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ouched by Notre Dame fire

많은 이들에게 조금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최근 빠리의 노틀담 성당에 화재가 발생했다. 많은 빠리 시민들이 애도의 뜻을 표했고, 오바마나 트럼프같은 세계 유명인사들도 노틀담 성당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며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프랑스가 아닌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세계 시민들도 대부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이자 소중한 인류 문화유산 중 하나인 성당의 일부가 소실되었으니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하다. 인스타그램에는 저마다 개인적으로 간직한 노틀담 성당의 모습을 올리며 이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할 추억을 되새김질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빠리에서 노틀담 성당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들 역시 대부분 마찬가지 반응을 보였다. 그들의 마음을 전적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그다지 마음이 많이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만큼 안타까워 하지 않았다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이유는 나의 경험 때문이다. 나는 빠리가 무척 아름다운 도시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보도블럭 한장까지 도시의 역사로 소중하게 간직하려고 하고 스카이라인을 보존하기 위해 고층건물조차 허락하지 않는 빠리 시민의 완고함을 존중한다. 아침 길거리 공기 위에 스며드는 빵 냄새와 지하철 역사에 울려퍼지는 악사의 음악을 사랑한다. 하지만 몇백년 전에 지어진 웅장한 건축물에 대해서는 경외감보다는 두려움과 역겨움을 느꼈다. ‘역겨움’이라는 표현이 조금 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생제르망 데 프레 성당(Church of Saint-Germain-des-Prés) 앞에서 에서 문자 그대로의 메스꺼움을 느꼈다.

몇백년 전 대성당이 건축되는 과정을 상상해본다. 수천명의 노역이 동원되었다. 대부분 가난한 서민들이었을 것이다. 수십년, 때로는 백년이 넘게 걸리는 건축과정에서(노틀담 성당은 정확하게 100년이 걸렸다)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그에 대한 합당한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역사책에 제대로 등장하지 않을 정도로 이들의 노력은 정확하게 평가되지 않았다. 성당이 완성된 후 프랑스 혁명 전까지 일반인은 이 성당에 출입할 수 없었다. 이후에도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치루는 등 여전히 노틀담은 상위계층의 전유물로 남아 있었다. 신에 대한 찬양을 증거하기 위해 지어진 건축물이 성당이다. 그 성당에서 신을 향해 찬양할 수 있는 자격은 계급에 의해 철저히 제한되었다. 당시의 신은 계급주의를 신봉하는 신이었다.

노틀담 성당을 비롯한 많은 중세시대 대형 건축물이 인구의 99%를 차지하는 서민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증거는 외부 장식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노틀담 성당의 정문 주변에는 상당히 정교하게 설계되고 조각된 예술품이 도처에 깔려있다. 정문 그 자체도 마찬가지다. 문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품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 모든 예술적인 장식물은 모두 권위적인 표정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내려보는 듯한 고압적인 태도,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 앞에서 나약한 모습의 인간을 심판하는 절대 권력자이자 권위자로서의 신의 모습, 다양한 형태로 노려보는 듯한 악마와 괴물들의 모습이 성당의 거의 모든 외관을 휘감고 있다. 12사도와 천사의 표정은 이들이 우리 편인지, 혹은 우리를 지배하러 온 이들인지 헷갈릴 정도다. 당시 성당은, 그 앞을 지나다니던 피지배계층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절대적인 신 앞에 복종하라. 단, 당신의 왕과 귀족은 신의 권력을 대신 행사하고 있으니, 왕과 귀족에게도 복종하라. 대충 이런 메시지로 읽힌다. 즉 신과 지배계층의 모습을 일치시킨 것이다. 이런 노틀담 성당이 내 눈에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노틀담 성당을 비롯한 유럽의 대부분의 대형 건축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99%의 확률로 나의 조상은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를 귀족이라고 생각해본 적 역시 한번도 없다. 지금은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변했다고 해도, 그 공간의 역사적 유래는 변하지 않는다. 서양 건축물에 대한 내 불호의 예외가 있다면 프라하에서 확인한 카프카의 생가, 혹은 니스에서 찾아가본 세잔의 아뜰리에 정도일 것이다.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삶을 살다 간 예술인의 개인적인 공간 정도가 내가 유럽에서 사랑하는 역사적인 공간이다. 그외 대부분의 관광명소에서는 욕지거리가 나올 정도의 폭압적인 권위주의가 읽혀져 더이상 있기 싫어진다. 노틀담 성당이 불탄 것이 경사로운 일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최소한 슬퍼할 일도 아니다.

Niall Ferguson | The Ascent of Money

국내에는 [금융의 지배]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출판된 [The Ascent of Money] 외에도 영국 출신 경제사학자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의 책이 꽤 여러 권 번역되어 시중에 출간되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조금 놀랐다. 나는 [The Ascent of Money]가 대중적으로 널리 읽힐 만큼 친절하게 쓰인 책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보의 비대칭이나 행동 경제학, 케인즈의 일반균형 이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주택저당증권(mortgage backed security; MBS)과 블랙-숄즈 모형의 복잡한 공학적 원리 등이 책의 이곳 저곳에서 튀어나오기 때문에 기본적인 경제학 지식이 없다면 책장을 넘기는 것이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유려하고 쉽게 쓰인 문장과 독자를 쉽게 몰입시키는 훌륭한 스토리텔링 능력은 니얼 퍼거슨이 속한 ‘장르’인 경제사(economic history)가 우리나라에서 가지는 초라한 위상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이 국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소개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하는 듯 보인다. 이러한 장점이 [The Ascent of Money]에서 극대화되어, 이 책의 주 목적인 인류의 금융사 개관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수반해야 하는 다소 어려운 경제학 이론조차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게 돕고 있다. 그 미덕을 인정받아 에미 상 등 굵직한 상도 수상하며 퍼거슨의 명성이 한껏 높아질 수 있었을 것이다.

