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 나라

세종시를 조금씩 더 좋아하게 되는 이유로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을텐데, 그 중 하나는 이 도시가 아이들을 중심으로 설계된 동네라는 점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인 한국에서 아이가 중심이 된 도시를 그리 많이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을 생각해볼 때, 반가움을 넘어 고마움까지 느끼게 만드는 작은 배려들을 도시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설계자가 고려한 여러가지 장치들을 이 곳에 실제로 거주하는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무시해버린다면 그것처럼 슬픈 일도 없겠지만, 서울과 같은 기존의 대도시들이 겪고 있는 것처럼 타인과의 불쾌한 경쟁을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환경으로까지 악화되지만 않는다면 최소한의 배려는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게 된다. 그런 작은 기대들이 이웃을 향해 한번은 더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마음 속 작은 여유를 만드는 원천이 된다. 타인을 반드시 이기지 않아도, 이웃을 반드시 미워하지 않아도 내 가족과 내 아이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조금씩 더 강해질때, 비로소 ‘공동체’의 한국적인 재해석이 가능해질런지도 모른다.

말은 이렇게 거창하게 하지만, 나는 오늘도 공동체의식을 지켜내기 위한 위기를 한차례 넘겼다. 아내가 잠시 한국을 떠난 이번 주말 내내 혼자 집을 지키고 있다. 집에 혼자 있을 때에는 영화도, TV프로그램도 잘 보지 않고 심지어 음악도 잘 듣지 않는다. 침묵이 흐르는 넓은 집에 하루종일 혼자 있다보면 작은 소음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기 마련인데, 오늘따라 유독 그동안 잘 참아왔던 윗층으로부터의 층간 소음에 온 정신을 사로잡혀버렸다. 어린 아이가 쿵쾅쿵쾅 뛰어다니는 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었는데 오늘은 그만 육체적인 고통, 즉 두통이 오고 말았던 것이다. 책상 앞에 앉아 이것저것 하는 것이 직업인 사람에게 머리와 관련된 고통은 꽤나 성가신 존재다. 늦은 저녁까지 쉬지 않고 뛰어다니는 윗층의 어린 친구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와중에 그만 과연 나는 오늘 밤까지 이 소음을 참아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뇌에 빠져버렸다. 마침내 내가 그동안 그렇게 많이 들어왔던, 윗층 계단을 올라가서 초인종을 누르는 꼰대 아저씨가 되어 버리는 것인가 싶어 두려움까지 밀려왔다.

일단 저녁미사를 보고 와서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십몇층부터 내려오던 엘리베이터가 윗층에서 멈추더니, 떠들썩한 아이의 목소리와 그 아이를 진정시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함께 들렸다. 딱 봐도 윗층 식구들이었다. 바로 밑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다시 멈추었을 때, 떠들썩했던 엘리베이터에서 순간적으로 묘한 침묵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하는 윗층 가족과 하필이면 오늘따라 예민한 아랫층 남자는 그렇게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첫번째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공룡을 두 손에 들고 있는 세살에서 네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의 옆에는 역시 공룡 하나를 들고 말상대를 열심히 해주고 있는 젊은 여자와 그들을 전혀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휴대폰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젊은 남자가 있었다. 공룡을 들고 좁은 엘리베이터의 이구석과 저구석을 열심히 뛰어다니는 그 아이와, 혈기왕성한 아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진땀 흘리는 여자, 그리고 휴대폰만 열심히 보고 있던 남자로 구성된 그 가족을 보고 있자니, 오늘 하루종일 나를 괴롭힌 두통 따위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의 두통은 그 아이가 오늘 윗층을 뛰어다니며 확장시켰을 공룡과의 대혈투 이야기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는 그 어린 친구의 세계가 큰 장애물 없이 계속 성장해나가기를 바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 가족을 다시 만난 것은 불과 10여분 후, 성당에서였다. 그 가족도 같은 성당 식구였던 것인데, 거기서도 여자의 사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아랫층으로의 소음전파에 대한 걱정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스트레스가 그 여자를 지배하고 있었음을 그녀의 표정에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미사가 시작되기 직전까지 휴대폰만을 보던(과연 그 휴대폰 안에는 무엇이 담겨져 있는지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남자가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는 다행히 큰 소음을 내지 않고 지겹고도 지루한 한시간 여의 시간을 견디어냈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을 다시 정리했다. 이 도시는 아이들을 위한 곳이다. 하지만 이 곳이 여성을 위한 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설계자의 배려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필요해보였다. 나는 두통을 희생했지만, 최소한 그것보다는 더 큰 희생과 노력이 필요해보였다. 거의 확실하게 그렇게 느껴졌다.

