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sbo | Places We don’t Know

kasbo
스웨덴 출신 전자음악가 칼 가스보(Carl Garsbo)의 스테이지 네임 카스보(Kasbo)가 2018년 발매한 데뷔 음반 [Places We don’t Know]를 반복해서 듣는 와중 머릿속에 계속 떠오른 단 하나의 단어는 ‘chill,’ 혹은 ‘chillout’ 뿐이었다. 결코 흥분하는 법 없이, 하지만 그렇다고 무덤덤하거나 심심하지도 않게 음반 전체를 균일한 온도로 채워나간다는 것이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위키피디아 등을 통해 카스보의 국적을 알아보기 전 이미 진동하는 ‘북유럽 냄새’를 맡으며 이 음악가의 음악적, 생물학적 배경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인데, 음반의 처음부터 끝까지 꽤 괜찮은 훅을 가진 미디움 템포의 깔끔한 팝-일렉트로닉 넘버가 잔뜩 포진해 있어 듣는 내내 귀가 즐거운 편이다. 엄청난 새로움이나 대단한 혁신은 없지만, 패션 핏(Passion Pit)이나 처치스(Chvrches)같은 젊은 전자음악가에 대한 애정이 있거나 이레이저(Erasure), 뉴 오더(New Order) 등의 음악을 좋아한 전력이 있다면 불편함 없이 반갑게 만날 수 있는 음반이다. 이번 데뷔 음반의 첫 싱글 “Aldrig Mer”나 “Over You”같은 곡에서는 카스보가 객원보컬도 능수능란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고, 이 음반에서 개인적인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인 “Snow in Gothenberg”(칼 가스보의 고향이 스웨덴 구텐베르그다) 에서는 상당히 광활한 사운드스케이프를 경험할 수 있다.

김기찬 | 골목안 풍경 전집

골목안풍경전집
한국은 서울에 지배당하고 있다. 그리고 서울은 아파트에 지배당하고 있다. 우리는 서울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큼지막한 콘크리트 덩어리들 중 한줌의 구역을 손에 넣은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와 동시에 서울은 골목 안 풍경 팔이 장사로 돈을 벌고 있다. 아파트에 사는 젊은이들은 골목 안에 숨은 예쁘장한 가게와 이를 둘러싼 풍경을 사랑한다. 하지만 아파트에 사는 그들은 결코 골목 안의 세상에 소속되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서울은 노골적인 위선으로 가득차 있다. 서울은 골목 안을 사랑하는 척 하지만, 정작 그 골목 안의 풍경은 끝끝내 전시의 대상으로서만 취급될 뿐이다. 우리는 결코 아파트 바깥으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다.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곳이 경복궁 뒤로 숨은 효자동 골목과 홍대 번화가 뒤에 자리잡은 연남동의 작은 골목들이라고들 이야기하지만, 반포 자이 아파트와 압구정 현대 아파트의 유혹 앞에서는 모두가 가지런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 서울이다. 공동체 의식은 무너지고 있고, 옛것과 새것 사이에서 서울의 정체성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서울은 몹시 빠르게 변화하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아주 바쁘게 이곳저곳에 아파트를 세우고 있는 중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서울 안에 있는 골목들은 오늘도 쉼 없이 파괴되고 있다. 골목 안 풍경을 사랑하는 듯 위선을 떠는 한편 오늘도 바쁘게 옛 골목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도시가 서울이다. 속절없이 망가져버린 이 거대한 도시에서 콘크리트 한 줌의 은혜를 받으며 벽돌과 시멘트와 유리의 신에게 찬양의 기도를 올리고 있는 우리들은 골목 안 풍경에 대해 과연 무엇이든 이야기할 자격이 있을까.

김기찬의 사진집 [골목안 풍경 전집]은 1970년대부터 90년대 말까지 존재했던 서울의 중림동과 도화동, 만리동과 천호동 일대의 ‘골목’안 풍경을 담고 있다. 그곳에 빼곡히 자리잡았던 달동네 다세대 주택과 그들의 핏줄과도 같았던 골목길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고, 지금은 평당 가격이 2천만원을 넘기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그 공간을 차지하고 앉아있다. 김기찬의 사진들은 서울의 소중한 유산이었지만 아무도 보존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골목길의 풍경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는 기록사진으로서의 가치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70년대부터 꾸준히 한 동네를 드나들던 한 사진가가 그곳에 살던 주민들과 나누었던 미묘한 ‘거리’의 유지에 있다. 사진은 때론 덤덤하게, 때론 친근하게 그곳에 살던 주민들을 비춘다. 주민들 역시 카메라의 존재를 굳이 신경쓰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렌즈에 눈을 맞추며 미소를 지어보인다. 허우샤오시엔의 영화 [빨간 풍선]에서 빠리의 이곳저곳을 떠돌던 풍선의 시선처럼, 김기찬의 시선은 자유롭게 골목 안 여기저기를 배회한다. 그 골목길이 재개발이란 명목하에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그라고 알지 못했을까. 사진가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짐짓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골목길을 유랑한다. 멸종해가는 골목길에 대한 절박함을 알면서도 일부러 딴전을 피우듯, 그렇게 공기처럼 골목 안으로 흘러들어갔다가 기척도 없이 빠져나온다. 이 전집이 유독 짜릿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골목안 풍경 전집]은 중림동과 도화동 등 작가가 찾았던 공간들이 재개발로 사라진 뒤, 작가가 그곳에 살던 이들을 수소문해 다시 찾아 찍은 사진들에서 다른 차원으로 승화한다. 아랫도리를 벗어재낀 채 골목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던 7살 꼬마는 청년이 되어 늙어버린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쪽방에서 몸을 반쯤 겹친 채 누워 자던 여섯 형제들은 무사히 성인이 되어 같은 동네에 오손 도손 모여살며 다음 세대를 키우고 있었다. 골목은 사라지고 공간은 잊혀져도,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계속 살아남아 생을 지속한다. 서울은 끊임없이 옛공간을 파괴하고 역사도 없고 맥락도 없는 새로운 건물들을 쌓아 올리는데 열중하고 있지만, 파괴된 옛공간에 살던 사람들은 그 공간을 마음으로 기억하며 다음 세대로 전이한다. 지금 그나마 남아있는 서울의 옛 골목들에는 젊은 소규모 자본가들이 들어와 서울의 옛모습과 미국의 힙스터 문화를 적절히 섞어 만들어낸 ‘흉내’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 (물론, 지방은 그런 서울의 모습을 한번 더 ‘흉내’내며 문화적으로 기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래 역시 한국에선 서울이 최고다!”라는 쓴 농담을 할 수밖에 없다) 문화적으로도 배척받고 경제적으로도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7,80년대 골목 안 풍경은 그렇게 기억 속에서만 살아남도록 강요받고 있다. 김기찬의 사진집은 이런 이유에서든, 혹은 저런 이유에서든 소중하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Mount Eerie | A Crow Looked at Me

