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로서의 삶

최근 아내는 그림을 그리는 일에 흠뻑 빠져있다. 학교로부터 강의용으로 얻어온 아이패드 위에 그림을 그리며 손을 풀더니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별로 어렵지 않게 수채화 그림을 몇 점 그려낸 후, 올해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 학교 평생교육원에 나가 유화를 그리고 있다. 덕분에 우리집은 점점 화실처럼 변해가고 있다. 2015년 처음 혼자 살기 시작할 때부터 함께 한 6인용 테이블은 이제 아내의 작업공간으로 탈바꿈했고, 집 안 복도는 전시회 공간처럼 캔버스로 가득 채워졌다. 요즘 나의 즐거움 중 하나는 학교와 집을 오가며 그림을 그리는 아내를 위해 무거운 화구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일이다. 그림에 소질이 전혀 없는 나의 눈에는 무척 아름다운 그림을 척척 그려내는 아내의 손재주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 그녀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내가 다른 걱정 없이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 정도이며, 그 중에서도 화구가방을 들어주는 일은 가장 보잘 것 없는 축에 속한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맞벌이를 반드시 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렵지는 않다. 최근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며 다시 한번 깨달은 것이지만, 국립대 교수로 ‘열심히’ 살면 지방 대도시 부근에서 큰 부족함 없이 살아갈 정도의 수입은 올릴 수 있다. 부부 중 한 명이 돈벌이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은 큰 축복이다. 나는 이 축복을 제 발로 걷어차고 싶지 않다. 어차피 나는 좋아하는 공부를 하며 돈도 받을 수 있는 직업을 운좋게 얻었으니, 내가 건강을 유지하며 본분에 충실한 삶을 살면 아내는 평생 좋아하는 일에만 집중하며 살아도 될 것이다. (마음같아서는 요리도 하고 싶을 때만 했으면 좋겠지만, 요리를 일종의 창작활동으로 여기는 아내에게는 그림이나 피아노연주처럼 요리도 ‘필을 받으면’ 넘치는 에너지로 한상 그득하게 차려내는 대상이 된다) 그래서 겉으로든 속으로든 그녀에게 돈과 관련된 부담을 전혀 지우지 않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맞벌이 회사생활을 하던 시절, 즉 평일이면 저녁에 녹초가 되어 만나 대화도 몇마디 나누지 못하고 지쳐 쓰러지고, 주말이면 쉬기 바빠 근처로 산책 한번 나가기 힘들었던 그 생활로 ‘스스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아내는 미술을 전공했다. 고등학교 기간동안 입시미술을 준비하고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생뚱맞게 첫 직장은 일반 경영직으로 들어갔다. 대학 졸업 후 나를 만나 서울을 떠나기 전까지 마케팅과 같은 경영 업무만을 해온 그녀에게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는 환경은 무척 반가웠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고 또 가장 잘하는 일을 마음껏 하기를 바란다. 나는 비로소 원하는 직업을 얻어 꿈을 향해 (조금 늦었지만) 걸어가기 시작했으니, 아내 역시 자신의 꿈을 향해 걸어나갔으면 한다. 그 과정에서 돈을 벌면 기분 좋은 것이고, 돈이 전혀 생기지 않는 일을 한다 하더라도 꿈을 성취할 수 있다면, 혹은 그 꿈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된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단기적인 목표는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작은 규모의 전시회를 열기에 충분한 개수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 그리고 전시회를 열어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쌓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어떠한 형태로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큰 영광이고 기쁨일 것이다. 우선 몇 년이 걸리든 꾸준하게 화구가방을 들어줄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해야 한다. 아내가 그림을 그리는데 집중하기 위해 다른 집안일을 떠맡는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또 아내가 좋은 영감을 얻기 위해 이곳 저곳을 여행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논문도 더 열심히 써야 할 것이다.

후원자로서의 삶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이유는 아내가 타의로 포기해야 했던 ‘꿈’때문이다. 아내는 원래 피아노를 전공하려 했다. 피아노학원을 운영하시던 어머니와 큰어머니를 따라 어린 나이부터 피아노 연주에 대해 재능을 보인 그녀는 착실하게 피아노 영재로 교육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덟살 무렵 동생이 태어나면서 더이상 집중적인 훈련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 몇 년 후 동생이 어느 정도 성장한 후 어머니는 다시 아내의 피아노 교육에 집중하려 하셨지만, 약간의 공백도 치명적인 그쪽 세계에서 몇 년의 공백은 이미 더이상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상실을 안겨주었다. 결국 아내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피아노 못지않게 재능이 있었던 그림 쪽으로 목표 전공을 선회했고, 그 결과 미대에 입학하여 나름 치열하게 대학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결국 그 그림조차 구직활동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여 원치 않는 경영 업무로 청년 시절을 흘려보낸 것이다. 나는 그녀의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충분히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고, 또 즐겼을 것이다. (아내의 성격을 감안하면, 맞다, 그녀는 확실히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원치 않는 일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던 그녀의 모습 역시 생생하게 기억한다. 철도 씹어 먹을 정도의 왕성한 소화력을 보이는 아내가 역류성 식도염에 걸려 밤마다 헛구역질을 할 정도로 그녀는 원치 않는 일을 할 때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 식도염은 직장을 관둔 뒤 거짓말처럼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이제부터라도 그녀가 가장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녀가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뒤에서 서포트해주는 일을 맡을 것이다. 어쩌면 내 직업은 그러한 역할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이렇게 후원자로 살아가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보람차다. 재능있는 사람이 그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주는 일은, 별다른 재능이 발견되지 않는 일에서 억지로 무언가를 실현해보기 위해 발버둥치는 일보다 훨씬 가치있는 일이다. 어쩌면 나는 전자에 더 재능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Big Thief | U.F.O.F.