[The Ascent of Money]는 금융의 기원과 발전을 시대순으로 따라가며 금융이 인류의 발전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강조하는데 집중한다. 다만 요즘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big history’ 의 대표 저작답게 금융사의 모든 측면을 세심하게 다루는 것은 아니고, 은행의 탄생, 보험의 탄생, 버블, 부동산 시장의 명과 암, 국제금융과 퀀트 등 금융사의 중요한 지점을 관통하며 부문별로 가장 중요한 사례를 한두가지 씩 소개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퍼거슨의 훌륭한 점은 독자의 입장에서 각각의 사례로부터 중요 개념으로 일반화시키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별로 느끼지 않게 친절한 안내문을 곳곳에 설치해준다는 점이다. 금융처럼 추상적이고 손에 잡히지 않는 개념도 드문데, 상식 수준에서 널리 알려진 서양 근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연결시켜 가시성을 확보해준다는 점도 그의 책이 왜 대중적인지 쉽게 알게 되는 대목이다. 예컨대 현대 금융감독기관이나 중앙은행이 행하는 세부적인 매커니즘을 알지 못하는 일반 독자라 하더라도, 메디치 가문의 영특한 재산불리기 방식과 영란은행의 탄생 비화 등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주요 금융정책기관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탄생했고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큰 흐름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식이다.

단순히 금융사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 책은 아니다. 퍼거슨의 번뜩이는 통찰력은 쉬운 문장 속에서도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중-미 간 활발한 무역-금융 거래를 통한 자본의 국제적 이동의 부활을 언급하며, 현재(이 책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발간되었다)의 추세가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다시 한번 위기에 봉착할 수 있는 잠재요인으로 양 국 간 정치적 갈등, 더 구체적으로 무역 부문에서의 갈등을 지적하는 대목에 다다르면 그의 혜안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처럼 보이지만, 그 누구도 쉽게 해내지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누구나 역사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 5년 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문제 없다’는 판단을 내린 블랙-숄즈/VaR 모형의 실패 사례를 생각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퍼거슨은 당시 VaR 모형이 만약 11년 이상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리스크를 추정했다면 실제 발생한 규모의 손실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5년과 11년은 어찌 보면 매우 짧은 기간 차이지만, 그 6년의 차이만으로 현대 금융사의 방향이 통째로 틀어지게 되었다. 이런 방식의 비판은 경제사학자만이 할 수 있는 성격의 비판이다.

책이 가지고 있는 한계도 명확하다. 은행과 보험, 주식 버블과 자산시장의 한계를 차근차근 살펴보는 책의 중반부까지는 완벽에 가까운 균형과 호흡을 보이지만, 국제금융시장과 2000년대 이후의 금융 흐름을 짚어내는 6장 및 결론 부분에 다다르면 중심을 잃고 흔들린다. 이것은 책이 출판되었던 시기가 2009년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불완전성이기도 하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간신히 규명되던 시기였고, 이후 세계경제의 방향성이 시계제로인 시기였다. 석학 퍼거슨이라고 해도 2008년 이후의 세계경제가 지금처럼 굼뜨게 회복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고, 버낸키가 헬리콥터에서 달러를 뿌려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며, 바젤III 등 시스템리스크를 체계적으로 잡아내기 위한 국제적 공조가 어떤 방향으로 설계될지 그 구체성까지는 살펴보지 못했을 것이다. 퍼거슨은 금융경제학자, 혹은 경제예측론자보다는 역사학자에 가까운 시선을 보여준다. 때문에 그의 책에서 배워야 할 교훈도 그의 문장만큼이나 간단, 명료하다. 과거에 저지른 잘못은 필연적이었으며, 모든 경제적 사건은 그 필연성 위에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퍼거슨이 가진 정치적 스탠스(그는 미트 롬니를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오바마를 호되게 비판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금융의 순기능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책은 급하게 마무리되지만, 이 책을 바탕으로 조금 더 공부해야 할 부분들이 발견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고맙고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4월 5일. 25년.