김민기 |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지하철 1호선]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작품이다. 2001년, 혹은 2002년 무렵 어느 겨울날 이 뮤지컬을 처음 접했고, 큰 충격에 빠졌다. 내가 알던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충격은 아마도, 애써 무시하고 있던 세상의 밑바닥을 날것 그대로 접해야 했던 어린날의 성장통이었을 것이다. 이후 두 세번 정도 더 관람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관람 후 계단에서 기다리던 출연진과 일일이 악수를 하는 여유도 생겼지만, 관람 중 어느 순간 맞닥뜨렸던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는 듯한 감동은 여전한 크기로 전해져왔다. 유학을 나와있던 중 [지하철 1호선]이 4천회를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고 했을 때 느꼈던 서운함도 아직 잊지 못한다. 영원히 달릴 것 같았던, 마냥 씩씩해보였던 작품이 갑자기 운행을 종료한다는 통보를 해왔을 때 느꼈던 서늘하고 먹먹한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게 가슴 한구석에 살아남아있다. 연속 공연을 중단한 김민기 대표가 이후 아동극에 천착하는 모습을 보며 [지하철 1호선]을 다시 보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할 수 조차 없게 된 것은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매일 이 작품을 기억하며 살지는 않았지만, 첫번째 관람 이후 이 작품을 한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말도 거짓은 아니다.

그런 작품이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마음 속으로 16,17년 전 감정이 살아나는 듯 해 묘한 반가움을 느꼈다. (사실은 뛸 듯 기뻤다) 그 때 들었던 노래들은 여전한 감동으로 다가올지도 궁금했고, 그 당시 이 작품을 통해 발견했던 마음 속 깊숙한 곳부터 시작된 아우성은 이제 어떤 모습으로 반응할지도 궁금했다. 나는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한 몇몇 예술 작품과 서적들을 통해 현재의 자아를 획득한 경우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십대 시절 읽지 않았다면, 머큐리 레브(Mercury Rev)의 [Deserter’s Songs]를 수험생 시절 듣지 않았다면,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책들을 유학을 떠나기 전 읽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지하철 1호선] 역시 마찬가지다. 입대 전 방탕한 대학생 시절에 만난 이 작품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선은 분명한 변화를 겪었다. 지금의 나는 그 때로부터도 멀리 달아나 있지만, 최소한 그 뿌리는 아직도 굳건히 자리잡고 있음을 느낀다. 그렇기에 이 작품을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관람하는 것은 최소한 개인적으로는 나에게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찾았다. 아내가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기도 했고, 지금 우리가 함께 보는 공연에서 어떤 것들을 공유할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다시 찾은 학전블루 소극장은 여전히 낡고 좁았다. 좌석은 세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공연 시간동안 내 뾰족한 엉덩이를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딱딱했다. 하지만 앞좌석에 무릎이 닿을 정도로 좁고 불편한 좌석도, 매캐한 냄새가 은근히 퍼지는 지하의 공연장도 그저 반갑고 고맙기만 할 뿐, 공연을 기다리는 들뜬 마음을 식혀버리는 걸림돌이 되지는 못했다.