eerie
“예술가는 불행할 때 최고의 작품을 내놓는다”는 속설은 가끔 너무 잔인하게 다가온다. 일개 청자에 불과한 우리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던질 때 따라오는 책임감은 먼지처럼 가볍지만, 정작 이 명제가 현실이 되어 눈앞에 펼쳐지게 되면 아찔하고 서늘한 죄책감을 무겁게 느끼게 된다. 워싱턴 주 출신 필 엘버룸(Phil Elverum)의 1인 프로젝트 마운트 에리(Mount Eerie)의 2017년 작품 [A Crow Looked at Me]는 예술가 개인의 불행이 처절하게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음반이다.

필 엘버룸의 아내 제네비에브 고셀린(Genevieve Gosselin)은 2015년 췌장암 진단을 받는다. 은둔형 뮤지션으로 평생을 살았던 이 부부가 2016년 공개적으로 GoFundMe 페이지를 통해 병원비 모금활동에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이들이 절박한 곳까지 몰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병원비는 바닥났고,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다 고셀린은 2016년 여름 세상을 떠난다. 남겨진 엘버룸의 품에는 어린 딸이 안겨져 있었다. 그로부터 약 반년 뒤 [A Crow Looked at Me]가 발매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매체에서 완벽에 가까운 평을 받으며 그 해의 음반으로 기록된다.

그래서, 마운트 에리는 행복해졌을까?

[A Crow Looked at Me]는 나지막한 울부짖음으로 가득하다. 이 음반을 여는 첫번째 노래 “Real Death”는 반주조차 없이 “Death is real”이라는 엘버룸의 건조한 목소리로 시작하여 (차마 노래라고 할 수조차 없는 울먹거림으로) “I love you”라고 말하며 끝맺는다. 바로 이어지는 두번째 노래 “Seaweed”에서는 “우리에겐 1년 6개월 된 딸이 있어. 당신이 죽은지 이제 11일이 되었네”라는 가사를 무심하게 내뱉는다. 음반의 가사는 엘버룸 개인이 겪은 실제적 고통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수필에 가깝다. 통기타만이 외롭게 떠받치는 그의 목소리는 말하는 것인지,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혹은 울먹이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가라앉아 있다. 대중음악의 영역에서 이정도 수준의 실제적 고통의 기록을 청자의 입장에서 ‘즐긴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물론, 데이비드 벤의 [자살의 전설]처럼 사적 경험을 비틀어 예술의 영역에서 풀어놓는 방식 자체가 생소한 것은 아니다. 다만, 폴 엘버룸이 이 음반에서 보여주는 감정의 폭이 지나치게 사적이고 또 지나치게 깊다보니 이것을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작품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버거울 뿐이다.

폴 엘버룸의 몸부림은 이 음반 이후 이어진 [Now Only]에서 계속된다. 예술가 개인의 불행을 통해 대중음악계가 또 한 장의 명반을 건진 것이 과연 사회적으로 좋은 현상인 것인가, 고민해보게 된다.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 변방의 사운드: 모더니티와 아시안 팝의 전개 1960~2000