최근 단과대 동료 교수 여섯 명과 학교 근처 양식집에서 간단히 저녁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그 식당은 스테이크 전문점으로, ‘미국식 식당’으로 보이기 위해 내부 치장에 정성을 쏟은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는데, 예를 들면 긴 뿔을 가진 황소 머리 모형(그것은 누가 봐도 어설픈 모형이었다)이나 유명한 ‘Route 66’ 패널을 벽에 걸어 놓는 식이었다. 보통 교수님들을 모시고 가게 되는 전형적인 식당(예: 인자한 아주머니가 떨어진 반찬을 알아서 채워주시는 한식집)은 아니었지만, 그 날 저녁 모임의 명분이 ‘단과대 건물 3층에 연구실을 둔 젊은 교수들이 새로 오신 교수님을 환영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선택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젊은 교수들’이라고 해봤자 역시 그 자리에서도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은 나였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요즘 ‘젊은 교수’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연령대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에서 몇 년 동안 공부를 한 공통적인 경험이 있어서인지, 술이 한 두잔 들어가고 난 뒤 자연스럽게 90년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누군가 나의 긴 머리를 보고 “커트 코베인같네요”라고 농을 친 것이 시발점이었다. 한껏 신이 난 40대 ‘아재’들은 자신이 아직 잊어버리지 않은 90년대 음악의 각종 정보들을 두서없이 쏟아내기 시작했고, 결국 대화는 레드 제플린과 건스앤로지스 사이 어딘가에서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친구나 가족과 함께 하는 자리가 아닌 곳에서는 말을 극도로 아끼는 편인 나는 가끔 틀린 정보를 바로잡아 주는 정도에서만 대화에 참여했는데, 간혹 눈치 빠른 누군가는 나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음악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기에 적당히 그 시대를 모르는 척 하며 시간을 때웠다.

90년대 5천원짜리 카세트테이프를 사 들으며 머리를 흔들어대던 십대 소년들은 허리둘레가 걱정스러운 나이의 중년에 진입했다. 당시 음악을 함께 듣던 친구들 사이에서 “시애틀 4대 천왕”으로 통했던 밴드 – 너바나, 펄 잼, 사운드가든, 엘리스 인 체인스 – 의 보컬리스트 중 오직 에디 베더만이 생존해 있다. (이건 생각보다 훨씬 무겁게 와닿는 부분이다. 생물학적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 오직 에디 베더 뿐이라니. 와.) 요즘 기타를 좀 치고 홍대씬을 어슬렁거린다는 록 키드는 어떤 뮤지션을 롤 모델로 생각할까. 커트 코베인은 화석이 되어 있을까. 그가 죽은지 25년이 지났다.

1994년 4월 6일. 당시 아직 국민학생이던 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나오던 노래를 거의 이해하지 못했다. 누나가 들려주던 머라이어 캐리의 크리스마스 캐롤 음반이나 아버지가 즐겨 듣던 산울림의 음반, 그리고 당시 무척 좋아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내가 알던 음악세계의 전부였다. 그 날, 배철수 아저씨는 평소와 다르게 무척 슬프고 무거운 목소리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리고 정규 프로그램을 잠시 멈추고 오늘 세상을 떠난 한 뮤지션을 추모하는 특집방송을 두 시간동안 가지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 외국 뮤지션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우리나라의 디제이를 이리도 슬프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시 어떤 노래들이 나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확실히 “Smells like Teen Spirit”이 나왔을 것이고, “Come as You are”같은 곡도 나왔을 것이다. 1994년 4월 6일 저녁 6시부터 8시 사이에 나에게 일어난 일 중 확실하게 기억하는 한가지는, 너바나와 같은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과 이런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국내에도 많이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대체 왜인지 그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당시 아직 국민학생이던 나는 그의 음악에 무서울 정도로 강하게 빨려들어갔다.

그 후 25년이 지났다. 1994년 4월 6일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음악은 나에게서 멀리 떨어진 적이 없다. 시애틀 그런지 음악과 판테라 등의 뉴메탈을 들으며 중학교를 졸업했고, 포티스헤드의 트립합과 블러의 브릿팝, 그리고 머큐리 레브나 윌코 등 인디뮤직의 힘을 빌어 고등학교 수험생 시절을 통과할 수 있었다. 대학교 시절 연애에 정신이 팔려 사랑을 속삭이는 인디팝을 선별해 구애할 때 이용했고, 군대에서 음악을 들을 여유가 생기면 편안히 들을 수 있는 에디 히긴스나 찰리 헤이든같은 재즈 음악을 찾아 낮은 볼륨으로 들었다. 미국 유학 시절은 개인적으로 무거운 삶의 무게를 처음 경험하느라 무척 힘든 시간이었지만, 음악을 듣는 사람 입장에서만 보면 천국과도 같은 시기였다. 거의 매주 공연을 보러 다녔고, 푼돈이 모아지면 아마존에서 음반을 구입해 끊임없이 돌려 들었다. 당시 보았던 윌코와 플릿 폭시스, 아케이드 파이어, 본 이베어 등의 공연은 지금도 매 순간이 기억날 정도로 좋았다.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온 뒤 만난 음악친구들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접할 수 있었고, 함께 맥주를 마시며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거나 음악에 대해 수다를 떨면서 현실의 무거움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커트 코베인이나 웨인 스탠리처럼 젊은 나이에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없었던 나는,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와중에 음악을 통해 힘을 얻고, 음악을 통해 희망을 보았다. 내 삶은 음악과 동격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고 보잘 것 없었지만, 음악이라는 영혼의 동반자를 옆에 끼고 살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며칠 전 그 교수 모임에서 누군가 커트 코베인의 자살과 관련하여 궁금해했던 것이 기억난다. 자살이었는지, 코트니 러브에 의한 타살이었는지, 둘 사이에 딸이 있었는지, 아들이 있었는지, 지금 몇 살인지, 등등 한물간 TMZ에나 나올 법한 이슈들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나는 그 이야기가 그리 듣고 싶지 않아 “딸이구요, 이름은 프랜시스 빈 코베인이구요, 1992년 생이니 지금 스물 일곱 쯤 되지 않았을까요”라고 빠르게 말하고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자리를 떴다. 누군가에게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가쉽거리로 치부되는 한 가수의 삶과 죽음이, 나와 같은 ’90년대 키드’에게는 삶의 방향성을 바꾸어버린 엄청난 존재로 기억된다. 때문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가볍게 취급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가끔, 우리 부부가 애정하는 자동차 ‘삼식이’가 랜덤으로 노래를 재생할 때 너바나의 노래가 나온다. 그 때마다 90년대의 어느 시점엔가로 돌아가, 여드름 투성이 얼굴을 한 한 소년을 마주한다. 여드름이 가득한 못난 얼굴을 비추는 거울을 보는 것조차 싫어 엄마를 졸라 집안의 거울을 모두 치우게 했던 이 예민한 소년은, 집 어딘가에 처박혀 있던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를 찾아내 너바나의 [Nevermind] 음반을 듣고 또 들었다. 전세계 3천만명 정도가 공통적으로 경험했을 이 기억이, 나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기에, 지금도 늘 자신의 머리를 엽총으로 날려버린 그 사람에게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십대의 마음으로, 십대의 정신으로 늘 살 수는 없겠지만, 그 시절의 기억을 죽을 때까지 잊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황승택 |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