올 해 최고의 음반이 도착했다. 빅 띠프(Big Thief)는 앞서 발표한 두 장의 음반 [Masterpiece]와 [Capacity]를 통해 인디 포크씬에서 꽤 중요한 존재로 자리잡았다. 프런트워먼 에이드리앤 렝커(Adrianne Lenker)의 개인사를 중심으로 풀어낸 [Capacity]는 개인적으로 2017년 최고의 음반 중 하나였다. 렝커는 2018년 개인 이름으로 [Abysskiss]를 발표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갔고, 밴드는 렝커의 이 음반을 끝으로 Saddle Creek Records에서 4AD로 플랫폼을 갈아탔다. 밴드가 4AD에서 발표한 첫번째 음반이자 밴드의 세번째 음반 [U.F.O.F.]는 2019년 인디 포크씬 뿐 아니라 현대음악계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음반으로 기억될 것이 분명하다. 그 정도로 명료하고 굵직하게 하나의 완전한 음악적 세계를 구현해내는 음반이다. 이 음반은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의 [Suburbs] 음반과 같은 인상을 주는데, 음악의 형식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밴드의 역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는 측면에서 그러하다. 즉, ‘기존에 해오던 것을 반복했음에도 대중음악계가 새삼스레 호들갑떨며 발견하는 음반’이 될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U.F.O.F.] 역시 기존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렝커의 우울한 과거사에서 많은 모티브를 가져오고 있고, 나즈막한 렝커의 목소리와 격하지 않은 통기타 연주 등 포크음악의 형식으로 기본적으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전작과 달라진 점, 혹은 이 음반을 ‘완전하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가 두어가지 정도 발견된다. 첫째,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다 밴드 형태에 가까운 음악이 완전한 수준으로 진화했다. 내가 여기서 사용하는 ‘완전(complete)’이라는 단어는 ‘완벽(perfect)’과 미묘하게 다른 개념이다. 음악과 같은 예술의 영역에서 절대적 완벽함이란 쉽게 존재할 수 없는 차원이다. 하지만 한 예술가의 내재적인 발전과정에서 부족함이 메워지고 한계가 극복되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발생하여 기존의 차원에서 더이상 논의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움이 어느정도 ‘완성’되었을 때 완전하다, 라고 표현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U.F.O.F.]는 그 정도 수준의 음반이다. 먼저 렝커에게 의존적이었던 음악적 구성이 밴드 멤버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렝커를 포함한 밴드의 모든 멤버들이 음반 크레딧에 ‘ambience’라는 역할로 올라가 있는 점이 흥미롭다. 즉, 이 음반은 하나의 장르로 읽히기 보다는 특유한 ‘분위기’로 이해되어야 하는 측면이 강한데, 이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있어 멤버들의 허밍이라던가 나지막한 코러스 등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Century”같은 곡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전형적인 포크 넘버인 이 노래는 밴드 멤버 벅 믹(Buck Meek)의 코러스 참여로 인해 빅 띠프의 음악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조금은 로킹한 트랙인 “Contact”에서는 물이 오른 합주실력을 엿볼 수 있다.

둘째, 보다 깊어지고 포용적이 된 음반의 철학이 독보적인 수준으로 올라섰다. 음반의 제목 ‘U.F.O.F.’는 ‘미확인 비행물체’를 가리키는 약어 ‘U.F.O.’에 ‘friend’를 상징하는 F를 붙인 것이라고 한다. 음반에는 여전히 상처와 죽음의 흔적이 가득하다. 렝커의 개인 음반에 수록된 곡을 리메이크한 “Terminal Paradise”에서는 죽음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렝커와 친구들은 자신 안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외부로 묵묵히 걸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 음반을 듣는 청자에게도 그렇게 외부의 이방인과 친구가 되기를 원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Terminal Paradise”를 다시 들여다 보면 의미심장한 구절이 발견된다.

터미널
우리 둘 다 알고 있어
내 남은 것들 모두 떠나게 해줘
내 죽음이 하나의 흔적이 되고
그 흔적이 한송이 꽃을 피우는 모습을 지켜봐줘
나는 너의 여정 속에서 피어날 것이고
모든 꿈에서 함께 할거야

음반의 타이틀곡인 “U.F.O.F.”는 약간은 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치 나쁜 꿈을 꾼 것 같이
넌 사라지겠지
다른 지도는 파란색으로 바뀌고

거울에서 거울로(위의 두 구절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난 너를 상상해
우리의 사랑을 더 깊게 하기 위해
나를 밖으로 이끌어내는 너의 모습을
우린 더이상 떨어지지 않을거야

렝커의 가사는 한 편의 시가 되고, 청자는 그의 목소리에 위로받고 그의 목소리를 위로한다. 절망적이지 않지만 대책없이 긍정하지 않는 침착함. 여전히 세상은 어둡고 우울하지만 서로의 손을 잡음으로써 담담히 걸어나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음반의 시각 역시 완전하다.

렝커의 개인 음반에서 건너온 곡이 하나 더 있다. “From” 역시 [Abysskiss]에 수록된 곡인데 “Terminal Paradise”처럼 보다 더 아름다운 밴드곡으로 잘 편곡되어 실려있다. “From”과 “Terminal Paradise”는 렝커와 빅 띠프의 음악에 연속성을 부여하며 이들의 이야기가 일반적인 삶처럼 긴 시간 굽이굽이 흐르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이 음반에는 앞서 언급한 노래 들 외에도 빅 띠프 특유의 절절한 멜로디라인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노래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 “Orange”는 렝커가 가장 잘하는 것을 극대화하는 좋은 트랙이며, “Cattaills”와 “Jenni” 역시 오직 빅 띠프만이 구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U.F.O.F.]는 버릴 곡이 하나도 없고 놓치고 싶은 순간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올해의 음반’ 타이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이졸데 카림 | 나와 타자들

우리는 혐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익명성이 보장된 온라인상에서 독설을 내뱉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이제 오프라인으로 나와 혐오의 대상에게 실제적인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남성과 여성이 갈라져 싸우고 경상도와 전라도가 갈라져 싸우는 모습은 오래 전부터 보아온 익숙한 광경이지만, 그 ‘결’이 최근 달라졌다. 과거에는 특정 언론사 및 정당이 내세운 가치에 ‘맞추어’ 일정한 갈등의 규칙이 정해졌다면, 요즘에는 뜻이 맞는 개인과 개인이 모여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한다. 이들은 기존에 존재하는 제도권 세력에게 거꾸로 그 혐오의 색깔을 주입시키고 제도권 세력은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한다. 사회에 흐르는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이 바뀐 것이다. 티파티(Tea Party)의 혼란기를 지나 미국에서는 트럼프라는 괴물이 탄생했고, 이민정책과 극우주의의 몸살을 겪고 난 유럽에는 마크롱이라는 신예가 프랑스의 대통령이 되었다. 이 둘은 기존의 정치문법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포퓰리스트라는 공통점이 있다. 일베와 메갈리아는 한국에만 있는 특수한 집단이 아니다. 전 세계의 정치흐름을 바꾸고 있는 극단주의와 포퓰리즘을 이해하는 핵심은 무엇일까?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이졸데 카림(Isolde Charim)은 그의 저서 [나와 타자들(원제:Ich Und Die Anderen)]에서 포퓰리즘 득세의 본질적 원인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개인 안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자아 정체성이 사회와 호응하는 방식의 변화로 설명한다. 카림은 먼저 개인을 사회의 일부로 환원시키는 몇가지 장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대표적이다. 민족은 허구이며 허상이지만, 그 어떤 개념보다 개인에게 강한 소속감을 부여하는 효과적인 장치다. 현대사회의 민주정치는 민족과 같은 몇가지 장치를 통해 개인으로 하여금 사회와 감정적인 동질감을 느끼게 만들며, 이 감정적 동질감을 개인별로 동등하게 부여된 표로 환산하여 권력화한다. 카림은 이러한 민주사회의 속성이 개인이 정체성을 느끼는 방식에 따라 조금씩 변해왔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다. 카림에 의하면, 1세대 개인주의가 사회에 개인을 맞추는 방식이었고 2세대 개인주의가 개인의 개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었다면, 3세대 개인주의는 개방과 세계화, 정보의 과다공급에 따른 우연과 불확실, 자신에 대한 불안감 등이 주가 된다. 즉 ‘다원화’된 세계에 사는 개인은 확고한 정체성을 유지해나가기 힘들다. 다양한 종교를 인정해야 하고, 다양한 민족의 공존을 받아들여야 하며, 기존에 누리던 특권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가 공고히 유지하고 있던 몇가지 개념들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며 개인은 ‘감소한 정체성’ 속에서 극심한 불안감을 느낀다. 우리나라로 치면 패미니즘이 각광받는 요즘 이에 대한 반발로 20대 남성이 극단적으로 우경화하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