변방의사운드
신현준 교수가 진행하는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 프로젝트를 좋아하고, 또 지지하는 편이다. 그가 청년 시절 쓴 [얼트문화와 록 음악] 등의 책을 읽으며 십대시절을 보냈으니 어쩌면 나의 지지성향은 자연스러운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편애를 탄생시킨 보다 중요한 이유는 그가 진행한 프로젝트가 갖는 사회적 가치, 혹은 시의성에 기인한다. 그는 미국 대중음악의 한 조류를 실시간으로 분석한 거의 최초의 평론가였고([얼트문화와 록 음악]), 힙스터 문화의 일부분 정도로 취급될 수 있었던 6,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으며([한국 팝의 고고학] 시리즈), 음악의 범주를 벗어나 문화적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한 시도([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를 하기도 했다. 즉, 그는 문화적 주체성이라던가 문화와 사회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무형의 가치에 주목하여 이러한 가치가 갖는 동시대성에 대해 꾸준히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가 속한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가 기획하고 펴낸 [변방의 사운드: 모더니티와 아시안 팝의 전개 1960~2000]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한 책이다.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대중음악이 어떻게 출발했고 또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한 눈에 조망해보자는 것이 이 책의 출판목적이라면, 단 한 권의 책에 그 방대한 역사를 균일하고 정밀하게 담아낼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 역시 기획 단계에서부터 충분히 예상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대중음악이라는 거대한 하나의 산업은 하나의 국가 내에서도 그 층위가 촘촘하게 나뉘어지기 마련이고, 국가별 저자의 시각 및 성향에 따라 선별적이고 편파적인 기술이 얼마든지 가능한 글쓰기 환경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언더그라운드 문화에만 집중하여 대안적인 사운드의 진화과정만 기술할 수 있고, 또 다른 이는 정치, 사회적 분위기가 대중음악 산업에 미친 전반적인 영향을 고려하여 글을 쓸 수도 있다. 이러한 한계를 충분히 인지한다면 이 책의 시도 자체가 그리 어리석어 보이지 않는다. 아시아를 “변방”으로 규정하며 시작한 이 모음집은 아시아 국가들이 서구사회의 팝 문화로부터 받은 지대한 영향을 부정하지도 않고,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겪은 냉전과 독재라는 어두운 사회분위기가 미친 절대적인 영향력을 과소평가하지도 않는다. 동시대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거울과 같은 성질이 대중음악이라는 상품이 갖는 본질 중 하나라면, 이 기획에 참여한 저자들은 그러한 본질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데에 인색함이 없다.

일본과 중국이라는 ‘큰’ 나라들이 음악산업에 있어서도 상대적으로 더 많은 주체성을 담보할 수 있었다는 점이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흥미로운 지점인데, 어쩌면 정치 및 경제 면에서 드러나는 ‘덩치’가 개별적인 문화산업의 발전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심증을 확보한 셈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거 제조업 등에 기반하여 선진국을 ‘캐치업’하는 것이 경제적 필살기였던 이 나라는, 음악산업에 있어서도 이러한 캐치업 효과를 극단적인 차원에서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이돌 문화를 연구하는 많은 이들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현재 케이팝의 전세계적 성공이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 즉 ‘2등 중 최고의 2등이 되자’는 정서에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이 나라는 혁신과 같은 창의성이 완전히 부재한 상태에서 외부로부터 주어진 ‘1등’의 모범적 사례를 비틀거나 발전시켜 나가며 경쟁력을 확보하는 틈새전략으로 생존해온 나라다. (예를 들어 서울을 보라. 이 곳에는 정말 맛있는 음식들이 많지만, 그 중 그 어떤 음식도 ‘서울만의’ 음식은 아니다) 아이돌 문화, 혹은 케이팝 컨텐츠도 이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 흥미로운 것은 ‘1등’마저도 결국 이 아름답고 완벽한 ‘2등’에 홀딱 빠져버렸다는 역설이지만.

조교수, 한 달

지난 3월 1일자로 임용되었으니 새로운 직장에 출근하기 시작한지 이제 막 한 달을 채웠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순간에도 내 이름 앞(혹은 뒤)에 붙는 교수라는 수식어가 몹시 어색하여 실실 웃음이 나오고 있지만, 현실은 방금전에도 강의 하나를 막 마치고 나온 엄연한 교원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 있는 회사들을 다닐 때에는 떠올리지 않았던 것들을 요즘 많이 생각한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길래 여기까지 왔고, 또 여기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인생에 대한 심오한 고민 따위로서의 생각이 아니라, 그냥 정말 너무 궁금하기 때문에 자꾸 떠오른다. 왜 이렇게 됐지? 왜 여기까지 왔지? 이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만큼 서울에서의 삶과 이 곳에서의 삶 사이에 흐르는 간극이 무척 크게 느껴지나보다.