공연은 1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배경은 여전히 1998년 IMF 위기가 터진 직후였고, 선녀는 여전히 제비를 찾아 1호선을 타고 이곳 저곳을 배회한다. 그 와중에 만나는 사람들 역시 여전히 1998년을 살고 있었다. 혼혈로 태어나 사창가에서 포주 노릇을 하는 철수도, 그런 철수를 주워다 키운 곰보할매도, 곰보할매의 가게에서 우동을 외상으로 먹는 안경도, 그런 안경을 사랑하는 걸레도 모두 그대로였다. 지하철에서 UFO에 대한 믿음을 설파하는 교주와 고무장갑을 파는 잡상인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공연에서 2018년을 느낄 수 있었던 유일한 부분은 음악이었다. 밴드 ‘무임승차’의 구성이 조금 달라졌다. 드럼과 색소폰이 빠지고 바이올린과 건반, 퍼커션이 들어왔다. 그러다보니 모든 곡에서 약간의 편곡이 이루어졌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공연에서 정말 크게 달라진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사람이다. 공연을 올리는 배우들이 바뀌었고, 그 공연을 보는 나와 내 주변의 관람객이 바뀌었다. 우리는 이 작품이 무대 위에서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1998년의 공기에서 20년이나 떨어져 있었다. 그 당시의 무겁고 우울한 공기에서 조금씩 벗어난 우리는 이제 조금 다른 형태의 삶의 고단함으로 옮겨온 터였다. 비록 기억은 하고 있을지언정 더이상 그 순간을 살지 않은 우리들이 공연장에서 가장 서서히, 하지만 기어코 가장 극적으로 변해버린 존재가 아니었을까. 한 인터뷰에서 이번 [지하철 1호선]에 참여한 배우 중 과거에 공연되었던 [지하철 1호선]을 직접 경험한 배우는 딱 한 명 뿐이라는 이야기를 읽었다. 1998년이 2018년의 우리에게 ‘역사’로 기억되는 것처럼, 이 공연의 무대에 서는 배우들에게도 이 작품은 하나의 역사였던 것일까. 그래서인지 배우들의 연기에서 작지않은 이질감을 느꼈다.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선녀와 철수, 걸레와 안경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았다.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한 것이, 이번에 무대에 오른 젊은 배우들이 받아들였을 1998년과 나를 비롯한 객석의 많은 ‘늙은’ 관객이 기억하는 1998년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12월 쯤 되어 예정된 100회 공연의 막바지에 다다를 때, 이 배우들은 어떤 공기를 내뿜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관객으로부터 어떤 공기를 받아들일 것이며, 1998년을 반복해서 상기시키는 대사와 몸짓을 통해 무엇을 체화할 것인지 궁금해졌다. 아마도 적지 않은 것들이 달라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1호선]은 4,000회에서 100을 더해 딱 4,100회까지만 운행한다고 한다. 김민기 대표의 인터뷰에 따르면 “정리하고 가야 할” 작품들이 학전에 쌓여 있고, [지하철 1호선]은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라 가장 먼저 털고 넘어가기로 했다고 한다. 이제 이 작품이 정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셈이다. 이 작품의 2008년, 2018년 버전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의 말처럼 만약 그렇게 시대를 한번 더 옮겨야 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번안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이어야만 할 것이다. 2018년을 살아가는 철수와 걸레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어야 한다. 시대가 변했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변했으며, 우리와 시대 안에 존재하는 공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8년을 그리고 있는 [지하철 1호선]은 여전히 넘치는 생명력으로 펄떡거렸다. 오프닝에서 선녀가 독창을 할 때부터 이미 시작된 짜릿한 기운은 한 이름없는 술취한 직장인이 남산 아래 길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느껴지는 먹먹한 감정으로 자연스럽게 전이되었다. 선녀의 이야기가, 걸레의 이야기가, 빨간바지의 이야기가 관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 개개인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 여전히 눈 앞에서 펼쳐졌다. 좁고 불편한 객석에서 세시간 만에 몸을 일으키며 고맙다는 생각만 계속 들었다. 다시 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단 100회 뿐이라 해도, 이렇게라도 다시 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명동교자 | 칼국수와 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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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중고 시절을 모두 한 동네에서 보냈다. 세 개의 산과 세 개의 터널로 둘러싸인 작은 동네였는데, 한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주택가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빌라촌이 담벼락를 맞대로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어린 시절 놀러갔던 ‘친구네 집’은 반지하 단칸방부터 삼층짜리 대저택까지 그 간극이 무척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놀러온 아들의 친구를 위해 자리를 비켜줄 공간조차 없어 좁은 거실에서 친구의 어머니와 등을 맞대고 있었던 기억도 있고, 집의 한 층 전체가 그 친구에게 할애되어 방 안에서 탁구를 치고 대형 스크린으로 게임을 즐겼던 기억도 있다. 어린 나이 마냥 철이 없었기에 느끼지 못했을 삶의 노곤한 축적과정이 지금 돌이켜 보니 조금 묵직하게 와닿는다.

그 동네에 있는 성당은 주차공간이 무척 협소했다. 성당에 들어가고 나오는 과정에서 조금 많은 인내심을 요할 때가 종종 발생했다. 다른 말로 하면, 대구 출신인 나의 아버지의 성미에는 잘 맞지 않았던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름의 명확한 주차 관련 규칙을 가진 명동성당에 가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이 살던 동네와 명동성당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번, 매주 일요일 아침 세 개의 산와 세 개의 터널로 둘러싸인 조용한 동네를 벗어나 다다른 광화문과 종로, 시청과 같은 큼지막한 세계는 내가 기억하는 ‘고향’의 첫번째 이미지로 지금까지 각인되어 있다. 그 곳에서 미사를 드리면 성당에서 두시간짜리 주차권을 끊어주었다. 우리는 미사를 위해 쓰인 한시간을 제외하고 남은 한시간을 명동교자에서 칼국수를 먹는 일에 할애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거의 매주 일요일 점심으로 명동교자에서 칼국수를 먹었다. 내 나이 열살, 열두살, 아니 아홉살, 혹은 열한살일 수도 있는 그 무렵의 이야기다.