위축된 자아, 혹은 다원화된 세계에서 근본주의는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다. 오히려 다원화에 대한 퇴행적 반동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고 불안해하는 개인에게 억지로 이상적인 똘레랑스를 강요하는 좌파도 해결책이 될 수 없다. 3세대 개인주의는 이성의 영역이 아닌 감정과 공감의 영역에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틈을 파고든 최초의 인물이 마크롱이다. 그는 좌도 우도 아닌 중도의 길로 자신을 정의내리며, 불안감을 느끼는 많은 이들을 ‘공명 공간’으로 불러냈다. 새로운 형태의 개인주의는 기존의 제도권에 자신을 맞추려 하지 않는다. 제도권이 개인에게 다가가 새로운 공간에서 화합되어야 한다. 카림에 의하면 마크롱은 이러한 대중의 성향 변화를 정확하게 파악한 최초의 정치인이다. 가난한 이민자들이 넘쳐나는 유럽에서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은 이제 ‘원한’을 ‘혐오’의 언어로 풀어내려 한다. 우리나라는 이 원한과 혐오의 언어가 남성 대 여성의 대결에서 드러난다. 마크롱, 혹은 트럼프는 몇가지 극단적인 이민정책을 실제적으로 전시함으로써 대중이 가진 원한이 씻김굿으로 풀어질 수 있음을 효과적으로 증명해냈다. 이들이 아마추어적인 정치기술을 가지고도 아직까지 위치를 공고히 하는 이유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가장 올바른 길, 가장 지향해야 할 길이 아님을 카림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운동이 상처받기 쉬운 개인의 정체성을 “도덕적 개혁주의”를 통해 하나 하나 보듬어 나가는 동시에 그 연약함을 ‘인정’해준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시도였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 정치적 올바름 운동도 결국 “지나친 감정화”의 위험에 빠져 그 본질적 가치를 상실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트위터 등의 공간에서 꽤 의미있는 정치적 올바름 운동을 발견할 수 있었으나, 결국 현 시대의 개인의 정체성이 위축된 감정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채 지나친 감정적 대립을 야기하는 바람에 그 성취가 목표한 수준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증오와 광신이 넘실거리는 이 포퓰리즘 시대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질문은 무엇일까? 카림은 책의 말미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충분히 징후적이라고 선언한다. 대중의 감소한 정체성을 간파하고 그 배고픔을 해소해주는 포퓰리즘을 넘어선, 그 포퓰리즘을 극복한 더 나은 형태의 민주주의는 실제적인 ‘무엇’에 대해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금은 추상적인 이 책의 결말이 미진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 삶 주변에 존재하는 수많은 혐오와 광신의 에너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으로 그 공백을 조금이나마 채워보려 한다.

Anderson .Paak | Ventura

몇 년 전부터 스포츠 팬들 사이에서 ‘폼(form)’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마치 추신수가 ‘그린라이트(green light)’라는 야구 관용어를 한국에 소개했듯, 누군가에 의해서 소개된 이 단어는 지금까지 그 쓰임새를 관찰할 때, 운동선수의 컨디션, 역량, 성장곡선, 나이 등을 고려한 총체적인 퍼포먼스 지표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음악인에게도 이 ‘폼’ 개념을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음악계에서 단순히 경험이 축적됨에 따라 비례적으로 더 나은 음악적 산출물을 보여주는 경향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음악인 개인의 노력과 영감, 주변 상황에 따라 성과물의 수준이 들쭉날쭉한 경우가 대부분이며, 한 뮤지션의 디스코그래피를 가만히 따라가다 보면 일정 기간 침체기를 겪은 후 음악적 역량이 반등하는 뮤지션도 심심치 않게 발견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그런 경우를 발견할 때 재기에 성공한 운동선수를 보는 것 같아 반갑고 고마운 감정을 느낀다.

OBE 레이블에서 [Venice]와 [Malibu], 두 장의 음반을 발표하고 평단과 대중 양단으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미국 서부 출신 뮤지션 앤더슨 팍(Anderson .Paak)은 전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해온 닥터 드레와 본격적으로 함께 하기 위해 큰 둥지인 애프터매스(Aftermath)로 옮겨간다. OBE에서 발매한 두 장의 음반 중 특히 [Malibu]는 미 서부 힙합을 레트로풍의 알엔비, 훵크와 절묘하게 엮어내 힙합이라는 장르의 현재 영역을 한 걸음 확장시킨, 정말 좋은 음반이었다. 그런데 애프터매스에서 발매된 첫 음반이자 닥터 드레가 직접 프로듀스한 음반 [Oxnard]는 그 의미심장한 음반명에도 불구 – 앤더슨 팍의 고향이다 – 상당히 산만한 분위기로 가득찬, 한마디로 재미없는 음반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음반의 전체적인 에너지 레벨이 무척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인데, 나중에 들려온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드레의 프로듀싱이 앤더슨 팍의 창의력을 조금 억누른 것은 아닌가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 음반에서 앤더슨 팍은 어딘가 불편해보였다. 가장 잘하는 것에 힘을 쏟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그닥 잘하지 못하는 것에 억지로 최선을 다하는 느낌이었다. 아주 구린 음반은 아니었지만, 결코 뛰어난 음반은 아니었다.