대학원생 시절에도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서 ‘조교수의 삶’은 희화화의 대상이자 연민의 대상이었다. 대학원생보다 일찍 출근하여 대학원생보다 늦게 퇴근하는 젊은 조교수들의 모습을 보며 ‘참 열심히 일하시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지, 그들을 강의실이나 연구실에서의 교수가 아닌 일상 속에서 한 가정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으로 바라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내가 그들과 비슷한 삶을 잠깐이나마 살아보니, 강의실과 연구실 안과 밖의 균형을 절묘하게 조절해 나가야 하는 생각보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의 숙제를 받아들게 되었다. 연고가 전혀 없는 곳으로 오는 바람에 흡사 외국에 다니 나온 것과 같은 기분을 가끔 느끼기도 하지만, 이번에는 가족과 함께, 밥벌이 수단으로 왔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당장 살 집을 구하는 단기적인 문제부터 새로운 지역사회에 정착하는 조금 더 긴 호흡의 숙제까지 처리해나가느라 지난 한 달여의 시간동안 연구실과 강의실 밖에서 오히려 더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여기에 더해, 학생 신분으로는 자세히 알기 힘든 교원으로서의 다양한 고충과 고난이 조교수라는 특정 직위에 상대적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최근 이 직업을 새롭게 시작하며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평등하고 독립적인 교원 간 관계는 개별 교원에게 주어지는 책임의 무게를 타인에게 양도할 빈틈도 그만큼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에게 주어진 책임의 양은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신입 직원’에게 주어지는 혜택같은 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다. 특히 교육 부문에 있어, 실수해도 괜찮아, 신입이니까, 와 같은 너그러움을 학생들에게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은 당장 오늘을 살아내야 하는 존재들이고, 나는 그들에게 최선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 뿐이었다. 지금도 내가 잘 모르는데 감히 누구를 가르치나, 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죄스러움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새벽 늦게까지 강의준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대학의 전임교원이라는 직업이 주는 다양한 형태의 매력을 음미할 여유는 아직까지 주어지지 않았다. 이 ‘매력’에는 일반적으로 익히 알려진 출퇴근 시간의 자유, 방학이 주는 여유로움, 조직 내에서 절대 복종해야하는 절대적인 ‘갑’의 부재 등이 해당된다. 나도 학교에 임용되기 전 이러한 환상에 빠져 잔뜩 기대를 부풀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 사람, 저 모임, 그리고 다시 이 업무에 불려다니는 와중에 매주 새로운 강의노트를 만들고 수업준비를 해야 하는 하루살이와 같은 삶에 허덕이며 지난 한 달을 보냈다. 논문은 아직 한 편도 읽지 못했다. 게으르게 보내기로 마음 먹는다면 한없이 게을러질 수 있는 직업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어렴풋하게 들었지만, 나의 경우 아마도 은퇴하기 전까지 게으르게 살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운명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힘든 한 달이었지만, 즐겁고 행복한 한 달이기도 했다. 이 곳에서, 이 직업으로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에 대한 답은 (당연히) 찾지 못했지만, 최소한 서울에 있는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는 것을 보면 지금 현재의 삶이 조금 더 나아진 것만큼은 확실하다. 강의 실력이 앞으로 조금씩이나마 나아져 학생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줄어들고, 그 와중에 조금씩 시간을 더 잘 활용하게 되어 논문을 계속 써나갈 수 있게 된다면, 그래서 남은 시간을 오롯이 가족에게 할애할 수만 있다면, 그 지점부터 내 삶이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어슴프레한 희망을 가져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루카 구아다니노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callme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캐롤]과 [문라이트]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준을 충족시키는 영화다. 유명한 소설이나 희곡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 주인공들이 동성의 대상을 사랑한다는 점, 뛰아름다운 음악과 영상이 함께 한다는 점, 무엇보다 감독의 엄청난 연출력과 그 연출력에 주눅들지 않는 뛰어난 연기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점 등에서 여러모로 이 세 작품은 같은 선상, 혹은 비슷한 수준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세 영화가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은 본질적인 이유는 아마도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집중도가 남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캐롤]에서는 사회적 계급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두 여성의 절박한 마음이 유리창, 어깨너머의 시선 등의 장면으로 표현된 단절의 정서를 통해 절절하게 형상화되었고, [문라이트]에서는 하위 계급 흑인 동성애자 남성이 맞닥뜨린 바닥까지 내려가버린 가난한 마음을 새파랗게 질린 어슴프레한 하늘의 모습이 완벽한 상징체로 기능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주인공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은 남부 이탈리아의 한여름 풍경이다. 기분 좋게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과 느긋한 안식처를 제공해주는 울창한 나무, 한낮의 더위를 식히는 쉼터이자 고단한 짝사랑의 무게를 잠시나마 씻겨내주는 강과 호수, 그리고 코끝을 간지럽히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들어오는 별장침대. 이 모든 것이 영화의 주인공 그 자체가 되어 첫사랑의 마음을 형상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음악이 있다.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와 류이치 사카모토(Sakamoto Ryuichi) 등이 참여한 영화음악은 경쾌한 클래식 넘버들과 어우러져 주인공의 넘실대는 마음을 날것 그대로 표현한다. 아마도 이 영화가 대단히 관능적으로 느껴진다면, 그 배경에는 분명 영화의 풍경과 음악의 자리가 크게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관능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주인공 엘리오와 올리버를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Timothée Chalamet)와  아미 해머(Armie Hammer)의 존재다. 티모시 샬라메는 첫사랑의 떨리는 마음 그 자체가 되어 현현하고, 아미 해머는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날 수 없는 괴로움과 결코 잊지 못할 상대를 만난 황홀함을 절제된 표정으로 잘 표현해냈다. 화면과 음악, 연기와 연출력 모두 나무랄데 없지만, 이와 비교해 조금 심심하다고 느껴졌던 서사구조 역시 마지막 즈음에 이르러 기어코 구원받는다. 주인공의 마음을 처음부터 헤아리고 있던 부모가 그들의 사랑을 사려깊게 배려하는 장면을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이 영화는 조금 다른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보수적인 고고학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은 가톨릭 중심의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유태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관습을 따라야만 하는 올리버와 달리 엘리오는 부모의 따뜻한 품 안에서 첫사랑의 상처를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둥지를 발견한다. 모닥불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엘리오를 옆에 두고 묵묵히 식사 준비를 하는 가족의 모습을 블러 처리하여 보여주는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그래서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첫사랑의 달뜬 마음부터 고통스러운 이별의 아픔,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기꺼이 껴안아주는 성숙한 어른의 세계를 균형감 있는 매혹적인 시선으로 보여준다. 

이명박의 구속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영장이 집행되는 과정을 많은이들이 생방송으로 지켜보았다. 페이스북에는 구속을 기념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도 보였고, 인터넷 상에서도 많은 이들이 기쁨을 표현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가 최종심에서 충분한 수준의 형을 선고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수사를 받게 된 것은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판단된 범죄혐의를 그가 적극적으로 부인하였고, 때문에 증거인멸 등에 대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구속수사는 불구속수사에 비해 수사의 용이성과 편의성이 조금 더 있을 뿐 법리적으로 그리 큰 의미를 가지는 형태의 수사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피의자가 영어의 몸이 되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즉 일종의 전시효과가 있기 때문에 최근 대형 범죄의 경우 대부분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추세를 보이는 것 같다. 즉, 검찰은 일반 시민들이 시각적으로 느끼며 만족하는 ‘형벌’의 모습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마치 피의자가 이미 어느정도 심판을 받은 듯한 모습을 전시함으로써 향후 재판 과정에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어가고자 하는 비법리적 전략이 깔려있다고 본다.