[저는 암병동 특파원입니다]는 기자생활을 오래 한 지은이가 암투병생활을 하면서 페이스북에 연재한 글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와 같은 전문성이나 숭고함은 발견할 수 없지만, 기자 특유의 조사근성에 기반한 디테일한 묘사가 글 곳곳에서 묻어나온다. 이 책에 대한 감상은 이게 끝이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잘 정돈된 글을 읽을 때의 감흥이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가치다. 다만 이 책을 통해 독자가 개인의 삶에 투영할 수 있는 부분은 별도로 존재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이 책을 택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였다. ‘죽음에 대한 취재’에 대한 관심이 첫번째 이유이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개인에 대한 역사(史)를 최대한 많이 읽고 싶다는 욕망이 두번째였다. 내가 늙어감에 따라 가장 빠른 속도로 떠오른 걱정거리는 나의 죽음이 아닌, 내 부모의 죽음이었다. 내가 죽는 것보다 내 부모가 죽었을 때의 상황이 두렵다.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고, 어디까지 마음이 무너져 내릴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죽음과 가깝게 다가간 사람의 에세이에서 최대한 많은 힌트를 찾으려고 한다. 트위터를 하던 당시, 어떤 계정의 주인이(젊은 사람이었다) 암으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그 분의 언니가 대신 트위터에 짤막하게 “사망하였습니다”라는 인사를 남겼고, 그 계정은 한동안 계속 살아 있었다. 그 당시 느낌이 참 기묘하고 서늘했다. 한 개인의 삶과 죽음을 세밀하게 다룬 글에서만 찾을 수 있는 찐함과 서늘함이 있다. 공인의 역사는 사회의 역사로 편입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개인의 역사는 여전히 낮은 기저에 머무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금 더 많은 개인 역사서가 나왔으면 좋겠다.

김상아 |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

아주 어린 나이였을 때부터 나의 부모님은 항상 개와 함께 살아왔다. 아마도 ‘화정리 시대’부터였을 것이다. 지금은 안산시 단원구 화정동이라는 공식 명칭을 가진 옛 화정리는, 우리가족이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처음으로 흙냄새의 소중함을 깨달은 곳이다. 이 곳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흙을 만지며 농작물을 일구는 기쁨을 만끽했고, 누나와 나는 동네 친구들과 함께 논두렁을 뛰어다니거나 계곡에서 가재를 잡으며 하루를 보내곤 했다. 누나가 이마에 작지 않은 크기의 흉터를 갖게 된 것은 그 시절 하수구로 굴러 떨어졌기 때문이고, 내가 아버지와 누나에게 시계 읽는 법을 배운 것도 그 즈음이다. 그리고 그 즈음부터 우리 가족 주변에는 항상 개가 있었다. 진돗개일 때도 있었고 ‘잡종’일 때도 있었지만, 아버지에게 항상 개를 선물해주는 지인이 있었고, 그 분 덕분에 우리는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단 1년도 쉬지 않고 우리는 개와 함께 살아왔다. 우리 가족을 거쳐간 개의 수는 두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지금은 함양 산골자락에 자리잡은 부모님댁에 잡종견 두마리와 골든리트리버 한마리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열마리가 넘는, 한 때 우리의 가족이었던 그 개들의 이름을 아직도 모두 기억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가족이었으니까. 무척 사나워서 쉽게 다가갈 수 없었던 진돌이, 유난히 듬직하고 속이 넓어서 함께 살던 다른 개들까지 보듬어 주었던 복실이, ‘아픈 손가락’이었던, 작고 작고 작았던 미니, 인간만큼이나, 아니 대부분의 인간보다도 더 지혜로웠던 뽀미.. 어느 카툰에서처럼, 그들은 나를 하늘나라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 나의 결론은 항상 명확하다. 그들은 인간 가족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지만, 그 가족은 아버지나 어머니일 확률이 높다. 최소한 나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매일 밥을 주던 사람도 아니었고, 매일 그들의 목을 끌어 안고 잔디밭에서 뒹굴며 사랑을 나누던 사이도 아니었다. 개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좋았고,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면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어대는 개에게 살짝 인사만 한 뒤 방 안으로 쏙 들어가 문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나는 그들의 사랑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한, 못난 가족이었다. 아마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천국에서 개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낼 권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살면서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대체로 이런 형식이었다.