2019년에 발표된 새음반 [Ventura]는, 팍에 따르면 전작 [Oxnard]를 제작할 당시 함께 만들어둔 노래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당시 팍은 이 [Ventura] 음반에 수록된 노래들도 함께 발표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번 음반을 제작하면서 닥터 드레로부터 조금 더 많은 재량권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Oxnard] 시절 만들어진 결과물치고는 [Malibu]의 분위기를 조금 더 많이 닮아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결론부터 말하면 [Ventura]는 [Malibu] 시절로 돌아간 앤더슨 팍의 ‘폼’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좋은 음반이다. 조금 더 자유롭게 드리블과 슛의 재량권을 부여받은 농구선수를 보는 느낌이다. 감독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쏘고 싶을 때 쏘고, 패스하고 싶을 때 패스할 수 있기 때문에 코트 위에서의 움직임이 활기차보이는 농구선수처럼, 앤더슨 팍은 이번 음반에서 자신이 들어갈 때 정확히 들어가고 나와야 할 때 적절하게 빠져주는 유연함을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음반의 수록곡 중 “King James”는 농구선수 르브론 제임스와 풋볼선수 콜린 캐퍼닉에 대한 이야기다) 어깨에 힘을 쭉 빼서인지 음악은 여유롭고 흥겹다. 듣는이도 긴장감보다는 즐거움과 기쁨을 먼저 느끼게 된다. 음반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존재는 라라 해서웨이(Lalah Hathaway), 브랜디(Brandy), 재즈민 설리반(Jazmine Sullivan)과 같은 여성 보컬리스트의 목소리다. 이들이 참여한 트랙에서 앤더슨 팍은 조금 더 편안하게 보이고 음악은 조금 더 단단하게 느껴진다.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은 이런 것들이 아니었나 싶다. 아직도 더 올라갈 곳이 존재하는 성장하는 음악인임을 증명한 음반이다. 올 여름을 이 음반과 함께 보낼 리스너들이 무척 많을 것 같다. 나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Nilüfer Yanya | Miss Universe

“나만 알고 싶은 뮤지션”이라는 농담은 혁오가 [무한도전]에 출연하던 무렵부터 대중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 같다. 남다른 센스와 부지런함으로 단련된 감각적인 리스너들은 꽤 괜찮은 음악을 누구보다 먼저 찾아내어 남모를 뿌듯함을 느끼는 것을 삶의 기쁨 중 하나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음악을 찾아 듣다보면 가끔 ‘음, 이 음악은 조만간 한국의 힙스터들에게 사랑받겠군’과 같은 직감을 느낄 때가 있다. 신선하고 감각적인 음악적 외형은 기본이다. 한국의 젊고 부지런한 힙스터 리스너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남다른 외모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또래 뮤지션들과 구분되는 확실한 정체성을 몇가지 상징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영국 런던 첼시 출신의 1996년생 아티스트 닐루퍼 얀야(Nilüfer Yanya)는 그 까다로운 요건을 거뜬히 통과하고도 남을 정도로 인상적인 데뷔음반 [Miss Universe]를 내놓았다. 터키 음악을 전공한 아버지와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얀야는 12살 무렵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였으며, One Direction을 프로듀스한 회사에서 걸그룹으로 데뷔할 것을 권유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계속 추구해왔다. 몇 장의 EP를 내고 올 해 정식으로 데뷔 음반을 발표했는데 평단의 평은 무척 호의적인 편이고, 벌써부터 나의 몇 안되는 힙스터 친구들은 얀야의 음악을 끼고 살기 시작했다. 김밥레코드 사장님은 “올해의 앨범급 데뷔작”이라고 칭찬했는데, 닐루퍼 얀야의 음악이 한국과 미국 등에서 널리 들려질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ATO 레이블에서 발매된 [Miss Universe]는 데뷔 음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고 통통 튀는 노래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영향을 받았다고 그녀가 언급한 뮤지션을 열거해보면 큐어(The Cure), 픽시스(Pixies), 제프 버클리(Jeff Buckley), 니나 사이먼(Nina Simone) 등이 있는데, 이 종잡을 수 없는 레퍼런스처럼 [Miss Universe]도 ‘이보다 더 잡탕밥일 수 없다’고 느낄 정도로 다양한 장르가 뒤섞여 있다. 인디록, 재즈, 힙합, 트립합, 디스코, 신스팝 등 갖가지 장르가 닐루퍼 얀야의 입맛에 맞게 맛있게 비벼져 있다. 싱글로 발매되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훅을 자랑하는 곡만 다섯 손가락에 다 꼽기 힘들 정도로 많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곡은 “Paralysed”, “Melt”, “The Unordained”, “Heavyweight Champion of the Year” 등인데, 기타와 드럼 등 최소화된 악기 구성에 중독성 있는 멜로디를 얹는 것만으로 훌륭한 노래가 만들어질 수 있음을 충실히 증명해내고 있는 노래들이다. 세인트 빈센트(St.Vincent)가 노래를 진행해 나가는 방식도 떠오르고, 킹 크룰(King Krule)의 분위기도 조금 느껴진다. 초창기 파이스트(Feist)의 색깔도 난다. 나 역시 그녀의 음악을 묘사하기 위해 종잡을 수 없는 레퍼런스를 꺼내들게 된다. 완전히 새로운 음악이다. 이런 신인을 만난다는 것은 항상 기분 좋은 일이다. 연말에 많이 언급될 음반이다.

김세희 | 가만한 나날


김세희의 단편소설 모음집 [가만한 나날]을 읽었다. 조금 긴 호흡으로 읽었다. 일부러 하루에 한 편 이상 읽지 않았다. 학기 중에는 아무래도 두꺼운 영문 전공서적을 읽을 일이 많은데, 그것때문인지 내 안의 ‘읽기 자아’가 약간의 무거움을 느꼈나보다. 그럴 때에는 의도적으로 한국어로 쓰인 현대소설을 찾는다. 가장 최근의 한국어가 가장 모범적으로 사용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에 선택한 [가만한 나날]은 무척 유려하게 쓰인 한국어 문장들로 가득하다. 마음에 거슬리는 순간 없이 쉽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책의 판형 역시 가볍고 산뜻하게 만들어져 있어, 책장을 넘기는 손과 글씨를 따라가는 눈 모두 즐거웠다.