이러한 전략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조사에서도 명백히 드러난 바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포토라인 앞에 선 모습 자체에서 치욕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검찰과 당시 정권에 대해 그러한 악감정을 가졌던 사람들 중 대부분이 이번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수사 방침에 환호성을 질렀다. 수사의 공정성과 정권의 정치적 목적, 사회정의와 같은 비법리적 요인들이 사람의 감정에 작용하는 과정 전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연 이 사람들이 이 두 경우에 공정한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나는 대중의 이러한 심리에 복수심과 처벌에 대한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구속 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집단의 기쁨의 표현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권과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강요당했다는 믿음 아래, 이러한 ‘비극’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앙갚음해주겠다는 복수심이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그 복수심이 육체적인 형벌과 처벌로부터 시작한다는 근대적인 사고관에 기인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푸코가 여러차례 지적했듯, 현대사회에서의 처벌과 형벌은 육체에 대한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는 단계를 벗어나 사회로부터의 격리를 통한 사회 안전망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잠재적 범죄자를 가둠으로써 사회를 안전하게 지킬수만 있다면 그 범죄자에게 따뜻한 밥을 제공하든 텔레비전을 틀어주든 사실 크게 상관할바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구치소나 교도소의 ‘호화로움’에 대한 비판이 유독 한국사회에서 강하게 제기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사회의 처벌에 대한 개념이 아직 근대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게 된다.

물론, 거액의 돈을 탈루하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 혐의를 강하게 받고 있는 전직 대통령이 구속수사를 받는 모습을 전시함으로써 사회의 경각심을 일깨우고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주장에는 적극 동의한다. 이것이 또다른 전쟁의 시작으로 기록될지 여부는 그쪽 진영 사람들의 울분이 어느 정도 수준일지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최소한 나는 이번 수사가 사회질서를 확립하는 데에 좋은 기여를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명박을 싫어한다. 그리고 그가 드디어 범죄혐의에 대한 수사를 받게 되어 매우 고무적으로 생각한다. 그가 대통령이 되던 시절 그에 대한 주변 친구들의 맹목적인 지지를 똑똑히 기억한다. 당시 이해할 수 없었던 광풍의 크기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친구들 중 일부는 지금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고, 다른 일부는 적극적으로 ‘전향’하기도 했다. 돈에 대한 욕망이 집단적으로 합치되어 가장 저열한 형태로 발현된 상징체가 바로 이명박이다. 이 사회에 속한 우리 시민 모두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있다. 그를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수사는 그 책임의 시작일 뿐, 아직 그 어떠한 기쁨도 표출한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도 복수를 하고 싶다. 하지만 복수의 방식은 그들과 달라야 한다.

#MeToo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엉겹결에 반장을 맡게 되었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가 있을 당시 특목고의 고3 생활은 단조로운 자율학습의 연속이었다. 대부분의 수업은 취소되었고, 아이들은 수능공부에만 매진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반장이라고 해봤자 거창한 임무를 부여받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나의 주된 임무는 자율학습 시간에 떠드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는 일 정도였다. 수능을 앞둔 상태에서 모두가 예민했고, 자그마한 속삭임조차 거슬려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 역시 수험생 중 한명으로 앞가림하느라 바빴기에 일을 크게 벌이지 않고 조용한 학업 분위기를 지속시키는 것에만 신경을 썼다. 야간 자율학습을 하던 어느날 밤 담임교사에게 입시상담을 받으러 갔던 여자 아이들이 울면서 교실로 돌아오던 그날까지는 그렇게 평범한 일상이 반복됐다.

그날 밤, 담임교사에게 불려갔던 여자아이들 중 일부가 교실로 돌아와 울음을 터뜨렸고, 다른 여자아이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위로를 해주는 모습을 목격했다. 여자 아이들을 붙잡고 이것 저것 캐물었다. 그 중 나와 가장 친했던 아이 한명이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반장이니까 알려달라’는 대의명분에 몇가지 사건이 발생했음을 이야기해주었다. 어떤 여자 아이는 교사가 자신의 무릎에 앉으라고 명령했다고 했다. 다른 여자아이는 교사가 자신의 귓볼을 만졌다고 했다. 다른 여자아이는 가슴에 부착된 명찰을 똑바로 해준다며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댔다고 했다. 충격적이었다.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도 욕이 터져나왔다.

그날부터 교실은 난장판이 됐다. 나는 ‘반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고, 정식으로 항의하는 절차를 밟았다. 물론 일개 학생이었던 나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 어머니를 비롯해 피해자의 어머니들을 중심으로 공론화시켰다. 이후 꽤 오랫동안 수업에 거의 들어가지 못했다. 교장에게, 교감에게, 각종 보직 교사들에게 불려다니며 협박을 당했다. 가해 담임교사의 동료 교사들은 우리반에서 수업하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스승의 은혜를 모른다며, 어린 것들이 뭘 알겠냐며 혀를 끌끌 차고는 우리를 무시했다. 아이들의 서명을 받고 투표를 진행했다. 그 와중에 수능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일을 이렇게까지 크게 만들어야 하냐는 항의가 아이들 사이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 의견을 가장 먼저 낸 사람은 여자아이였다. 자신은 무관한데 왜 반 전체가 피해를 받아야 하냐는 문제제기였다. 학교측에서는 담임교사가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것 정도로 마무리짓자고 제안해왔다. 더이상 안되겠다 싶어 아버지들이 나서기로 했다. 방송국 간부도 있었고, 신문사 기자도 있었다. 결국 외부로 이 사건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학교측이 담임교사의 교체를 받아들였고, 그 담임교사는 같은 재단 내 남자학교로 보내졌다. 이후 그 교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전해듣지 못했다.