지금도 부암동은 세 개의 산과 세 개의 터널로 둘러싸여있다. 그 당시에는 밭을 가는 소가 있던 그 동네는(정말이다. 부암동 골목길로 올라가면 밭과 소가 있었다) 이제 조금은 개발이 더 되었지만, 여전히 서울의 다른 지역과 물리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분리된 어떤 이질감이 남아있다. “서촌”이라 불리우는 효자동 일대와도 다른,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이 살아남아 유지되는 것이다. 명동 일대도 마찬가지다. 명동성당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지하주차장이 새로 만들어졌고 조금 더 넓어졌지만, 여전히 명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면 두시간짜리 주차권을 준다. 그 주차권을 들고 명동성당 아래로 조금 내려가다 보면 항상 사람들로 붐비는 골목들이 나오고, 첫번째 골목 왼쪽으로 들어가자마자 명동교자가 나온다.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직원들의 능숙한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을 때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명동교자에 가면 항상 칼국수를 먹는다. 머릿수가 좀 많으면 만두까지 먹을 생각을 한다. 칼국수의 가격과 양은 조금씩 달라졌지만, 이 곳에 오면 거의 아무런 고민 없이 칼국수를 선택하게 된다. 이 곳에서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춧가루로 범적이 된 매운 김치도, 고슬고슬한 공기밥 한그릇도 이 곳만이 가진 독특한 색깔이다. 전국의 수많은 칼국수집이 이 가게의 이름을 훔쳤지만, 그 맛까지 훔치지는 못했다. 칼국수라는 단순한 메뉴 하나로 1965년부터 지금까지 50년 이상을 한 장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이미 존경을 받아 마땅한 성취다. 그런 의미에서나는 명동교자가 서울을, 더 나아가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식당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외국에서 요리를 배워 왔거나 미디어에 노출되어 유명세를 탄 많은 요리사들이 신선하고 새로운, 그리고 비싼 메뉴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 어떤 고급스러운 식당도 명동교자가 쌓아올린 이 유산에 비할바는 되지 않는다. 그 어떤 고급스러운 음식도 명동교자만큼 서울의 냄새를, 한국의 공기를, 명동의 촉감을 잘 간직하고 있지는 못하다. 직원들이 선사하는 친절함은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딱 적절한 수준의 미소를 간직하고 있다. 빠르게, 하지만 불편하지 않게 일을 처리하면서도 넉넉한 인심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식당은 사실 찾아보면 그리 많지 않다.

아내는 명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기 전 6개월동안 그곳에서 교리공부를 해야 했다. 매주 금요일, 퇴근 후 추운 겨울 날씨를 뚫고  명동에 도착하면 허겁지겁 명동교자에 들러 칼국수를 흡입하고 7시까지 아내를 들여보낸 뒤 근처 커피숍에서 숨을 돌리며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세례를 받고, 축하를 위해 모인 부모님과 누나, 그리고 두 조카와 함께 다시 명동교자에 갔다. 그 때에는 작은 방을 빌려 시끌벅적하게 칼국수와 만두를 나누어 먹었다. 그 순간 나는 대단히 큰 기쁨을 느꼈다. 종교적인 이유와 무관하게, 내가 사랑하는 나의 혈육이 한 자리에 모여 기쁨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리고 그 장소가 20년 넘게 줄기차게 찾아온 오래된 식당이라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내가 자식을 낳는다면, 아마도 나는 아내와 함께 그들을 이끌고 이 곳에 다시 올 것이다.

나와 같은 경험과 기억을 간직한 사람이 무척 많을 것이다. 달동네에 사는 노인부터 평창동에 사는 박사장님까지 몇천원의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음식이 있고, 그 음식을 몇십년동안 변함없이 즐기며 쌓아올린 추억이 있다. 그 맛과 그 추억은 입구에서부터 줄을 서는 모두에게 공평하다. 이태원이나 서래마을에 있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가격표를 통해 사람을 가려 받는다면, 광장시장의 유명한 맛집이 누군가에게는 신체적인 불편함을 걱정케 한다면, 명동교자에는 그러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명동교자가 쌓아올린 유산은 이런 것이다. 다른 그 어떤 식당도 대체할 수 없는, 서울의 역사 그 자체가 명동교자 안에 있다.