하지만 이 소설집에서 다루는 주제는 그리 즐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여덟편의 단편 중 일곱편의 화자는 2,30대로 추정되는 여성이다. 이들은 직장에서 힘겹게 생존을 위해 살아가거나, 남성 중심 사회가 공고히 쌓아올린 벽에 가로막혀 좌절하거나, 가만히 자리잡은 욕망을 인정받지 못해 아파한다. 1987년생인 지은이와 그 또래 여성이 한국사회에서 겪을 법한 일을 담담한 필치로 묘사해나간다. 지은이가 창조한 세계는 좁다. 젊은, 한국인, 여성, 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않는다. 그 세계의 주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세계의 중심을 명확히 확정한 후 화자의 내면 속으로 깊게 파고들어간다. 다행히 이 소설집이 공유하는 세계는 한국 현대소설의 주된 독자인 젊은, 한국인, 여성, 에게 매우 익숙한 공간이고,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리얼리즘’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타겟이 되는 독자층으로부터 꽤 많은 공감을 이끌어낼 것이다. 이 소설집에서 빈번하게 발견되는 몇 가지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먼저 남성은 이 세계에서 적대적인 존재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위기에 빠진 아내를 두고 숙소로 먼저 돌아가버리는 무심한 남편이거나, 밑도 끝도 없이 역정부터 내는 심약한 아버지이거나, 주인공이 애써 쌓아올린 작은 세계를 무시하는 직장 동료이거나, 혹은 그와 동등한 위치의 어떤 유리벽이거나. 패미니즘적 시선이 느껴진다. 둘째, 같은 여성이라 할지라도 소설 속 화자가 처한 위치보다 높은 곳에 자리잡은 다른 ‘계급’의 여성은 억압적인 기제로 등장한다. 터무니없는 행동을 요구하는 직장 상사이거나, 자신이 갖지 못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인기 많은 웹툰 작가이거나. 불안정한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오늘날의 젊은, 한국인, 여성의 심리를 꽤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이 소설집의 많은 부분에서 지루함을 느꼈다. 순간 순간 번뜩이는 문장들이 발견되긴 하지만, 소설의 전체적인 구조가 유기적으로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받기 힘들었고 인물들이 평면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부분에서 소설 속 화자, 혹은 중심인물의 중요한 행동을 설득력 있게 담아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표제작인 “가만한 나날”은 구조적으로 잘 정돈이 되어 있고 주인공의 심리 묘사가 탁월하게 그려져 있어 재미있게 읽었다. “드림팀”의 경우 많은 여성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이라는 의견에 동의하며, 관찰자적인 시선이 퍽 괜찮게 드러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얕은 잠”의 경우 주인공의 황망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그를 돕는 퉁명스러운 외국인 남성과 메모만을 남기고 사라진 남편 등 주변인물이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묘사되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들 것으로 보이며, “말과 키스”는 꽤 야심찬 시도라고 하기엔 그 전개과정이 너무 어설퍼서 쉽게 읽어내려갈 수 없었다. 최근 읽었던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단편 중 “지난 주 월요일에”를 참고한다면 좋았을 것 같다. 밀도의 차이가 너무 명확하게 느껴진다.

Chai | Punk

지난 3월 가장 즐겁고 유쾌하게 들었던 음반은 일본 나고야 출신의 4인조 여성 밴드 차이(Chai)의 두번째 정규 음반 [Punk]였다. 이 음반을 듣게 된 이유는 음반 표지가 너무 귀여워서였는데, 음반을 플레이시키면 기대를 무참히 깨뜨리는(지금 이 시점에서 그 순간을 돌이켜보았을 때 당시 무엇을 기대했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지만) 소리가 튀어나와 우선 헛웃음이 터졌고, 이후 음반을 들어보니 거의 모든 곡이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완성도가 뛰어나서 한번 더 웃음이 나왔다. 두번째 웃음은 감탄, 혹은 경탄의 웃음이었다. 이들은 첫번째 정규음반 [Pink]를 발표하며 함께 공개한 뮤직비디오를 통해 이미 그 정체성을 확고하게 각인시킨 바 있다. 뮤직비디오에서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귀여워!”를 외치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십대-이십대 여성에게 부여되는 “가와이”한 이미지와는 또 미묘하게 결이 다르다는 점이 이 밴드의 핵심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밴드는 공개적으로 “안티-가와이”가 밴드음악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들이 발표한 두 장의 음반을 주의깊게 듣지 않으면 십대 여성 스쿨밴드의 전형성이 답습되어 있다고 피상적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두번 세번 반복해서 듣다보면 이들이 무척 실험적일 뿐 아니라 음악 역시 상당히 진지하고 깊게 밑으로 깔려 들어간다는 인상을 어렵지 않게 받게 될 것이다. 개별 노래가 가지고 있는 싱글로서의 매력도 매력이지만, 가볍게 몸을 푸는 듯한 초반부를 지나 음반의 중후반으로 갈수록 예상치 못한 익스페리멘탈 넘버가 연속적으로 나오기 시작할 때 범상치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90년대 힙합과 포스트펑크 씬에서 받은 영향을 숨기지 않는 가운데, 그 와중에도 펑크가 가진 원천적인 매력, 즉 직관적으로 터져 나오는 훅과 펀치라인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부지런함과 명민함은 여전하다. [Punk]는 [Pink]에 비해 팝적인 달콤함이 조금 부족해보일 수도 있지만, 밴드로서의 정체성이 보다 확립되어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 하며, 무엇보다 음반 전체적인 밸런스 역시 훨씬 좋아졌다는 점에서 분명 발전이라고 평할 만한 요소가 존재한다.

나는 이 음반을 ‘미국 버전’으로 접했다. 즉, 이 음반은 소니 뮤직 재팬이 일본에서 발매했지만, 북미에서는 버거 레코드(Burger Records)를 통해 공개되었다. 밴드가 ‘글로벌 뮤지션’으로 성장하게 된 역사를 간단히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나고야에서 고등학교에서 밴드를 결성한 마나와 카나 쌍둥이 자매는 드러머 유나와 베이시스트 유키를 불러들여 4인조 밴드 구성을 완성한다. ‘차이’로 이름을 결정한 이들은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위해 도쿄로 상경하여 2015년 첫번째 EP를 발매했는데, 핑크색 옷을 맞춰 입고 이상한 춤을 추며 노래를 하는 이들이 곧 소니 뮤직의 눈에 띄게 되어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본에서 무사히 데뷔 음반 [Pink]를 발매하고 성공적으로 일본무대에 안착하나 싶었지만…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 아시아 오디션에 합격해 오스틴으로 날아가버린다. 미국에서의 강렬한 데뷔 공연과 데뷔 음반, 뮤직비디오 등은 캘리포니아 기반 음반사인 버거 레코드를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이 곳을 통해 2018년 [Pink]의 북미버전을 재발매하게 된다. 이후 수퍼올가니즘(Superorganism)의 투어에 오프닝 밴들 참여하면서 미국을 한바퀴 돌았고, 그 결과 두번째 음반 [Punk]는 미국(버거 레코드), 영국(헤븐리 레코드(Heavenly Records)), 그리고 일본(오테모얀 레코드(Otemoyan Records))에서 동시에 발매될 수 있었다. 이 겁없는 여성 네명의 앞날에 부디 즐겁고 행복한 날들만 가득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나는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너무 즐겁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John Coltrane | Both Directions at Once: The Lost Album