이상이 내 인생에서 최초로 겪은 성폭력 사건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어린 시절 동네 할머니들이 “꼬추 한번 보자”고 추근덕거리는 것이 일상이긴 했지만, 그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같다) 이 사건은 현재 진행중인 #MeToo 움직임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공기를 축약해서 보여주는 하나의 일화다. 권력관계의 우위를 점한 남성이 열위에 있는 다수의 여성을 압력을 행사하여 추행했고, 이 사건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 결국 더 강한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성집단이 나서는 단계에서 해결되었다. 피해자 여성 다수는 이 사건이 퍼져 나가는 것 자체를 원치 않았고, 그 중 상당수가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극도의 수치심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이 사건에 의해 불필요한 피해를 받는다고 생각한 ‘방관자’들의 냉소적인 시선까지 견뎌야 했다. 구성원 중 다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피해자를 위한 서명을 모을 때에도 왜 자신의 이름을 포함시켜야 하냐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나는 이 사건 이후 거의 모든 종류의 권력에 대해 어떤 혐오같은 것이 생겼다. 아마 그 전부터 내재적으로 자리잡고 있었겠지만, 이 사건 이후 조금 더 노골적으로 권력과 그 권력이 탄생시킨 부조리한 관계 전부를 싫어하기 시작한 것 같다. 나보다 덩치가 큰 상대가 힘을 과시하려고 할 때 괜히 개기고 싶은 마음이 더 세진 셈이다. 그래서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학생회에서 실시했던 근거 없는 농활 동원에도 빠졌고, 군대에서 상관의 부당한 지시에 항의하다 거의 죽도록 맞을뻔 하기도 했다. 심지어 최근 세금을 전용하려는 상관의 지시를 따를 수 없다는 이유로 회사를 나오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나의 어줍잖은 ‘반골기질’은 각종 사회현상에도 투영될 때가 많은데, 대표적인 경우가 다수자에 의한,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목격할 때이다.

장애인, 성적소수자, 그리고 여성. 우리 사회가 가장 노골적으로 타자화시키고 매몰시켜 버리는 존재들이다. 그 중에서도 여성은 사회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사회적 소수자 집단이자 남성을 중심으로 공고하게 구조화된, 그래서 아예 일상이 되어버린 차별과 폭력에 만성적으로 노출된 집단이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성폭력, 혹은 성추행이라고 불리우는 다양한 형태의 성적 학대 행위는 남성이 여성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저열한 형태의 차별이자 폭력 행위다. 아마도 우리나라 사회 구조에서 대부분의 남성은 최소한 한 명 이상의 여성보다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거나 더 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회사까지, 심지어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안에서까지, 한국사회에서 남성은 여성에게 권력 구조에서 우위를 갖기 매우 쉬운 것이 현실이다. 때문에 남녀 간 발생하는 대부분의 성적 학대 행위는 권력에 의한 압력행사를 통해 이루어질 확률이 대단히 높다. 논리적으로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 현실에서 대부분 그렇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평범한 삶’을 살아온, 즉 여성이 남성에게 억압당하는 광경을 목격할 기회를 (어떤 이유에서든) 갖지 못하고 살아온 대부분의 남성들이 결코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남성들이 왜 그렇게 ‘어두워졌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만 하다) 그래서 [82년생 김지영]은 픽션의 영역에서 여성에 대한 만성화된 차별이 여성의 일생 전체에 걸쳐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알린 시대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문학적 완성도를 논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나 퍽퍽한 삶이 여성에게는 평생에 걸쳐 일어난다, 라는 사실을 좀 알아라, 라고 선언하는 듯한 책이었다. 노회찬 의원같은 진보세력의 리더조차 이 책을 읽고 새롭게 깨달은 내용이 있다고 할 정도다.