“개들때문에 일찍 들어가봐야 해”

“개들 밥줘야 해서 너 못 만난다.”

“개가 심심해 하니까 좀 와서 놀아주면 안되겠니?”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누나와 나, 그리고 개는 하나의 가족으로 이어진 존재였을 것이다. 물론 아버지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개는 개일 뿐, 인간과 결코 동급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 듯한 개집을 매 계절 새로 만들어주는 사람도 아버지이고, 늦은 밤 목줄을 끊고 산속으로 산책나간 개를 찾아 몇시간을 헤매는 사람도 아버지이다. ‘서양식’으로 인간과 개가 반드시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만 가족으로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버지와 같은 많은 한국인은 개를 가축의 한 종류로 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개에게 쏟는 애정이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없다. 아무튼, 아버지와 어머니는 누나와 나를, 그리고 캐를 키우셨다. 누나와 내가 독립된 가족을 만들어 곁을 떠난 뒤에도 부모님은 계속 개를 키우신다. 개와 함께 살아가신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숨겨진 모습을, 함께 사는 개들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살짝 질투가 나기도 하고, 그분들의 곁에 있어주어서 고맙기도 하다.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은 개와 아기를 함께 키우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글 쓰는 일을 퍽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은이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녀의 아기가 툭툭 던지는 보석같은 말들과 늙은 개가 가지런하게 보내는 따뜻한 눈빛이다. 단지 그것들을 엮는 것만으로 이 책은 많은 것을 느끼게 만든다.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옛 추억에 잠겨보았다. 나의 가족이었던 그 개들은, 지금 잘 지내고 있을까. 많이 보고 싶다.

안아주는 사람

[우리는 안아주는 사람일 뿐]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다. 유기견 센터에서 데려온 개 하나와,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딸 하나, 이렇게 둘과 함께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다(물론 남편도 있는데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책에는 유기견 센터에 존재하는 ‘뜬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유기견센터의 우리는 배설물을 처리하기 위해 바닥에 구멍을 뚫어놓았기 때문에 그 안에 갇힌 유기견들은 제대로 걷기도, 서있기도 힘든 상태에서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누군가 자신을 구해주러 오거나, 2주 뒤로 정해진 안락사를 통해 고통을 끝낼 때까지.

몇달 전, ‘강아지 병’에 걸린 아내와 함께 대전의 유기견 센터에 잠시 방문한 적이 있다. 지금도 그 때의 경험이 잊혀지지 않는다. 직원의 안내를 따라 우리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격렬하게 우리를 향해 짖어대는 수많은 유기견들의 울음소리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 울음소리는 적대감이나 두려움의 표현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처음 보는 이 사람들이 자신을 지금 당장이라도 데려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을 따라 이 고통 속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그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던 것이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 집단적인 절실함에 압도당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도망치듯 그 곳을 나와야 했다.

이후 우리 부부는 결국 유기견을 데려오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달에도 임신에 실패했다. 그 결과 우리는 여전히 둘이서 살고 있다. 아이를 갖기를 원하지만 갖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된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어린아이를 만날 때마다, 교수 휴게실에서 동료, 선배 교수들의 육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지인들의 아이 사진을 볼 때마다 나는 너무 고통스럽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밝은 미소로 인사를 하고, 친구나 동료의 육아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위로와 부러움을 건네고, 인스타그램 속에서 웃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는 늘 like 버튼으로 화답하지만, 그렇게 사회적 활동을 하는 순간 순간마다 나는 너무 고통스럽고 슬프다. 내가 아직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인지 궁금하고, 삼신할매가 우리 부부를 많이 질투해서 이런 것인지 그녀를 만나 따져 묻고 싶다. 나의 부족함과 못남이 결국 우리 부부를 이 고통 속에 빠트린 것 같아 죄책감에 고개를 들기 힘들 때도 많다. 최근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마음 속의 괴로움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내 삶은 이미 아내만으로 충만하게 채워졌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새로운 가족을 절실히 원하지 않게 만든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는 절실하게 새 가족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가족이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하는 상상만으로 이미 너무나 행복해져서 실제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런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놀라기도 한다. 단지 상상만으로 그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일은 흔치 않다. 그 새로운 가족이 개였어도, 혹은 아내의 몸에서 태어날 우리를 닮은 사람이었어도, 우리는 너무나 기쁘고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유기견 센터에서 눈이 마주친 유기견들의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동시에 너무나 적막해서 음악이나 TV볼륨같은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집 안의 빈 공간이 내 탓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너무 무겁다. 얼마나 더 절실해져야 하는지, 얼마나 더 절실하게 새로운 가족을 원해야 하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막막하다.