신고하는 사회를 바라며

대전-세종 지역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현상이 하나 있다. 좁은 왕복 2차선 도로의 양 변에 불법주차되어 있는 차들때문에 불필요한 교통체증이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모습이 바로 그것인데, 이러한 불법주차 문제야 서울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것은 없지만, 서울과의 차이점이라면 세종은 물론이고 대전도 서울에 비하면 주차 여건이 매우 양호한 편이라는 점이고, 서울에 비해 이러한 불법 주정차 행위가 일반 시민들의 습관적인 행위로 거의 고착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감히’ 서울에 비교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이야기해야겠지만) 공용주차장이나 대형 주차빌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가에 불법주차를 ‘기어코’ 하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선량해 보이는 시민의 얼굴에서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가끔 놀랍게 다가온다. 텅텅 빈 주차빌딩 앞을 가득 메운 불법주차 차량을 보면 그로테스크한 기분까지 느낀다. 세종시의 경우 아직 대부분의 빌딩 주차장이 요금을 부과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금전적인 부분이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고, 더 나아가 주차요금을 부과한다고 해도 몇 천원 차이로 불법을 감행할 정도로 이 지역 주민의 소득수준이 서울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없다. 굳이 해답을 생각해본다면 첫째, 지하 2,3층 주차장까지 차를 끌고 내려가는 것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 혹은 ‘귀차니즘’이 큰 영향을 발휘했을 가능성이 높고, 둘째, 그 귀차니즘을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불법행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이들을 좁은 도로의 양 변으로 인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경제학적으로, 주차장에 주차를 하지 않는 현상이 개별 경제주체에게 올바른 경제적 유인을 부여하지 않아 발생한 시장실패의 문제라면, ‘이성적인 판단’ 아래 불법주차를 하는 개별 경제주체에게 정확한 처벌을 가하지 않는 정책당국의 게으름으로 인해 교통체증이 발생하고 도로 위 사고발생 위험이 증가하는 공공성 훼손의 문제는 정부실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판단 아래 나는 최근 신고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장애인 주차장 불법주차 차량에 대한 신고부터 시작했다. 불법 주정차 신고는 ‘생활불편신고’ 앱에서 가능한데, 휴대폰으로 바로 사진을 찍어 업로드한 뒤 간단한 신고 사유를 덧붙이면 바로 신고가 완료된다. 불법행위를 발견하고 5분 안에 신고가 끝나기 때문에 따로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며, 문자 등을 통해 신고 경과를 알려주기 때문에 피드백 또한 신속하게 이루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참고로 불법 유턴이나 난폭운전, 보복운전 등 운전 상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한 신고는 경찰청에서 발행한 ‘스마트 국민제보’ 앱에서 가능한다. 이 앱의 경우 운전 중 휴대폰 촬영을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량에 부착된 블랙박스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불법행위 발견 후 귀가하여 녹화된 파일을 일일이 검색하고 편집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동영상으로 확실한 증거를 획득한 경우 사고 위험이 높은 행위에 대해 신고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편익 분석 측면에서도 충분히 할만한 가치가 있는 셈이다.

나와 같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신고행위는 장기적으로 사회를 이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크게 세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위와 같은 교통법규 위반행위에 대한 신고는 초범의 경우 대부분 계도 수준에서 마무리되며, 실제로 벌금부과까지 가는 사례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행위자에게 실질적인 ‘신호’를 보내게 된다.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고, 자신의 불법행위에 대해 어떤 이가 신고를 할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정부당국으로부터 지적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겨주는 것이다. 이 신호는 생각보다 중요한데, 경제주체가 미래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거짓말로 인한 이득이 거짓말을 들켰을 때 감당해야 하는 비용보다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이 잘못된 행위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잘못된 행동이 실제로 발생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올바른 경제적 유인 제공이고, 다수의 신고는 일정한 수준 이상의 신호를 발생시켜 경제주체에게 ‘규칙을 위반할 경우 발생하는 잠재적 비용’을 높게 상정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둘째, 신고가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더 굳건히 믿게 된다. 규칙을 어기면 신고를 당할 것이고, 그래서 규칙을 어기면 안된다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잡게 되면, 그 다음에는 서로가 서로를 ‘규칙을 지키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규칙을 어기게 되는 이유는 위에서 설명했듯 규칙을 어길 경우 발생하는 이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건 기본적으로 ‘상대방도 규칙을 어길 것이다’라는 가정을 깔고 시작한다. 즉, 달리 말하면 모두가 규칙을 어기는 가운데 혼자만 규칙을 지키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덩달아 규칙을 어기게 되는 것이다. 신고가 일상화되고 규칙 위반자에 대한 처벌 역시 일상화된다면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소수로 보일 수 있으며, 이러한 소수의 규칙 위반자에 대한 시선 역시 달라질 수 있다. 변질된 유교사회에서 신고행위는 ‘이웃을 믿지 못하게 한다’는 그릇된 통념으로 비추어질 때가 많다. 하지만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다. 신고를 하지 않는 동네에서는 모두가 불법을 저지르며,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무법천지가 되어버린다. 이웃이 잘못을 저지르는 모습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말도 하지 않는 사람이 제대로 된 이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그 행위에 대해 정확하게 지적하는 사람이 더 나은 이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한 공동체가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다면, 둘 중 어떤 행위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공동체를 나아가게 만들까. 상식적으로 너무 명백한 문제인 것 같다.

셋째, 공무원들에게 일을 시키는 효과가 발생한다. 국가가 정한 여러가지 규칙 중 실제로 잘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것들을 들여다보면 이에 대한 감시와 처벌이 미흡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불법 주정차를 예로 들면, 하루에도 수백건 씩 발생하는 이러한 규칙위반 행위를 담당 공무원 한두명이 완벽하게 처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담당 공무원 본인의 경제적 혜택과 거의 상관이 없는 일이기도 해서 모럴 헤저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일반화된 신고행위는 공무원들을 강제로 일하게 함으로써 정책당국에게도 일정한 신호를 보낸다는 장점이 있다. 즉, 시장실패 뿐 아니라 정부실패 차원에서도 일정 부분 교정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자발적으로 모든 규칙을 준수하는 시민의식이 완전히 자리잡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강제적으로라도 규칙을 준수하게끔 만드는 여러가지 장치들이 필요하다. 시민의식이나 공동체의식같은 개념은 단기간에 교육이나 훈육을 통해 발전된다기 보다는 장기간 사회적 유전자 속에 주입됨으로써 서서히 습득해나간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나는 우선 내가 사는 동네 주변부터 신고를 통한 효과가 어느정도인지 실험해나가기로 했다. 동네에서 가장 불법행위가 만연하여 불필요한 번잡스러움이 일상화된 한 골목을 타겟으로 정했다. 앞으로 6개월에서 1년동안 지속적으로 그곳에 불법 주정차된 차량에 대해 신고를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만 더 있다면, 그 효과는 조금 더 커질 수 있을까.