‘평범한’ 남성, 즉 ‘평범한’ 여성이 일상적으로 당하는 차별을 적극적으로 체감하지 못하고 살아온 남성에게 이러한 현실을 일깨우는 작업이 과연 ‘계몽’의 영역일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계몽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 것이며, 계몽의 방법론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도출되어야 하는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반대로 많은 남성들이 ‘미투 운동’의 변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남녀차별은 당연히 추방되어야 하지만, 요즘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이다. 혹은, #MeToo의 탈을 뒤집어쓴 “가짜” 페미니즘이 사회적 아젠다를 주도하는 이데올로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선구적으로 여성 차별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JTBC의 뉴스룸에 출연한 한 여성 운동가가 저지른 위선적 행위를 비판하는 것이 대표적인 반론의 한 예다. 워마드나 메갈리아와 같은 페미니즘에 기반한 커뮤니티가 일베와 다를바 없다고 이야기하며 페미니즘 운동 전체가 폭력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혹은 현 여권 정치인에 집중되고 있는 성폭력 폭로 행위가 “공작”이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남성 대 여성의 편가르기가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다. 물론, 현재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페미니즘은 결코 완벽하지 않으며 크고 작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여성은 남성만큼이나 멍청하다) 어떤 경우에는 여성들에게 페미니즘이 학문의 영역이 아닌 종교의 영역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연구와 사색보다는 운동과 궐기의 형태로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발현되는 것을 걱정스럽게 보는 시각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위의 모든 주장과 걱정이 사실로 밝혀진다고 해도, 본질적으로 변하는 것은 없다. 아직 갈 길이 멀고, 지금 이것도 많이 부족하다. 얄팍한 권력관계를 이용해서 개인의 욕망을 해소해보겠다는 원시적인 생각은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부조리한 가부장적 유교문화의 핵심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한국에 살면서 단 한번도 여성이 남성과 진정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존재한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 지금 이 핵심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MeToo 움직임은 망가진 시스템을 수리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그 어떠한 예외도 없이, 권력의 우위에 선 자가 압력 혹은 위력을 행사하여 부조리한 행위를 해서는 안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회규칙이 이번 기회에 정립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결과론적인 평등이 아닌, 처음부터 정해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억압적 차별도 아닌, 특정 사회적 집단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정치적 구호가 아닌, 그저 남자는 남자로서, 여자는 여자로서, 그리고 제3의 성은 그 자체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공기를 형성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의 임금수준을 동일하게 맞추는 식의 어리석은 결과론적 평등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이 식사를 따로 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유치한 펜스룰의 확산이 아니라, 성별에 관계없이 그 누구라도 자신의 가치를 추구함에 있어 성적인 차이에 의해 차별을 받지 아니하는 자연스러운 환경을 형성하는 것이 기본이다. 아마도 이것은 계몽의 영역이 아닌 반성의 영역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남성은 남성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역사적으로 여성이 억눌리며 살아오게 만든 사회적 불균등성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남의 탓을 하기 전에 자신이 혹여나 방관자였는지, 가해자였는지, 혹은 피해자였음에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는지, 한번 살펴보는 것이 먼저가 되어야 한다. 비뚤어진 권력관계가 낳은 부조리를 해결하는 방식이 더 높은 권력으로부터의 하향식 처벌이 되어서는 안된다. 애초에 권력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가 공정했다면, 권력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의 빈도도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필립 글래스 | 음악 없는 말

필립글래스
필립 글래스의 자서전 [음악 없는 말]을 읽다 보면 패티 스미스의 자서전 [저스트 키즈]를 떠올리며 비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970년대 이후 뉴욕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공유하는 이 두 뮤지션이 뉴욕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음악가로 자리매김했을 뿐 아니라 현대 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기 거대한 인물이 되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지만, 전업음악가로 살게 되기 전까지, 즉 공인으로서의 삶을 살기 전까지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기록에서 미묘한 호흡, 혹은 자세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글래스와 스미스 모두 가난한 젊은 시절을 견디며 음악가로의 꿈을 놓지 않았지만, 스미스의 경우 특유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통해 가난이라는 삶의 밑바닥을 스프링처럼 한단계 위로 도약하는 계기로 삼은 반면, 글래스는 음악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생계유지 수단으로 가난을 기꺼이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두 뮤지션의 삶의 궤적이 달라지는 변곡점을 발견할 수 있다.

글래스의 삶이 인상적인 것은, 매순간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했다는 점이다.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시작한 막노동일은 나디아 불랑제와 라비 샹카르라는 두 스승을 사사하는 과정을 지나 뉴욕에서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또 돈이 되지 않는 작곡일을 하는 음악가로서 삶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속된다. 음악가가 흔히 가질 법한 과잉된 자의식은 최소한 500쪽이 넘는 글래스의 자서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밤 늦게까지 택시운전을 하고 새벽에 작곡을 하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는 그의 중년의 일상은, 꼭 필요한 가구만이 존재했던 그의 집처럼, 혹은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보는 듯한 그 당시 글래스의 미니멀한 작풍처럼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조용하지만 맹렬하게 달려간다. 마치 꼭 필요한 최소한의 근육만을 남긴채 모조리 포기한 마라토너의 깡마른, 하지만 단단한 몸을 보는 것과 같은 삶이다. 책에 등장하는 당시 뉴욕을 주름 잡던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도 글래스는 지나치게 겸손하지 않은, 하지만 지나치게 자만하지도 않은 자세를 유지하며 그들로부터 끊임없이 에너지를 주입받고 가르침을 청한다. 그렇게 하나의 작품을 올리기 위해 몇 년을 고생하지만 남는 것은 얄팍한 명성과 결코 가볍지 않은 빚더미 뿐. 수많은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음악가로서의 삶 자체에 감사하며 천천히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글래스의 삶이 숭고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역설적으로 그가 다른 많은 이들과 비슷한 일생을 살아온 평범한 인간으로 받아들여질 때이다. 일상의 매순간을 충실히 살아가면서도 음표 하나, 화음 하나에도 깊은 사유의 끈을 놓지 않고 고민하며 수십년을 살다보면 결국 언젠가 전세계가 인정하는 거장이 된다는 진리를, 글래스는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와 과장법을 동원하지 않고 그저 담담히 자신이 걸어온 길을 기술하는 것만으로 증명하고 있다. 자신의 삶 자체가 하나의 증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참 멋진 일인 것 같다.