지난 해 가장 즐겨 들었던 음반이지만 블로그에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 음반이 하나 있다. 작년 재즈씬 뿐 아니라 음악계 전체를 들썩이게 만든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신작 [Both Directions at Once: The Lost Album]은 음반 제목에서 추측할 수 있듯 1963년 녹음된 이후 50여년 넘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묻혀 있다 2018년이 되어서야 공개된, 기적과 같은 작품이다. 이 음반은 1963년 3월 6일, 뉴저지 주의 반 젤더 스튜디오(Van Gelder Studio)에서 녹음되었다. 존 콜트레인이 색소폰을 연주했고, 1963년 당시 콜트레인과 함께 했던 그 유명한 “Classic Quartet” 멤버인 지미 개리슨(Jimmy Garrison, double bassist), 엘빈 존슨(Elvin Jones, drummer), 맥코이 타이너(McCoy Tyner, pianist)가 함께 했다. 녹음 이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임펄스 레코드(Impulse Records)에서 음반의 마스터 테잎을 파괴했고, 콜트레인은 반 젤더 스튜디오에서 개인 감상용으로 받은 복사본 중 하나를 그의 첫번째 아내인 주아니타 나이마(Juanita Naima)에게 주었다. 2005년, 건지 경매회사(Guernsey’s auction house)에서 콜트레인과 관련된 물품으로 경매행사를 주최하였고, 이 행사에서 복사본의 판권 및 저작권을 획득한 반 젤더 스튜디오와 프로듀서 켄 드러커(Ken Druker), 콜트레인의 아들 래비(Ravi) 콜트레인은 합심하여 이 음반을 완성시키기로 결심한다. 루디 반 젤더가 믹싱을 담당했고, 미국음악사가 애슐리 칸(Ashley Kahn)이 음반의 라이너 노트를 집필했다.

음반은 총 7개의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Vilia”를 제외한 모든 곡이 전에 공개된 적이 없는 신곡이다. 음반이 최초 공개된 것은 2018년 6월이지만, 지금에 와서 이 음반이 개인적을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최근 발매된 콜트레인의 다른 음반 [Coltrane ’58: The Prestige Recordings]를 최근에 듣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58년에서 63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콜트레인은 상당히 흥미롭다. 1958년은 콜트레인이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하던 시절이다. 음악사에 가장 중요하게 기록될 음반 중 하나인 [Blue Train]이 발표된 해이고, 텔로니어스 몽크와의 협업 등을 통해 발전된 특유의 코드 진행 방식인 “Coltrane changes”이 형식적으로 완성된 해이기도 하다. 최근 발표된 58년 음반은 그래서 그런지 무척 감미롭고 여유롭게 들린다. 콜트레인의 미적 감수성이 극대화되어 안정적인 코드 진행 속에서 마음껏 뛰어논다. 춤으로 치면 왈츠나 발레가 떠오른다. 1963작은 이와 여러가지 측면에서 대비된다. 음반의 타이틀곡인 “Impressions”의 첫소절을 들으면 정신이 버쩍 든다. 음반의 모든 부분에서 콜트레인의 광기가 펄떡거리고 있다.음반은 그의 정규음반들과 달리 정제되어 있지 않고 거칠게 진행되지만, 음반 전체에 살아 숨쉬는 생명력 만큼은 어느 정규음반 못지 않게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춤으로 치면 열정적이고 즉흥적인 탭댄스가 떠오른다. 1965년부터 콜트레인은 아방가르드 재즈에 대한 관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데, 이 1963년 녹음은 그러한 콜트레인의 변화하는 감수성을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사료이기도 하다. 여러 부분에서 밴드는 쉬지 않고 실험을 한다. 가끔은 그 실험이 너무 난해하게 느껴지고 가끔은 그 과정에서 성긴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콜트레인 역사의 ‘missing link’를 발견한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재즈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최소한 콜트레인은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뮤지션으로 남아 있다.

세종시 생활 1년

세종시에 전세집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선배 교수님들께 처음 전해드렸을 때 그 분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출퇴근하기에 너무 멀지 않겠어요?” 나는 “차로 30분 정도 걸립니다”라고 답변드렸지만,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30분이면 너무 오래 걸리는데…” “세종시 갔다가 너무 힘들어서 (대전으로) 돌아온 교수님들도 많더라구요” 세종시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를 재어 보았다. 20키로 쯤 나왔다. 서울에 살 때 금호동 집에서 여의도 직장까지 거리를 재어 보았더니 16키로 쯤 나왔다. 여의도 회사에서 자동차로 집까지 퇴근할 때 걸렸던 시간은 최고 70분 정도였다. 평소에는 한시간 정도면 집에 올 수 있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한 시간 남짓 걸렸다. 세종시에서는 금요일 저녁 6시 정각에 학교에서 나선다고 해도 35분이면 집에 도착한다. (퇴근시간대 대전의 교통량에 대한 출신 지역에 따라 조금 상이하다. 여기 사는 분들은 “몹시 막힌다”고 표현하지만 나는 “통행량이 조금 많은 정도”라고 주장한다) 요즘에도 가끔 교수님들이나 학교 동료들이 물어본다. 출퇴근이 힘들지는 않냐고. 요즘에는 “그럭저럭 다닐만 합니다” 하고 가볍게 뭉뚱그린다.

위의 예는 ‘서울과 지방’이라는 약간은 과격한 이분법이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주된 패러다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흥미로운 에피소드다. ‘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은 모두 지방 사람’이라는 이 논리는 사실 정당하지 않은, 어찌 보면 매우 ‘후진’ 주장이지만 그렇다고 이 논리가 비현실적이라고 부정하기에는 서울이 가진 위상이 너무 남다르다. 서울은 좁고 밀집되어 있다. 지방은 널찍하게 퍼져있다. 이렇게만 보면 지방이 상대적으로 풍요로운 것처럼 느껴지지만, 서울이 가진 살인적인 ‘밀집도’는 거기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도시로 만들었다. ‘효율적’이라는 표현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서울 지도를 펼쳐놓고 지하철 노선과 기간 도로의 배치, 주요 상권과 관공서, 주요 업무지구의 배치를 살펴보면 에너지의 집중과 분산이 몹시 효율적으로 배분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도시설계 전문가는 아니지만, 직관적으로 서울의 자원분배가 효율성 우선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형평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서울 안에서도 특정 지역에 사람과 돈, 문화와 창조성이 집중되어 있다. 서울은 지난 600여년의 역사를 거치며 철저하게 스스로를 다른 지역과 고립시켜 왔고, 심지어 그 안에서도 끊임없이 계급을 분화해 왔다.