박훈정 | 마녀

마녀 포스터
영화를 나보다 훨씬 좋아하는 아내덕분에 예전에는(즉,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보지 않았을 작품들도 종종 보게 된다. 박훈정 감독의 최근작 [마녀] 역시 이런 연유로 보게 되었다. [신세계]는 채널을 돌리다 발견하면 꼭 끝까지 보게 되는 영화다. 이런 류의 오락영화(즉, 아주 편한 마음으로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영화)로 [본] 시리즈가 있는데, 잘 만든 오락영화는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좋은 미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영화를 만든 박훈정 감독의 근작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사실 박훈정의 능력 중 상당 부분이 과거 명작의 장점을 매끄럽게 베낀다는 데에 기대고 있었으니, 그가 창의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반드시 실패하고 말 것이라고 예상을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가 스타파워나 대기업 자본에 기대지 않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만든 [마녀]는 [신세계]에서 보여준 장기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작품이다. B급 영화에서 만날 수 있을 법한 서사구조와 클리셰들이 판치는 가운데 한국영화 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소녀 히어로, 혹은 안티-히어로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미 어느정도의 성취를 이룬 셈이다. 영화적으로 많은 단점들이 존재하기에 결코 단단한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없는 작품이지만, 어디선가 베낀듯한 요소들을 잘 버무려 이 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아우라를 만들어냈다는 점도 칭찬할 만 하다. 주연 배우 김다미는 박훈정의 그러한 어설픈 작가주의를 거의 완벽하게 드러내는 페르소나로 손색이 없다. 어색한 듯한 표정과 몸짓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Mitski | Be the Cowboy

mitski
미츠키(Mitski)의 네번째 정규 음반이자 그녀의 이름을 전세계 음악팬들에게 각인시킨 2016년작  [Puberty 2]는 분명 그 해 발매된 음반 중 가장 손꼽히는 작품이었지만, 나는 선뜻 그 해 가장 뛰어난 음반이었다고 말하기를 주저했다. 이건 전적으로 내가 그녀와 비슷한 지역성(locality)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 즉, 나의 입장에서 그녀와 그녀의 음악을 어떤 범주에 넣을지(categorize) 지나치게 고민한 것 같다. “Your Best American Girl”같은 곡은 디아스포라(diaspora) 음악으로 볼 수도 있고 그냥 가벼운 인디-아이돌 팝넘버로 볼 수도 있었다. 음반 전체적으로는 아주 좋은 로-파이 음악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여성성(femininity)과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문학작품으로 해석할 여지도 다분했다. 그녀의 음악이 가진 다층적인 구조때문에 음악을 음악 자체로 100% 즐기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많은 기대 속에 올해 발매된 다섯번째 음반 [Be the Cowboy]는 그녀의 음악적 세계관이 한층 넓어지고 깊어졌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전작의 어디에선가 형식적으로 ‘아마추어적’으로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다면, 이번 음반에서 그러한 걱정이 말끔히 사라지는 지점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90년대 로-파이 음악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껴안는 기존의 색채는 전체적으로 유지하되 디스코, 신스팝, 흑인음악 등 다양한 장르로 예쁘게 치장했다. 80년대, 때로는 6,70년대 스탠다드 팝 넘버의 영향력까지 느껴지는 곡들이 존재한다. 덕분에 음악은 훨씬 말끔한 옷을 입었고 다양성까지 획득했다. 미츠키가 들려주는 이야기들도 전작 [Puberty 2]의 연장선상에서 그 주제를 조금씩 확대한 느낌이다. 음반의 제목은 [Be the Cowboy]이지만, 그 어떤 노래에서도 카우보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다만 미국의 한복판에서 아시아-여성-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녀가 전달하는 삶의 파편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그 의미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미츠키가 이번 음반에서 획득한 이러한 형식적, 내용적인 측면에서의 발전된 모습은 첫곡 “Geyser”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이 곡 하나만으로 이미 “Your Best American Girl”의 무게감을 넘어선 것 같다. 이 외에도 “Nobody”에서는 전작에서 느낄 수 없었던 미츠키의 클래식한 매력을 확인할 수 있고, “Why didn’t You Stop Me?”, “Two Slow Dancers”와 같은 좋은 곡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34분 남짓한 짧은 러닝타임이 음악의 감상을 방해하는 유일한 요소인데, 스트리밍 서비스의 확산 등 음악 산업이 변화하면서 정규 음반(“Full-length” album)의 정의와 개념도 서서히 변화하는 시점이니 만큼 이 것이 절대적인 흠은 되지 못할 것 같다.