레슬리 제이미슨 | 공감 연습

[공감 연습]은 미국의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레슬리 제이미슨이 주요 매체에 기고한 에세리 11편을 모은 에세이집이라고 할 수 있다. 굉장히 러프하게 표현하면 이와 같지만, 사실 나는 이 책을 어떤 범주에 포함시켜야 할지 지금도 망설이고 있다. 자신이 집적 체험한 바를 적나라하게 기술한 수필이기도 하였다가, 그 지점으로부터 이야기의 층위를 확장시켜 전반적인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화비평처럼 읽히기도 한다. 특정 공간에 있는, 혹은 특정 병명을 가진 사람을 인터뷰하여 이를 정리하기도 했다가, 어떤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재해석하고 그 이야기를 풍부하게 만드는 매체비평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실로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쓰는 제이미슨이 거의 모든 에세이에서 공통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고통’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에세이에서 제이미슨이 공통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바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다. 본문에서 몇차레 인용한 수잔 손택이 그녀의 직계스승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양한 글쓰기 방식을 다양한 대상에 적용하되 11개의 이야기가 산만하게 퍼져나가지 않고 가지런하게 모여 하나를 비추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라는 선명한 주제의식이 모든 글에서 또렷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라는 주제의식만큼이나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제이미슨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그녀는 그녀만의 문체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한국어로 번역된 글에서도 강하게 제이미슨의 색깔이 묻어나온다. 제이미슨의 글은 직설적이되 사려깊고, 풍부하게 쓰이되 독자가 스스로 생각한 의견을 삽입할 수 있을 정도의 여지는 남겨둔다. 그래서 읽는 과정이 즐겁고, 지적으로 흥미로우며,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이 있다고 느낀다. 좋은 에세이인 셈이다. 제이미슨이 택한 에세이의 대상 역시 매우 흥미로운데, 이 책의 제목인 [공감 연습]과 같은 제목을 가진 에세이에서는 의대생의 수업을 도와주는 의료 배우로 일한 경험을 살려 의료과정을 객관화하는 과정을 택하되, 본인이 직접 경험한 낙태라는 사건을 삽입함으로써 타인의 감정을 내재화시키는 작업의 중요성을 강렬하게 각인시킨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에세이는 “악마의 미끼”였는데, 모겔론스병(morgellons)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객관화하려는 시도의 다층적인 의미를 깊게 탐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11편의 에세이 모두 훌륭한 것은 아니다. 가끔은 너무 따분해서 페이지를 넘겨버리고 싶은 글도 있었고, 제이미슨 본인의 욕심에 의해 과도하게 일을 벌리다보니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글도 있었다. 하지만 [공감 연습]이 최근 읽은 논픽션 중 꽤 괜찮은 축에 속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안은별 엮음 | IMF 키즈의 생애


“IMF 외환위기”라는 이름으로 주로 불리우는 이벤트가 있었다. 1997년에서 1999년까지, 한국 전역 쯤으로 대충 그 기간과 공간이 정의되고, 대외부채를 감당하지 못한 기업이 연속적으로 도산하는 가운데 금융기관과 정부기관으로까지 그 여파가 미쳐 자칫하다 국가수준의 채무불이행 사태를 맞이할 뻔 했다는 것이 이 이벤트의 전개과정에 대한 거친 요약이며, IMF라는 국제기구를 통해 (그 이름도 ‘치욕적’인) 구제금융을 공급받음으로써 단기적인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단기적인 결론이다. 구제금융의 대가로 IMF로부터 요구받은 노동시장 유연화, 주요기업에 대한 강도높은 구조조정 등의 정책에서 일종의 굴욕감을 느낀 이들은 위의 이야기에 더해 “나의 돌반지를 녹여내어 위기를 극복하는데 일조했다” 따위의, 일제시대에서나 나올법한 무용담을 추가함으로써 나름의 자존감을 유지하려고도 해볼 것이다. 이 이벤트에 대한 해석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1998년 이전과 이후 한국사회의 얼굴이 상당히 큰 폭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아마 모두가 공통적인 명백한 사실로써 받아들일 것이다. 그 중 누군가는 이 거대한 사회적 변화기에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어, 예컨대 ‘IMF 외환위기가 발생하지 않았다면’과 같은 부질없는 가정을 덧대는 방식으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데 꽤나 많은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다.

[IMF 키즈의 생애]는 프레시안 기자 출신으로 현재 일본에서 유학중인 안은별이 1980년대에 태어난 7명의 일반인을 인터뷰한 결과물을 엮어놓은 책이다. 위의 문단에 IMF에 대한 간단한 요약을 실어놓은 이유는, [IMF 키즈의 생애]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된 이 책이, 사실상 ‘IMF 키즈’를 전혀 정의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를 부각하기 위함이다. 안은별은 1980년대에 태어나 다양한 경로를 통해 현재까지 인생을 살아내고 있는 평범한 사람의 인생사를 수집함으로써 ‘무언가’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어떤 층위의 공통점을 반드시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진 것처럼 보이는데, 안은별은 그 공통점을 IMF 외환위기라는 하나의 사건을 프리즘처럼 사용하여 정리해보고자 했던 것 같다. 결과는 대실패다. 나는 7명의 이야기를 읽으며, 대체 왜 이들이 ‘IMF’라는 키워드로 묶여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파악할 수 없었다. 서문에 쓰인 저자의 변을 읽어보면 대충 이러하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러한 IMF 서사를 거부하는 데서 시작한다. IMF 위기를 단순한 외환 부족에서 일어난, 그것을 갚은 뒤에 진화된 단기간의 사건이 아니라, 전 지구적 변동 속에서 그때까지 한국을 이끌어온 권위주의 개발국가 시스템 자체가 문제시된 사태,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야기한 핵심 계기로 파악하고자 한다.