조쉬 & 베니 사프디 | 굿타임

Good-Time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굿타임]을 동생을 사랑한 형의 좌충우돌 모험기로 읽어내려간다고 해도 그 자체로 크게 무리없이 완결된 서사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라면, 이 영화는 무척 심심하고 엉성한 작품으로 기억되어야만 한다. 형 코니가 맞닥뜨리는 상황들은 논리적으로 무리가 따르는 연결고리로 이어진다. 코니와 동생 닉이 타고가던 택시에서 갑자기 분홍색 가루가 터지는 순간부터 이 비논리적 연결고리를 이해해야 했다. 영화는 두 형제가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채 경찰에 쫓기게 되는 이 결정적 사건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코니가 왜 유태인에게 돈을 맡겨야 하는지, 왜 그에게 압박을 받아야 하는지, 그래서 왜 병원으로 잡입하여 동생을 몰래 꺼내려는 시도를 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설명해주지 않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까지 영화는 늘 이런 식으로 상냥하지 않게 군다. 그래서 동생 닉을 위기에서 구해내기 위해 형 코니가 뉴욕의 어두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다 해가 뜨고 사건은 종료된다, 라는 서사구조는 심심하고 불완전해 보인다. 흔들리는 카메라와 가슴을 때리는 전자음악 등 감각적인 요소들만으로 이 영화를 설명하기에도 뒷맛이 개운치 않다.

하지만 평론가 정성일이 주장한 바대로 동생 닉의 머릿속에서 벌어진 꿈, 혹은 상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오는 시점은 영화가 시작되고 한참 뒤, 닉과 코니가 경찰에 의해 강제적으로 헤어진 뒤부터다. 영화는 코니와 닉이 분리된 시점부터 어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암시를 적극적으로 건네고 있다. 닉이 구치소에서 싸움에 휘말려 정신을 잃은 시점부터 형 코니의 모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코니가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취한다. 연인관계였던 코리는 중년의 여인이지만 엄마에게서 독립하지 못했고 아이처럼 울거나 보챈다. 코니를 집으로 들이고 방까지 내어주는 흑인 할머니, 집에 있는 염색약을 마음대로 쓰는 코니를 따라다니며 그에게 자동차 키까지 내어주는 손녀딸 크리스탈 모두 이유없는 친절함을 베푼다. 특히 열여섯 소녀인 크리스탈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일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는 어른스러움을 보여준다. 이 역시 비정상적이다. 닉인줄 알고 병원에서 몰래 데리고 나온 얼치기 죄수 레이와 그의 동료 칼리프 역시 코니에게 큰 위협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마약의 위치까지 공유하며 코니로 하여금 동생을 빼내오기 위해 돈을 모으려는 노력을 하게끔 만든다. 즉, 이 모든 주요 등장인물은 형 코니가 어떤 정해진 운명으로 나아가게끔 도와주는 조력자들로 기능할 뿐, 코니의 존재나 코니의 목적을 위협하는 방해요소가 되지 못하는 셈이다. 레이와 함께 훔친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장면부터 영화는 그들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모습을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데, 이건 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흔히 보는 탈주자를 비추는 경찰의 카메라 앵글과 흡사하다. 즉 자신은 병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현실을 충분히 인지한 닉의 마음 속에서 형의 영웅적인 노력은 결국 경찰에 의해 저지당할 것이라는 결말이 미리 정해져있던 셈이다. 이 외에도, ‘코니는 닉의 꿈’이라는 가설 안에서,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친절하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동생 닉의 모습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서 닉은 정신병원의 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질의응답을 소화해야 한다. 널리 알려진 문장을 듣고 그 의미를 추리하거나 두 단어 간 관계를 연상하는 등의 간단한 활동이었지만, 닉은 잘 대답하지 못하거나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 얼핏 이해하기 힘든 닉의 이런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영화의 라스트 씬에서 보다 분명해진다. 닉은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고, 정신과 의사는 “코니는 코니대로 옳은 일을 했다”며 닉을 위로한다. 닉은 다른 환자들에 둘러싸여 특정 질문에 대한 답을 몸으로 보이는 활동을 한다. 어떤 질문에도 반응하지 않던 닉은 “가족과 다툰 적이 있나요?”라는 질문부터 움직이기 시작한다. 뒤이어 “내 잘못이 아닌데 손가락질당한 적이 있나요?”, “외로웠던 적이 있나요?”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들이 이어진다. 어느새 닉은 방 안에 있는 모습으로 비추어진다. 카메라와 닉 사이에는 창문이라는 벽이 존재하게 된다. 즉,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닉은 지금까지 그 방 안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방 안에서 외롭게 혼자 지낼 것임을 알 수 있다. 코니는 닉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친구였으며, 어쩌면 코니의 파란만장한 모험은 닉이 창조해낸 ‘장르’ 그 자체일 수 있다. 엔싱 시퀀스에 맞춰 흐르는 이기 팝의 노래 가사(“순수한 녀석과 망할 녀석은 하나였다”)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증언한다.

영화는 퍼즐을 이리저리 끼워 맞추는 퍼즐같은 재미가 있다. 카메라 앵글 하나하나에 의미가 깃들어 있으며 화면을 통해 전달되는 빛의 강도와 음악의 세기까지 정밀하게 설계된 듯 보인다. 코니와 닉을 연기한 로버트 패틴슨과 베니 사프디의 연기 또한 훌륭하다. 화면부터 음악까지 거의 모든 요소가 너무나 감각적이어서 자칫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무엇보다 뉴욕의 낮은 부분을 직설적으로 비춘다는 점에서 매우 사회적이다.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영화의 이곳저곳에 깃들어있는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사프디 형제의 영화는 [굿타임]이 처음이었는데 앞으로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