Serpentwithfeet | Soil

soil
음반 자켓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이 음반을 구매하게 된 첫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본능적으로 느낀 범상치 않음은 음반을 반복해서 재생시킬수록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뉴욕 출신 음악가 조시아 와이즈(Josiah Wise)가 세크리틀리 캐내디안(Secretly Canadian) 음반사와 손잡고 내놓은 첫번째 음반이자 메이저에서 발표한 첫번째 정규음반 [Soil]은 R&B와 찬송가, 클래식과 소울음악, 전자음악 등이 묘한 분위기로 뒤섞여있다. 전에 경험하지 못한 혼란스러움 속에서 기묘한 질서를 이루고 있는 느낌이다. 진성과 가성을 오가는 와이즈의 보컬은 가스펠 코러스와 어울려 그만의 독특한 아우라를 뽐내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음악은 흑인음악과 클래식이라는 양 극단(?)이 전자음악과 만나 요즘말로 ‘힙’한 색채를 한껏 드러낸다.

조시아 와이즈의 성장배경은 설펀트위드핏(Serpentwithfeet)의 음악세계를 이해하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될 것 같다. 와이즈는 뉴욕의 유복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클래식을 배우기 시작했고, 필라델피아의 음악전문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대학원 입시에서 낙방한 후 빠리와 필라델피아 등을 여행하다 필라델피아의 네오-소울 씬에 정착했고, 2013년 뉴욕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음악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2014년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샘플링하여 자신의 보컬을 입힌 “Curiosity of Other Man”을 발표했는데, 이 곡에는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한 아프리칸-어메리칸 동성애자라는 정체성과 클래식을 전공한 소울 뮤지션이라는 정체성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2015년 설펀트위드핏의 이름으로 발표한 데뷔 EP [Blisters]가 나왔고, 뷰욕(Bjork), 타이 달라 사인(Ty Dolla $ign) 등을 그의 팬으로 만들었다. 어쩌면 그의 데뷔작은 예견된 성공을 담보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음악은 깊은 내적 성찰을 바탕으로 하는 소울 계열 음악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한다. 무대이름인 ‘Serpent with Feet’도 기독교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는 다리 달린 뱀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종교적이다.  그는 거의 모든 노래에서 사회의 통념과 배치되는 자신의 본능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자로 태어나 남자를 사랑하는 가운데 겪은 내적인 갈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자신의 의지를 아름다운 목소리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프랭크 오션(Frank Ocean)과 맞닿아 있는 부분도 발견된다. 와이즈 본인은 자신에게 영감을 주는 예술가로 브랜디(Brandy), 뷰욕(Bjork), 클래식 작곡가 드보르작(Antonin Dvorak), 그리고 소설가인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 등을 꼽았는데, [Soil]을 듣다보면 도저히 하나로 합쳐질 것 같지 않은 위의 예술가들이 설펀트위드핏의 음악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음을 깨닫게 된다. 올해 들었던 가장 신선한 음악이었다.

윤종빈 | 공작

공작 포스터
[용서받지 못한 자] 이후 윤종빈 감독의 작품 중 딱히 마음에 든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그가 본격적으로 블록버스터 영화만 찍기 시작하면서 그에 대한 흥미도 거의 완전히 식어버렸다고 할 수 있고, [군도]나 [범죄와의 전쟁]에서 구시대적이고 남성주의적인 시각이 여전히 발견되는 것을 보고 그가 한계를 극복해나가며 성장하는 감독은 아니구나, 라는 생각만 강해졌다. [공작] 역시 그리 인상깊게 본 영화는 아니다. 여전히 남성중심적인데 심지어 등장하는 배우가 황정민이나 조진웅같은 사람들이다. 내 아버지보다 더 자주 만나게 되는 황정민같은 배우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보며 식상함을 느끼지 않기란 참으로 힘든 일이다. 서사구조 역시 단순하다. 차라리 이 영화로 인해 새롭게 조명받게 된 실존인물의 실제 생애가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이 영화가 가진 미덕을 두 개 쯤 꼽아보라면 하나는 영화적으로 편집이 무척 잘 되어 있어서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화 속 북한사회의 모습을 꽤나 그럴듯 하게, 다른 말로 하면 영화를 보는 일반 관객이 상상하는 그 모습 그대로 잘 형상화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사회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할 방법이 당장은 없다. 그러니 관객이 대충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만 잘 끄집어내어 돈을 처발처발하면 그럴듯한 그림이 나오는 것 같다. 이제 정말 당분간 황정민이 나오는 영화는 보고 싶지 않다.