… 후자는 IMF 경제위기의 해법의 결과로 효율화되고 유연화된 노동시장 구조에서 가장 약한 고리에 있는 노동자로서, 자전적 이야기의 주체로서 주목하고 있다는 데서도 차이가 있다. 물론 이 책은 후자의 의미에 훨씬 가깝다.

… 여기서 IMF는 인터뷰이 각자에게 자신이 시간을 보내온 혹은 시간을 보냄으로써 형성되는 ‘사회’라는 것을 떠올리고 자신의 생애를 그것과의 관련 속에서 말하게 만드는 매개장치다.

정신을 부여잡고 저자가 하려고 했던 말을 이해하려고 애써보면, 저자는 ‘IMF를 기억할 수 있을 정도의 나이를 가진 자’를 인터뷰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트위터에서 만난 저자 나이 또래의 ‘트친’들을 인터뷰하고 이를 책으로 내려는 욕망을 솔직하게 밝혔다면, 서문에서와 같은 지면낭비는 최소한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IMF를 개인의 삶에서 떠올리는 것만으로 매개체가 되고 이를 통해 이들을 ‘IMF 키드’라고 정의내릴 수 있다면, 이 세상의 IMF 키드는 너무나 많을 뿐 아니라, 그 많은 IMF 키드의 생애에서 건져올려낼 수 있는 IMF 외환위기에 대한 함의는 거의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역사적인 사건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자에 대한 전기가 아니라(여기에서는 IMF 외환위기 전개과정에 주로 등장하는 이름들이 될 것이다) 단지 그 시대를 살아낸 필부필부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서 읽혀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일반적이고 미시적인 삶에서 효과적으로 건져올려낼 수 있는 확실한 교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오직 그럴 수 있을 때에만 어떤 세대에게 합당한 이름을 부여할 수 있다. 여기서는 ‘IMF 키즈’ 세대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7명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IMF라는 이벤트는 이미 저만치 사라지고 희미해져버린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이 책에 등장하는 7명 중 상당수가 공무원이나 교사 등, IMF 외환위기로 인해 피해를 받지 않은 가정에서 성장했다.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유복하게 자란 사람의 이야기가 여기저기 등장한다. 김괜저의 경우에는 뉴욕대까지 유학을 갔는데 2008년 금융위기때문에 집으로부터 송금받는 금액이 많이 줄어서 고생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998년도 아니고 2008년 당시의 환율때문에 고생했다는 것이.. 왜 IMF 키드인지 모르겠다. 황당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중에는 심지어 본인의 선택에 의해 자퇴와 휴학을 반복하다 치과의사로 성공한 여성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고소득자의 삶이 IMF 키즈를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설명하기 위해 저자는 ‘여성’이라는 억지스러운 개념까지 끌어들인다. 여성이니까 조금 더 힘들게 살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인데, 그게 여기서 왜 나와! 한마디로 나는 이 책에 ‘낚여’ 버린 셈이다. IMF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 읽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책이다.

물론, 이 책에도 분명 의미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홍스시의 기구한 가족사는 그 자체로 뭉툭하게 건드리는 지점이 있다. 하지만 그녀의 가족사는 IMF 이전부터 기구했다. IMF가 무언가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힘들다. 서유진은 외고를 나와 대안학교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다. 저자의 주장대로 IMF 외환위기가 “권위주의적 개발국가 시스템”에서 “신자유주의적 전환”과정을 설명하고 있다면, 그 큰 그림 안에서 서유진의 삶은 어떻게 이해될 것인가. 그녀의 엄마가 그녀를 두고 “실패한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IMF가 영향을 준 것은 아니다. 그녀의 엄마는 IMF 이전부터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부분에서, 이 책은 등장인물의 삶과 IMF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데에 실패한다. 그냥, 그냥 솔직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회사생활 관두고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트위터하는 것이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인데, 기자생활하면서, 또 트위터 하면서 만난 친구들과 깊게 이야기하고 이를 책으로 엮어내면서 유학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다고. 그냥 그 정도로만 책의 목표를 삼았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인터뷰 모음집이 될 수 있었다. 괜히 어줍잖은 어려운 용어 써가면서 애써 정당성을 부여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Jessica Pratt | Quiet Signs

Jessica Pratt, [Quiet Signs]

