하는 바비라는 모텔 관리인이 있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코끝 찡한 사연이 전혀 유치하지 않게, 아주 자연스럽게 하나의 완전한 결론으로 나아가는 과정 역시 아름답다. 서서히 중첩되는 서사구조 안에서 방향성이 흔들리지 않고 일관된 하나의 결론으로 우직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영화의 엔딩씬은 또다른 마법의 시작이다. 영화 시작 후 처음으로 배경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이 씬은 (아마도 확실히) 아이폰과 같은 다른 기기로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데, 거칠고 투박한 카메라의 시선이 두 소녀의 뒤를 바짝 따라 붙을 때 기묘한 체험이 새롭게 시작됨을 알 수 있다. 두 소녀의 여행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 때 쯤 영화는 갑자기 끝나게 되는데, 엔딩 크레딧의 배경음악으로 (아마도 확실히) 디즈니랜드의 실제 군중 목소리가 삽입된 것을 보면 관객의 마음 안에서 두 소녀의 여행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감독의 마음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추측해보게 된다. 나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적인 기적을 체험했다.

김은덕, 백종민 | 사랑한다면 왜

사랑한다면왜
[사랑한다면 왜]는 재미있는 에세이 모음집이다. “지독한 개인주의자”이자 “비혼주의자”였던 두 저자가 결혼이라는 제도를 택해 한 집에 함께 살게 되면서 겪게 된 일들, 그리고 생각들을 정리한 책이다. 이 부부가 지금까지 함께 해 온 삶을 살펴보면 약간 독특하다고 할만한 특징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우선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 결혼식을 치루어냈으며, 결혼 후 1년 간 맞벌이 생활로 돈을 모은 후 2년동안 ‘한 달에 한 도시’ 컨셉으로 세계여행을 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책 세 권을 함께 집필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통장잔고 0원”의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다시 회사에 취직하는 방법 대신 함께 글을 쓰는 삶을 택했다. 그러는 와중에 텔레비전에도 몇 번 나오고 강연 초청도 제법 받게 되는 등 나름의 터를 잘 닦아 나가고 있다. 청담동의 고급 웨딩홀에서 식을 치룬 뒤 서울 변두리 어딘가에 살고 있을 보통의 젊은 부부에게는 다소 의아한 삶의 방식일테지만, 달리 말하면 망원동이나 합정동 어딘가에 머물며 제도권 문화의 영향력을 선택적으로 수용하려는 한국판 힙스터 부부가 지속하고자 하는 삶의 전형적인 형태다.

이들이 200쪽 남짓한 짤막한 책 안에 담아내고자 하는 이야기들은 진솔하고 치열하다. “며느리”, “시댁”과 같은 호칭부터 거부하는 여자의 태도는 완고하며, 주방을 ‘차지’하고 요리를 전담하는 남자의 태도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들의 개인주의적인 삶의 태도는 주변 관계를 정리하는 방식으로 귀결되었다. 양가 부모님과 가까운 가족, 그리고 다섯명 정도의 친구 정도만 남게 된 이들의 삶에는 출산과 육아라는 선택지도 지워졌다. 때문에 이들이 지속하고자 하는 삶의 방식은 주변의 ‘방해’를 최소화시키는 작업으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자의 부모는 각자 책임진다는 규칙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부모로부터의 속박을 최소화하고 싶어한다. 그와 동시에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식솔의 수도 ‘0’명으로 최소화시켰다. 그래서 이들의 삶은 이미 충분히 선택되어진 형태로 존재하고, 그렇게 잘 짜여진 조건 위에서 이들의 주장은 충분한 타당성을 획득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모순과 부딪히기도 한다. 예컨대 책을 읽는 내내 대체 ‘명절’의 권위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렇게 자신만만한 부부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인지 궁금했다. “가족 안에 매몰되는 것이 싫어서” 출산을 거부한 이들이 “비혼주의자 친구들과 평생 함께 하겠다”고 선언하는 모습에서 ‘적당한 거리의 관계만 취하며 살겠다’는 요즘 세대의 태도가 전형적으로 느껴져 갑자기 지루해지기도 했다. 아무튼, 최소한 이들은 지금까지 결혼이라는 제도와 한국사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왔으며, 그 고민의 결과물을 나름의 실천을 통해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 부부가 자신의 생각에 갇혀 이미 상당히 완고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비록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할 지언정 삶의 태도를 타의에 의해 바꿀 의지까지는 없어보인다. 나는 이 ‘완고함’이 대부분의 한국인이 가진 아주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은 닫혀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열려있지 못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부부는 자신의 부모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부모는 그 세대 안에서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을 것이다. 그 결과물이 그들의 아들과 딸이다. 그 아들과 딸은 지금 주어진 조건에서 다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그 결과물은 달라진 시대와 함께 그 외형만을 달리할 뿐 본질적으로 ‘우리가 맞아’라는 한국인 특유의 완고함을 1도 버리지 못했다. 이 완고함이 왜 나쁘냐 하면, 주변을 잘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의 태도에서 이타적인 마음, 주변을 살피는 마음,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타인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1도 느껴지지 않는다. 부부가 서로 마주보고 꽁냥꽁냥하는 것에서 삶의 기쁨을 느꼈다면 이제 범위를 확대하여 그 기쁨 이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들이 포기한) 출산과 육아는 인간과 인간이 만나 깨달은 사랑이라는 가치를 사회로 환원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개인적인 이유에 의해 출산과 육아를 포기했다면(그것에 대해 뭐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사회와의 공존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부는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아마도 경제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가난해서 마음도 가난해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부분을 중요시하는지 너무 가볍게 넘겨짚은 것 같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는 “지독한 개인주의자”가 저지르는 가장 기본적인 실수이기도 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나보다. 이 부부는 좋은 사람일지언정 아직 좋은 이웃은 아닌 것 같다. 나의 좋은 이웃이 아니라면, 페미니즘이고 뭐고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다.