심지어 요즘에는 비슷한 몸집을 지닌 세계적인 도시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깊이까지 갖추게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맛있는 스페셜티 커피를 파는 집은 서울에 있을 확률이 가장 높다. (아닙니다 부산에 있습니다) 세계적인 수준의 프랑스 요리나 일식 요리를 먹고 싶다면 굳이 빠리나 도쿄로 가지 말고 서울로 가면 된다. 지금 가장 핫한 미국의 인디 뮤지션이 궁금하다면 6개월만 꾹 참고 기다리면 된다. 국내 에이전시가 서울의 작은 공연장에 그 뮤지션을 대령해 놓을테니까. 서울은 한국사회의 모든 에너지원을 독점하며 세계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서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다른 도시와의 차별점을 굳이 꼽자면, 국내에 서울의 경쟁자가 전무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서울은 한국사회의 편애를 잔뜩 받고 자란 외동아들과 같은 존재다.

이런 서울을 고향으로 하는 나는, 서울을 벗어나 살기 전까지 스스로를 서울 안의 작은 구역에 가두며 정체성을 만들어왔다. 즉, 서울을 다시 잘게 쪼개기 시작한 것이다. ‘강남 3구’는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압구정동은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가봤다. 서울의 다른 지역도 대부분 마찬가지였다. 강동구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딱 한 번 가봤다. 노원구에 사는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면 노원구와 강북구, 중랑구에는 결코 가보지 못했을 것이다. 양천구와 강서구는 아직도 미지의 세계로 남아있다. 나는 종로구와 마포구, 서대문구에서만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커왔다. 그런데 서울을 벗어나 살아보니 그 모든 정체성이 다 부질없어 보이기 시작했다. 대전에서, 나는 ‘서울에서 온 사람’일 뿐, ‘마포구에서 온 사람’으로 구체화되지 못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어디에서 오셨어요?” 라는 질문 다음에 “그래서 서울 어디서 오셨냐구요?”라고 이어 묻지 않았다. 내가 세종에서 산 1년여의 기간동안 얻은 가장 큰 레슨이 이것이다. 서울 사람은 서울이 전부인 줄 안다. 하지만 서울 밖에서 살다 보면, 서울이 한국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24시간 내내 체감하게 된다. 서울 사람들에게 서울 외의 지역은 가끔 놀러 가는 경치 좋은 곳이거나 특이한 음식을 파는 맛집이 있는 곳, 혹은 명절 때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친척이 사는 곳 정도로 인식되겠지만, 그 곳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그저 또다른 서울’일 뿐이다. 지역 주민에게 삶의 중심은 그 지역이고, 그 지역의 일정 반경을 벗어나면 거기서부터 ‘지방’으로 인식된다. 사실 그렇게 인식되는 것이 맞다.

문제는 서울과 서울 외 지역 간 격차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 외 지역에 사는 이들이 그 지역을 중심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으며, 서울을 중심으로 놓고 자신과 자신이 사는 지역을 주변으로 놓는 인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서울과 지방’ 문제가 일차원적이지 않은 이유다. 이 ‘격차’는 앞서 표현한 에너지의 격차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격차는 앞으로 점점 벌어질 일만 남았다. 지금과 같은 낮은 성장률이라면, 특정 기간산업에 집중하여 수출을 통해 성장률을 떠받드는 국가전략을 고수한다면, 서울에 모든 기관과 기업이 모여 있고 그 에너지의 흔적이라도 받아 먹기 위해 다른 모두가 서울로만 모여든다면, 서울 외의 모든 지역은 지속적으로 뒤쳐질 수 밖에 없다.

이 거대한 흐름을 조금이라도 바꾸어보려고 만든 여러 정책 중 유일하게 실패라고 낙인찍히지 않은 것이 바로 세종시다. 어떻게 보면 지방균형발전을 위한 마지막 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곳은, 아직 많은 것이 가능성으로 남아 있다.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기에는 상당히 많은 요소들이 빈칸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2019년 3월 기준 세종시의 인구는 약 32만명인데, 이중 약 28%가 수도권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다. 62%는 대전과 충청도 등 충청권에서 유입되었다. 정부에서 작정하고 키우려고 하는 도시이니 그동안 부동산 광풍 등 ‘돈벌이’에서 소외되어 온 충청권 주민들이 먼저 반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충청권의 한계적인 인구를 감안할 때, 수도권에서 지속적인 유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2030년 목표로 잡은 80만명의 인구를 채우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수도권에서 열 개가 넘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매 블록마다 있는 스타벅스를 바라보던 이들이 세종시로 올 수 있을까? 삼성과 엘지, 국회와 청와대가 서울에 가만히 버티고 있는데 기차와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두시간 쯤 걸려 서울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의 신도시에 호기롭게 내려올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처럼 운이 좋게 좋은 직장이라도 구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지만, 대규모의 인구 이동을 유인할 만큼 ‘질 좋은’ 일자리를 세종시에서 얼마나 많이 창출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것이 물음표로 남아 있다.