제시카 프랫(Jessica Pratt)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당연히 전자음악이라고 생각했다. 꿈 속을 사뿐히 걷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때문에 드림팝 계열이겠거니, 하고 지레 짐작해버리기 까지 했다. 그녀의 2019년 신보 [Quiet Signs]는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이 너무 좋아 따로 챙겨두고 자주 듣게 되었는데, 웬걸, 두번째로 이 음반을 들었을 때 그녀의 음악에는 전자음악기기가 사용되기는 커녕, 드럼조차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전자피아노 정도는 사용되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노래가 통기타 하나로 진행되는 그녀의 음악은 전자음악과는 거리가 한참 먼, 굳이 따지자면 포크음악의 범주에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포크음악을 전혀 듣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왜 그 음악적 뿌리를 쉽게 발견하지 못했을까? 굳이 변명거리를 찾자면, 제시카 프랫의 음악세계가 하나의 장르로 국한시키기에는 상당히 깊고 다층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평단에서 제시카 프랫의 음악을 정의내리거나 어딘가에 포함시키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단어가 ‘freak folk’, 우리나라 말로 하면 괴물포크(..!)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포크의 하위장르다. 기존의 포크 문법에서 벗어나 사이키델릭한 요소를 잔뜩 첨가한 새로운 포크 운동 정도로 정의내릴 수 있을텐데, 히피 운동이 활발하던 1960,70년대 시작된 이 흐름은 한동안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다가 1990년대 이후 바쉬티 번얀(Vashti Bunyan)이 발견되고 애니멀 컬렉티브와 그리즐리 비어가 인디씬에서 성공을 거둔 후 현재 인디포크음악의 하위장르로 어느정도 자리를 굳힌 모양새다. 보통 여기에 속한다고 알려진 뮤지션 중 우리가 알법한 인물은 영화 [주노(Juno)]의 음악으로 유명한 킴야 도슨(Kimya Dawson)과 앞서 언급한 그리즐리 비어 등 뉴욕 인디포크씬의 한 무리들을 꼽을 수 있겠고, 범위를 조금 넓히면 조안나 뉴섬과 수프얀 스티븐스까지 포괄할 수 있을 것 같다.

LA 출신의 제시카 프랫은 사이키델릭-프릭-안티 등등 새로운 기조의 포크음악 앞에 붙일 수 있는 모든 수식어를 충족시키는 음악문법을 구사한다. 꿈에서 막 깨어난 듯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사실 가사를 분간하는 일조차 쉽지 않은데, 여기에 낯선 밤거리 풍경을 연상시키는 악기들이 소품처럼 배치되어 어둡고 쓸쓸한 정서를 배가시킨다. 전통적인 포크의 색채가 많이 남아있던 전작들에 비해 이번 신보 [Quiet Signs]에서는 몽환적이고 사이키델릭한 특징이 훨씬 강조되고 있는데,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랫의 목소리 톤도 전작보다 훨씬 높고 가늘게 올라간 듯 느껴져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공헌하고 있다. 이런 요소들이 결합되어 통상적인 드림팝 장르에서 느낄 수 있는 여러 정서들을 환기시키는 효과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내가 프랫의 음악을 당연히 전자음악이구나, 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이 단순히 어둡고 침침한 것은 아니다. 음반의 색깔은 오히려 축축한 안개가 낮게 깔린 도시의 거리 어딘가에 자리잡은 허름한 펍에서 조곤조곤 나누는 즐거운 수다에 가깝다. 저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계속해서 듣다보면 결국 빠져들게 되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매력이 있는 음반이다.

애나 보든, 라이언 플렉 | 캡틴 마블

[캡틴 마블] 포스터

전에도 몇 번 이야기했지만, 소위 DC니 마블이니 하는 그런 류의 히어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예술적으로 전혀 새롭지 않은 형식을 차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적으로도 흥미롭지 않다. 일차원적인 캐릭터와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갈 때부터 예측할 수 있는 단순한 서사구조는 영화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그 외에도 수많은 단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지만, 이런 류의 영화에 열광하는 관객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영화를 예술이 아닌 산업-상품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보다 더 훌륭한 상품이 또 어디있나 싶다.

하지만 [캡틴 마블]은 꼭 보고 싶었다. 이 영화의 관람 여부가 엉뚱하게 ‘페미니즘’ 분쟁으로 번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조차 찻잔 속 태풍 정도에 불과하겠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역을 맡은 브리 라슨이 과거에 한 발언 등에 근거하여 불매운동을 벌이는 젊은 남성층의 태도는 나로 하여금 반드시 이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동했다. 영화는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다른 히어로 영화들이 가진 단점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지만, 딱 하나, 브리 라슨의 연기력만으로 이 영화는 구원받기에 충분하다. 기존에 보지 못한 복합적이고도 흥미로운 성격의 여성 히어로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브리 라슨의 연기력이 절대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뒤뚱뒤뚱 뛰는 모습이 히어로답지 못하다”는 비판을 한 기성언론에서 읽을 수 있었는데, 이런 류의 시선이야말로 페미니즘과 여성주의 문화를 제대로 독해하지 못한 보수적 남성주의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라슨이 연기한 캐럴 댄버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서 그 캐릭터의 과거와 현재에 의해 중첩된 성격의 면면을 읽을 수 있었다. 뒤뚱거리며 뛰는 모습을 예로 들면, 캐릭터가 가진 불완전한 성장배경과 다혈질(이지만 섬세하기도 한 복합적인) 성격 등에 의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장면이었다. 브리 라슨은 아주 엉성한 영화에서 매우 섬세하게 캐릭터를 구현해냈다. 이 영화에서 볼만했던 것은 그거 딱 하나였다.