김해원 | 바다와 나의 변화

김해원
김사월X김해원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 이들의 음악은 함께 음악을 듣던 친구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되었다. “김사월X김해원 들어봤어요?” “네, 완전 대박” 따위의 대화를 자주 주고받았다. 이들의 음악에 심장이 뛰었던 사람들은 비단 우리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포크씬에 일으킨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것을 넘어 한국 음악계 전체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 이들의 음악은 서늘하면서도 뜨거웠고, 명쾌하면서도 다차원적이었으며, 매혹적이지만 마냥 살갑게 굴지도 않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김사월은 두 장의 솔로 음반을 통해 인디씬에 확고한 자기만의 위치를 만들었다. 주체적인 여성의 목소리를 명료하게 들려준다는 점에서 그녀의 음악은 단순히 잘 만든 음악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김사월의 목소리를 꾸준히 접하는 동안 김해원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프로듀싱과 영화음악 등을 통해 음악가와 청자, 감독과 관객의 매개자로 활동”해온 그가 “스스로 텍스트가 되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돌아왔다.  결론부터 말하면, 작곡, 작사는 물론 연주와 녹음, 편곡과 믹싱까지 음반 제작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작업을 혼자 힘으로 해낸 [바다와 나의 변화]는 놀라운 수준의 들끓는 에너지가 절제된 목소리 안에 고요히 담겨 있는 묘한 작품이다. 도시를 떠나 바다를 가까이 하며 내면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김해원은 이번 음반에서 오롯이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성찰은 깊은 수준까지 내려간다. 연인 사이에도 드러내기 힘든 마음의 밑바닥까지 남김없이 긁어내어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연주는 심장을 도려내는 칼날처럼 날카롭게 다듬어져 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소리의 빈공간조차 농밀하게 채워져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될 정도로 작곡은 빈틈이 없다. 홈레코딩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녹음도 깔끔하다.

이 음반은 다분히 감정적이지만, 지극히 냉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엘리엇 스미스를 삼촌으로 둔 수프얀 스티븐스가 빅 띠프의 멤버들과 음반을 만든다면 이런 느낌일까. 첫곡 “Hungry Boy”에서 김해원은 ‘소리’를 직조하는 과정에서 단 일보도 후퇴할 생각이 없음을 명확히 드러낸다. “헝클어진 머리”와 “불길”에서는 이 음반을 듣는 청자에게 어떤 자세를 요구하는 것 같아 보인다. 나는 이만큼 솔직해질테니, 나의 음악을 듣는 당신도 진실해지길, 하고 속삭이는 느낌이다. “Television” 쯤에 이르면 김해원의 세계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어제 네가 나오는 텔레비전을 봤어”라는 단 한 줄의 가사를 두 번 읊조리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이후 묵묵히 이어지는 연주를 통해 화자의 감정을 절절하게 노출한다.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냐, 라고 반문하는 이 노래를 듣는 청자의 마음도 함께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불길”과 “새벽녘”에서 보여주는 김해원의 기타 연주는 탄성을 자아낼 정도인데, 이는 단순히 악기를 아름답게 연주하는 차원을 넘어 악기연주를 통해 어떤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인상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Listener”와 “종달새”에서는 그의 음악적 뿌리가 여전히 포크에 자리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잊고 있었다!), “Why So Hard?”에서는 김해원식 아름다움의 한 절정을 느낄 수 있다. 왜 후반부에 배치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하면 절로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이 노래는 무척 아름답다. 순수하게 아름답다. 이 곡에 이어지는 음반의 타이틀곡 “바다와 나의 변화”과 음반을 마무리짓는 “오늘”에서는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화자의 서늘한 고백을 마주해야 한다. “차가워지는 물”과 “짐이 되어가는 자신”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끼는 것들과 사람을 위해” “무거운 옷”을 입어도 힘이 들지 않는다고 되내이는 김해원의 고백을 듣다보면 얼굴의 솜털이 삐죽 곤두설 정도로 서늘함을 느끼면서도 그 안에 가만히 자리잡고 있는 뭉클하고 뜨거운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좀처럼 갖기 힘든 기이한 체험이다. 아름답고 아름답다.

우리가 김사월X김해원의 음악을 통해 상상하고 기대했던 김해원의 음악보다 훨씬 더 깊고 더 풍부하고 더 맑은 음악을 [바다와 나의 변화]를 통해 전달받을 수 있었다. 윤영배 이후 언제 이토록 좋은 포크 음반을 접해보았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나에게는 현재까지 이 음반이 ‘올해의 음반’이다. 최소한, 상반기 최고의 음반이다. 최소한. 반드시 헤드폰으로 들어보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