Natalie Prass | The Future and the Past

natalie prass
올해 날씨가 조금 더워지기 시작한 이후 최근까지 가장 즐겨 들었던 여성 보컬리스트 음반은 단연코 나탈리 프래스(Natalie Prass)의 새 음반 [The Future and the Past]였다. 파이스트(Feist)나 샬롯 갱스부르(Charlotte Gainsbourg)같은 인디 감성의 여성 팝보컬리스트의 음악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취향이라고 불러도 괜찮을 정도다), 이런 일군의 여성 아티스트들의 최근작들을 들으며 성에 차지 않는 아쉬움을 꽤 크게 느꼈다. 올해는 ‘이들도 역시 늙어가는 것인가’라는 슬픔에 빠질 무렵 ‘다음 세대’ 여성 아티스트들이 꽤 많이 등장한 해로 기억될 수도 있을 것 같다. US 걸스(US Girls), 사커 미미(Soccer Mommy), 스네일 메일(Snail Mail)처럼 로-파이 록음악에 기반을 둔 아티스트들의 음악도 정말 좋았지만, 팝에 기반을 둔 나탈리 프래스의 두번째 음반만큼 감성적으로 자극적이고 상쾌한 작품은 올해 아직 없었던 것 같다.

나탈리 프래스는 2015년 동명의 데뷔음반에서 그녀의 배경(남부 버지니아 출신, 멤피스에서 음악을 배우고 제니 루이스(Jenny Lewis)의 투어링 밴드 멤버로 참여한 경력 등등)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미국 남부의 정서를 한껏 드러내고도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을 뿐 아니라 힙하고 트렌디한 팝의 느낌또한 잘 살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한껏 묻어난 수작이었다. 두번째 음반 [The Future and the Past]에서는 보다 담대한 그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이 음반에서 그녀는 트럼프 시대 이후 미국에서 여성이 살아가는 법, 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대해 훅이 넘치는 팝넘버와 위트 있는 가사를 통해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도 훨씬 단단해졌다. 그녀의 목소리는 가볍지만 그래서 더 수월하게 전달될 수 있다. 80년대 디스코와 90년대 시스팝 등을 환기시키는 복고풍의 사운드는 통통 튀는 멜로디와 합쳐져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진다. 익숙한 것들을 섞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훨씬 단단해진 느낌이다. 그녀의 음악적 경력이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는 확신을 갖게 만드는 음반이다.

Kamasi Washington | Heaven and Earth

Kamasi Washington_ Heaven and Earth
카마시 워싱턴의 전작 [The Epic]에서 특히 좋았던 부분은 그가 드뷔시를 해석하는 방식이었다. 드뷔시의 피아노 연주곡을 꽤 많이 좋아하는 편인데, [The Epic]에서 카마시 워싱턴이 연주한 “Clair de Lune”은 최근 들었던 그 어떤 드뷔시 연주보다 따뜻한 온도와 농밀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무려 세 장으로 구성된 이 괴물같은 데뷔 음반을 2015년에 발표한 1981년생의(얼굴로 사람 판단하지 맙시다) LA 출신 재즈 색소포니스트가 3년만에 [Heaven and Earth]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청자의 귀를 조금 고려해주었는지 다행히(?) 두 장짜리 음반이다. 한 장은 “Heaven”, 다른 한 장은 “Earth”에 대한 음악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즈라는 하나의 장르에 가둬둘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장르에 대한 편식없는 소화능력을 이번 음반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준다. 허비 행콕부터 켄드릭 라마까지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와 협연한 경력이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새 음반에서 눈에 띄는 점이라면 음악적으로 조금 더 풍부해졌다는 것이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라는 기본 바탕에 네 명으로 구성된 보컬 그룹과 열 명 남짓한 중창단이 더해졌다. 악기의 수가 늘어난 만큼 이를 통제하는 지휘자의 역할도 중요할텐데, 카마시 워싱턴은 능숙한 솜씨로 이 메인 쉐프의 역할을 단단하게 성취해낸다. 전작에 비해 눈에 띄는 또다른 점이라면 서사의 확장을 들 수 있다. “Heaven”을 지나 “Earth”로 가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워싱턴이 깔아놓은 다양한 풍경들을 어깨 너머로 구경할 수 있다. 가사로 구구절절히 서사를 설명하지 않더라도, 그가 조절하는 음악의 호흡과 리듬만으로 충분한 서사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놀랍다. 압도적이고 황홀한 체험을 지루하지 않게 긴 시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은 단지 재능이 넘치는 뮤지션의 필모그래피에서도 아주 짧은 기간동안만 가능한 빛나는 절정이다. 스포츠 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폼”이라는 단어를 여기에서 사용할 수 있을까. 음악을 스포츠 경기에 비유하자면 요즘 “폼”이 가장 좋은 선수는 카마시 워싱턴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