조금 덜 거창하게 이야기의 차원을 좁혀 매일 매일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나는 이 곳에서 꽤 만족하며 살고 있다. 물론 여전히 서울에는 때때로 올라간다. 나의 모든 친구들이 그 곳에 있고, 많은 공연이 그곳에서 열리며, 심지어 내가 사고 싶어하는 물건을 파는 백화점도 서울의 강남구에만 있다. 하지만 대전의 신도심과 세종시를 오며가는 일상의 삶 속에서 ‘후회가 들 정도’의 심대한 불편함은 거의 찾을 수 없다. 물론 생활이 조금 느려지는 측면은 반드시 존재한다. 예를 들어 대전의 큰 병원을 한 번 가려고 해도 반드시 차가 필요하다. 학교에서 퇴근 후 교수님들과 한 잔 하려고 하면 시간을 계속 확인해야 한다. 버스가 일찍 끊기기 때문이다. 이마트라도 한 번 다녀오면 장바구니는 가득 차 있고 하루 반나절이 지나가 있다. 퇴근길에 잽싸게 백화점 식품코너에 들려 그날 그날 먹을 것을 사던 서울생활과 확실히 다르다. 하지만 ‘시간의 느려짐’은 어찌 보면 한국사회에서 하나의 축복이다. 서울의 경쟁에서 자발적으로 탈출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나는 서울에서의 탈출을 어느 정도 즐기고 있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의 단지 내부에는 자동차가 다니지 않아 아이들이 맘 놓고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한 낮에 창문을 열어 놓으면 아이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자동차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쓰레빠를 끌고 어슬렁 바깥으로 나가면 공차부터 베스킨 라빈스까지 많은 거대자본 점포들이 눈에 보인다. 특색 있는 소규모 자본의 성업을 벌써부터 바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아직 역사가 10년도 되지 않은 도시다. 도시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기 전의 대규모 거주지역은 거대 자본의 놀이터가 될 수 밖에 없다. (서울의 대부분의 지역 역시 마찬가지다. 마포와 용산, 강남의 일부분을 제외하고 그 지역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몇이나 되는가? ‘~리단길’은 왜 그리도 많은지, 자기 지역 다운타운의 별칭 하나 자신 있게 짓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걸어서 10분 거리에는 공원이 두세개 정도 위치해 있어 쉽게 흙밭과 숲길을 걸을 수 있다.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그 어떤 시간대에도 절대 막히지 않는다. 뭐 ‘통행량’이 많을 수는 있겠지만..) 좋은 숲과 절 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많아서 도시에 활기가 넘친다. 서울 사람들의 눈에는 상가 공실도 많고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죽은 도시’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아이를 낳지 않아 실제로 ‘죽어가는’ 서울보다는 훨씬 생명력이 넘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는 서울로의 재진입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이유는 ‘연고’ 때문이다. 처음 대전으로 내려간다고 할 때 많은 이들이 그곳에 연고가 있는지 걱정했다. 어느 정도의 두려움은 있었지만 그것이 어떤 결정의 결정적 이유가 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고는 상당히 중요하다. 지역에 연고가 있다는 것은 ‘연대’로의 이행이 그만큼 쉬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세종시가 아무리 도시 설계가 잘 되어 있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고 해도,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이 나의 실제적인 이웃이 될 수 없다면, 이 도시가 나에게 아주 깊은 유대감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세종시에서 ‘좋은 이웃’을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다. 아내는 친구를 한 명 사귀었고, 오랫동안 온라인상으로 알고 지낸 분의 가족과 식사도 함께 했다. 단골 커피숍도 생겼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부부가 아이를 낳고 키우며 장기간 삶을 지속하고자 할 때 이 곳이 최선의 선택인지에 대한 확신이 아직은 들지 않는다. 조금 더 우리 부부에게 익숙한 공간에서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고, 그 익숙한 공간에서 많은 친구들과 서로 의지해가며 삶을 이어나가고 싶다. 우리가 말버릇처럼 “친구 아무개만 이 곳으로 이사오면 서울은 꿈도 꾸지 않을텐데” 라고 농을 주고 받는 것도 이때문이다. 너무 나약한 말일수도 있겠지만, 세종시가 심리적으로 아주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가족이 확장할 수 있는 여력이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친밀한 이웃 두어 가족 (더!). 지금 이 도시에서 우리가 찾고 있는 퍼즐조각이다. 이 조건만 만족된다면, 좋은 직장과 쾌적한 주거 환경이라는 기본 전제조건과 함께 우리 부부는 세종시를 서울의 대안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Jenny Lewis | On the Line

결혼 전, 여의도에 있는 회사에서 근무할 당시 나는 돈을 멍청하게 낭비하는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고 있었다. 셔츠 빨래가 귀찮아 세탁소에 열 장이 넘는 셔츠를 한꺼번에 맡겨버리는가 하면 아무 이유 없이 “내가 쏜다!”를 외치기도 했다. 그 중 제일 가관이었던 낭비는 퇴근 길 싱글몰트 바에 들려 한 잔에 몇 만원씩 하는 위스키를 마시는 일을 ‘루틴’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친해진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당시 자주 듣던 음악을 바에서 틀곤 했는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제니 루이스(Jenny Lewis)의 [The Voyager] 를 듣던 어느날 밤이다. 당시에도 제니 루이스는 완벽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이 하나 있는데, 제니 루이스는 첫번째 음반 [Rabbit Fur Coat]부터 [Acid Tongue], [The Voyager]까지 단 한번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국인 중 제니 루이스를 ‘최애’로 꼽는 이는 극히 드물겠지만, 최소한 그녀의 음악은 항상 기대 이상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로는 2008년 유학을 시작하던 시기부터 지금까지 인생의 변곡점을 함께 해온 뮤지션이라는 점에서 조금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그녀는 무척 ‘미국적’이지만, 그래서 한국인들에게는 ‘잘 팔리지 않는 메뉴를 고집하는 원테이블 레스토랑 사장님’같은 느낌으로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지만, 그녀의 그런 ‘미국스러움’은 내가 사랑하는 미국의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뮤지션이기도 하다.

제니 루이스의 네번째 솔로 음반 [On the Line]은 마흔을 넘긴 뮤지션이 속한 장르를 극적으로 바꾸지 않은 채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는 놀라움을 선사하는 뛰어난 작품이다. 컨트리와 포크의 자기장 안에서 여전히 아주 전통적인 미국적 사운드를 들려주지만, 그 안에서 끊임없이 자기 성장을 하기 위해 노력해온 그간의 성과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느낌이다. NME와의 인터뷰 영상에서 진행자가 루이스를 “legendary” 라고 소개하는데, 이제 그 표현을 거리낌 없이 그녀의 이름 앞에 붙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확신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 음반에 수록된 “Do Si Do” 때문이다. 제니 루이스는 이번 음반 작업을 벡(Beck), 라이언 아담스(Ryan Adams) 등과 함께 했는데, (전설 링고 스타도 음반에 참여했다) 그 과정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진짜 락앤롤 음악을 처음 했던, 에너제틱하면서도 편안했던 작업”이었다고 여러 인터뷰에서 거듭 강조했다. “Do Si Do”를 듣다 보면 뜬금없이 “rock and roll” 이라는 가사가 튀어 나온다. 거기서 느껴지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사운드는 더 없이 탄탄하고 그 위에 얹힌 루이스의 목소리는 전에 없이 단단하다. 유년 시절부터 끊임없이 미디어에 노출되고 그룹 활동과 여러 프로젝트 작업을 거친 베테랑 뮤지션이 갑자기 당당하게 이제 나는 록음악을 합니다, 라고 선언하는데 그 아우라가 대단하다. 이제 그녀는 새로운 경지로 나아갔다. 음반에는 “Do Si Do” 외에도 좋은 곡들이 무척 많다. 들으면 들을수록 감탄이 나올 정도로 거의 모든 곡들이 매끄럽고 단단하다. 십년 넘게 함께 해온 뮤지션이기에 그저 음악을 계속 해주는 것만으로 고마운데, 심지어 매 음반마다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존경심마저 우러 나온다. 더이상 벤 기바드(Ben Gibbard)와 찰랑거리는 사랑-이별 노래를 부르지는 않지만, 그 시절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성숙한 음악을 계속해서 공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